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2년 2월 26일에 발표된 글입니다.
——————————————————————
<성명서>
“국민의” 정부는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방침을 철회하고 파업노동자들을 공권력으로 짓밟지 말라
우리나라 국가기간산업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철도와 발전산업 노동자들 수만여명이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사유화) 및 해외매각을 반대하며 25일 파업에 돌입하였다. 국민의 발과 국민의 동력이라고 불리어지는 국가기간산업인 만큼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한 파장은 매우 심대하다. 다행히 철도의 경우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나 발전산업 노조의 경우는 아직도 협상 전망이 불투명하기만 하다.
철도노조와 발전산업노조가 이번 파업에서 핵심적인 문제로 제기된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논의되어 왔음에도 관련 노사뿐만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논의만 분분할 뿐 국민적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이다. 기간 산업의 능률만을 강조한 정부의 매각 정책과 기간 산업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매각 반대의 입장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위와 같은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국민경제의 틀을 바꾸는 것으로서 민영화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따라서 민영화에 따른 엄청난 국민경제적 파급효과를 감안한다면 논의가 분분한 민영화 문제가 어느 일방의 의사에 의해 강제될 성질의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정부는 변변한 공청회 한번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오로지 민영화 일정에 맞추어 이를 힘으로 밀어 부쳐 왔다.
국민경제적으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에서 초래될 상업적인 폐해와 해외매각시 발생할 국부유출이 문제되고, 민영화 대상 사업장의 근로자들에게는 민영화에 따른 구조개편과 심각한 고용불안을 초래될 것 또한 명백하다. 국가기간산업의 사유화 및 해외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정책은 이처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만을 변동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의 발과 동력을 몇몇 국내재벌과 해외자본의 지배하에 두게 되는 중차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민영화 대상 사업장의 노동조합은 민영화의 일방적 진행에 대한 문제를 계속적으로 제기하여 왔고,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의견 수렴을 요구하여 왔다. 그러나, 대상 사업장 사용자는 물론 관련 정부 당국은 이를 무시하여 버림으로써 끝내는 이 건 파업에 이르게 된 것이다. 요컨대, 철도나 발전 산업의 경우 이 문제에 관한 한 어떠
한 대화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파업을 조장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민영화와 관련된 어떠한 교섭도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 것인가? 민영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구조조정과 그로 인한 근로조건의 현저한 변화는 당연히 노동조합에서 교섭을 요청할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민영화 반대를 전제로 한 어떠한 대화도 허용할 수 없다는 사용자나 정부 당국의 태도는 현행법상으로도 정당하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철도·발전 산업 노동조합이 위 민영화 문제를 거론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은, 형식적으로 위법한 것일지 모르나, 실질적으로는 정부나 사용자의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에서 불가피하게 비롯된 것으로 내용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당국자가 법에 정해진 형식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불법필벌을 강조하는 것은, 법의 형식을 빌어 국민의 정당한 의사와 행동을 강압하겠다는 의사로 볼 수밖에 없다. 이 점에서 정부와 공안당국이 이한동 국무총리의 입을 빌려 “정부는 실정법에 따라 불법파업의 주동자에 대해 불법필벌의 원칙을 지켜 엄단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법이 원칙대로 적용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나, 문제의 본질을 접어 둔 채,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절차 위반만을 문제삼아 엄단 운운하는 것은 본질을 왜곡시키는 일이다. 또한 그것으로 법질서가 확립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법조문의 형식적 해석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 정신에 입각한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첫째, 철도·발전산업의 민영화는 국민경제적인 파급효과와 대상 사업장 근로자의 근로조건의 현저한 변화를 초래하는 것인만큼 정부당국은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관련 사업장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변화에 대하여 근로자 또는 노동조합과 충분한 협의를 하여야 한다.
둘째, 필수 공익 사업장에 대한 직권 중재 조항에 대하여는 수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정족수 부족으로 위헌 선언이 되지 못하였으나 위헌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 바 있으며, 최근에 행정 법원에서 다시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이루어져 사실상 위헌성이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조항을 위반한 것이 현행법상 위법한 것이라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셋째, 이번 철도, 발전산업노동자들의 파업은 정부의 부적절하고 무성의한 대응에 원인의 일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민영화문제는 철도의 경우에는 작년 7월부터, 발전산업의 경우에는 지난 해 10월부터 시작된 단체 교섭의 쟁점이었으나 사측은 핵심쟁점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채, 직권중재와 공권력 투입만을 기다리며 불성실교섭으로 일관해옴으로써 국가기간사업의 공동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야기하게 된 것이다.
넷째, 2001년 5월11일 국제연합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사회권 위원회)는 한국정부에 대하여 ①파업을 범죄시하는 정부의 접근방식이 잘못과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조합에 대한 형사소추의 중지 ②노동관련 시위 및 파업에 경찰력 사용의 자제를 촉구하며, 파업의 합법성을 판단하는데 관련기관에 과도한 재량권이 주어져 있는 것을 우려를 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정부 당국은 공권력의 투입에 의한 엄단을 언급하기에 앞서 사태의 본질을 회피하지 말고 대상 사업장 노동조합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 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기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간 곳이 없고 신자유주의의 이름아래 시장 경제주의만 횡행하는 요즈음, 이것만이 국민의 정부에게 건 마지막 희망을 간직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의 이름을 빙자하여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지 말 것과 파업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구속방침을 철회할 것을 “국민의” 정부에 대해 강력히 촉구한다.
2002년 2월 2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송두환
[법률지원단]
김남준, 전영식, 김도형, 강기탁, 이경우, 강문대, 조영선, 고지환, 고태관, 권두섭, 권영국, 김영기, 김갑배, 김기덕, 김성진, 박훈, 박현석, 전형배, 김기열, 김동균, 최명준, 김연수, 김외숙, 문재인, 윤인섭, 정재성, 최성주, 김우진, 김인회, 김주현, 김진국, 윤영석, 이오영, 이원재, 이인호, 정태상, 남성렬, 노승익, 도재형, 문병호, 최원식, 문한성, 민경한, 박수근, 이정택, 천낙붕, 박승옥, 전성우, 성상희, 송해익, 최봉태, 김선수, 김진, 신대철, 신치수, 안중민, 윤영환, 이강훈, 이상호, 이원영, 이형범, 이재명, 장광수, 장동환, 전해철, 정경모, 정대화, 정주석, 정채웅, 조상희, 조영보, 조현철, 차지훈, 차흥권, 최수영, 최용석, 최종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