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유족회가 발족하면서 우리 유족회에서 1000여명의 회원들을 접수할 때
사무실 구석구석에 빼곡히 들어앉아서,
노예보다도 더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한 서린 징용의 경험을 토로하는 생환자들과,
아버지를 징용으로 빼앗기고 고아가 되어 무정한 세상을 헤매며 살아온 유족들이
쓰라린 인생역정을 눈물로 하소하는 소리를 듣고
몇 달이나 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던 적이 있었다.
이제 16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번에 강제 징용자 실태조사를 하면서
그들의 분노와 고통은 아직도 치유 받지 못하고,
깊은 생채기는 더욱 더 곪아만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을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누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인가.
우리가 한반도에 태어나 한반도를, 우리의 조국을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나라를 잃으면서 우리는 적의 손에 속수무책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나라를 되찾은 후에는 적의 손에서 입었던 칼부림, 살육의 진한 고통을
내 어머니인 나라가 적의 편에 서서 외면하고 있다.
나는 내가 그들을 보듬고자 했고,
그들을 다독여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에 실태조사를 하면서 오히려 그들이
나를 보듬고 위로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좌절과 눈물과 한탄 속에서 생활해오는 그들이 오히려
나를 보듬고 위로하고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생활고 속에서 어렵게 살아오면서,
후유증의 고통 속에서 약으로 살아오면서,
그들은 말없이 나를 지원하고, 행동으로 나를 따랐던 것이었다.
나를 앞에 두고 하소한다, 아프고 늙고 낙이 없어 이젠 죽기만 바란다고.
누가 우리 노인들의 일생을 고통으로 점철되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왜 아무런 조처도 없다는 말인가.
강제징용 피해자들, 생존자, 희생자, 그리고 유족 모두
너무나 순수했기에 전쟁을 일으킨 이웃나라 일본에 당하고
고국에게 철저히 외면당해왔다.
그들의 순수함을 이용하지 말라. 비웃지 말라.
그들의 하소가 바로 나의 하소이다.
그들이 나를 지지하였고, 어머니처럼 따랐기에,
나는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의 지원을 돌려주고자 한다.
한국정부는 무신경한 단잠에서 깨어나라.
그들의 고통을 듣고, 그들을 보살피라.
2003년 5월
태평양전쟁 희생자 광주 유족회장
강제징용자 실태조사원 3인 대표
이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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