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박연철 변호사 국가보안법 칼럼

2004-09-14 163

아래는 2004. 9. 9. 내일신문 <신문로 칼럼>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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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2004-09-09 (오피니언/인물) 23면 판 2152자        

<국가보안법의 극복과 폐지>

박 연 철 변호사

국가보안법은 애초에 여순사건을 진압하고 남로당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한시적으로 제정된 법이다. 이제 그 법을 폐지하려는 것은 원래의 입법취지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법의 폐지 곧 법을 변경한다는 것은 법현실과 법의식이 변천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국보법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어둡고 긴 터널과도 같은 비상시기를 극복해 가고 있는 것을 뜻한다. 정작 국보법을 폐지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보법의 폐지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자, 각 정당에서는 그 당론을 조정하고 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폐지의견서를 발표하였고, 대법원에서는 판결로써, 헌법재판소에서는 결정으로써, 그리고 대통령은 문화방송과의 대담에서 그 견해를 표명하였다. 각 정당과 헌법기관들의 의견은 상호존중되는 가운데 국보법의 폐지라는 국면에서 수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태스크포스팀에서는 국보법의 역사, 법률적문제점, 그동안의 폐해 등에 관하여 장기간의 광범위하고 신중한 연구검토 끝에 폐지의견을 발표하였다.

어둡고 긴 터널 극복하는가
반면에 대법원에서는 8월 30일 한총련사건에 대한 판결 가운데 “국보법의 규범력”을 역설하고 오늘날을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임을 직시한다”고 하였다. 재판부의 상황인식에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고, 새 역사의 창조에 둔감하고 여전히 정체되어 있는 모습이 답답하게 여겨진다.
또한 헌법재판소에서는 8월 27일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 제5항(찬양·고무·이적표현물 소지)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결정을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결정했다. 지금까지의 오·남용에 관한 문제의식이 배어있지 않은 형식논리로 이것이 전원일치의 결정이라 하니 그에 대한 신뢰감보다는 우려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국보법은 그동안 진정한 국가안보를 위해서라기보다 정권안보의 도구로, 인권유린의 형태로 악용되어 왔기 때문에 폐지하여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문명국가로나아갈 수 있다는 의견을 그 경험, 철학에 따라 간명하게 밝혔다. 대통령은 국보법의 폐지를 하나의 역사적 결단으로 인식하고, 강직하고 확신에 찬, 매우 인상적인 모습으로 의견을 표명하였다. 입법론적인 차원에서 입법지도자로서의 강한 면모를 보여 준 것이다. 이것은 법치주의를 위배하는 것이라기보다, 정권의 유지와 인권유린의 도구로 국보법을 악용하지 않고 새 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국보법을 폐지하면서 개정론자와 반대론자의 염려는 다른 방안으로 보완하고 실질적인 국가안보정책을 가시화시킴으로써 국보법에 의하여 나라를 지킨다는 그릇된 집착은 버리게 하여야 할 것이다.
국회에서는 열린우리당이 겨우 과반수를 넘는 다수가 되었다 하여 단순한 숫자만으로 국보법을 폐지하기보다는(당론으로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찬성을 얻고 한나라당 일부의원들의 동의도 받아 추후 다수당이 바뀐다 하여 국보법이 다시 부활하는 일이 없도록 원숙하게 처리하여야 한다.
국회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실현하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나라의 장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 국민의 화합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임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가시 돋친 설전과 정쟁, 파행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란다.

남북관계 주도권 바탕 마련
국보법은 전두환 정권 때 통금을 해제한 이후 더욱 자유롭고 질서있게 살아가고 있듯이, 그리고 이번 국회에서 폐지될 것으로 전망되는 호주제도와 같이 사라져야 할 법률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으나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고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들을 억압하여 왔기 때문에 국보법이 폐지되면 일정기간 금단현상과 혼란이 야기될 것이 예상된다. 국보법 존치론에서 제기하는 문제점들에 대하여도 성실하게 답을 강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행 국보법을 폐지함으로써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을 방지하고 그 인적자원과 창의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북한에 대한 무장해제가 아니라 남북관계에서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국보법의 폐지는 그 법으로 인하여 이미 엄청난 상처를 입은 기성세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장래의 세대를 위하여 긴 안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