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에 대하여(대전충청지부 여운철)

2004-11-02 115

아래는,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이전이 위헌이라는 판결에 대한 민변 대전충청지부 여운철변호사의 글입니다.
대전일보 2004. 10. 25.자 월요포럼에 실린 글임을 앞서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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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정권 침해하나”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정치권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수도권 과밀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막중한 역사적 과제의 실현을 위해서 과연 행정수도의 이전이 진정 필요한지 여부에 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번 위헌결정은 결론의 당부를 떠나 법리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헌재 다수의견은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인 것은 관습헌법이고 수도를 이전하려면 개헌을 통해 헌법에 명문으로 수도규정을 넣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개헌을 하지 않으면 수도이전을 못한다고 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국회권한내에 있는 법률문제”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성문헌법국가이다. 성문헌법국가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의 명문규정을 보충하고 성문헌법의 실효성을 증대시키는 한도 내에서 극히 예외적인 경우 인정되는 것이다. 헌법적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성문헌법이 난자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서도 관습헌법은 극히 제한적으로 인정되어야 하고 이러한 당위를 반영하여 관습헌법이 실제로 인정된 예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나아가 어떠한 법률 또는 공권력의 행사, 불행사가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불문헌법은 보충적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고, 불문헌법만을 가지고 위헌인지를 가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므로 극도로 자제하여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관습헌법을 유일한 기준으로 삼아 위헌여부를 판단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행동을 하였다.

다음으로 수도문제는 결코 본질적으로 헌법사항이 될 수 없다. 통치구조의 측면에서 헌법제정권력(국민)의 헌법적 결단의 핵심은 대의제와 권력분립의 원리에 기초한 핵심적 헌법기관, 즉 대통령, 정부, 국회, 사법부, 헌법재판소의 기본적 구성체계와 조직원리이지 그러한 헌법기관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단연코 아니다. 수도문제는 국회의 권한 내에 있는 법률문제에 불과한 것이다. 서울을 수도라고 규정한 법률도 엄연히 존재한다.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 제2조는 “서울특별시는 정부의 직할에 두되, 이 법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문법 규정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마치 없는 것처럼 얘기한 것은 헌재의 결정적 오류이다.

그리고 헌재 다수의견은 수도에 대한 포괄적 개념정의를 하여 놓고 행정수도특별법의 목적 등의 해석상 수도이전의 시도라고 단정지은 후 그 이전의 범위(입법부 등은 자율에 맡기도록 하고 있다)와 관련하여 구체적 고찰없이 막연히 ‘천도’라는 전제 하에 천도문제는 헌법사항이라고 판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이 아닌 경기도 과천시와 대전시에 정부종합청사를 위치 지운 것도 위헌인지, 어디까지 이전하면 위헌이고 위헌이 아닌지 이해할 수 없다. 헌재는 그 기준을 전혀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한정합헌, 한정위헌, 헌법불합치 등 여러 결정 방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핵심정책과제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려는 목적의식이 지나쳐 둘도 없는 국가중대사인 행정수도 이전문제에 대해 보다 신중하고 깊이 있는 판단을 하지 않은 치명적 잘못을 범한 것이다.

또한 헌재 다수의견은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헌법적 관행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로 굳어진 것은 한국현대사의 비극적 현실의 반영임을 직시해야 한다. 근대로 줄달음치던 조선이 멸망한 이후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시름하다가 해방을 맞이했을 때의 역사와 시대의 명령은 통일된 입헌민주공화국의 수립이었다. 국체와 정체가 전면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에서 조선왕조의 상징이고 일제 통치의 상징 지역인 서울을 여전히 통일된 입헌민주공화국의 수도로 할 것인지 여부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남북이 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분열을 겪고 연이은 전쟁의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아 지금까지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서울을 대한민국의 수도로 인정하고 각종 법률에서 이를 당연한 전제로 하여 왔고, 국민도 그와 같이 인식해 왔다고 보는 것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수도서울이라는 관념은 영원히 보듬고 가야할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진실이 이와 같다면 위와 같은 관행을 헌법적 차원에서 불문적 규범력을 인정할 수 있는 요건으로서의 사실적 관행으로 인정하기에는 정당성이 극히 부족하다.

“‘새로운 헌법제정’ 비난 일어”

헌재 다수의견은 수도 서울이 헌법적 차원의 규범력을 확보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불성설이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이 국민들의 헌법적 확신에 의해 뒷받침되어 규범력을 획득하였다면 국회에서 행정수도특별법을 제정할 때 국회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에서 그와 같은 문제제기가 있었어야 하고, 최소한 국민 상당수가 개헌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인식을 했어야 한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심지어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들마저 개헌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상상할 수도 없는 법리주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국민 대다수는 개헌해야 수도이전이 가능하다는 이번 헌재 결정에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리고 국민들은 정부종합청사를 과천과 대전으로 옮길 때는 물론 현재도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 무슨 관행은 처음부터 없었거나 관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변화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또한 관습헌법 즉 불문헌법은 성문헌법개정절차가 아니라 법률개정절차에 의해 개정할 수 있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확립된 견해이다. 따라서 개헌이 어려운 성문헌법을 경성헌법, 개정이 상대적으로 쉬운 불문헌법을 연성헌법으로 분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는 관습헌법을 성문헌법 제130조에 규정한 절차에 의해서 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실로 부당한 판단을 하였다.

헌재는 헌법해석권한을 갖고 있을 뿐 헌법제정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번 헌재 결정은 헌재가 그 권한을 남용한 나머지 해석의 범위를 뛰어 넘어 헌법을 창출, 제정한 것이고 이로써 오로지 국민만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제정 및 개정권한을 유린한 것이며, 헌법을 수호해야 할 헌재가 스스로 위헌적 행위를 감행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고 전 세계 양심적 헌법학자들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