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사형폐지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요건

2001-12-06 232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10월24일자에 게재되었던, 이석태회원(민변 부회장)의 글을 게재합니다.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 법률로는 형법과 국가보안법이 있는데, 형법 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예컨대 간첩죄를 저지른 경우 가장 무겁게 사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동안 형벌 법규에서 두고 있는 이와 같은 사형 처벌 규정을 폐지하고자 하는 운동이 있어 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사형폐지 운동이 상당할 정도로 사회 여론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 오클라호마시 연방청사 폭파범인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 집행을 하루 앞둔 10일 미국의 인권단체 회원들이 사형 집행장소인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교도소 앞에서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사형 제도를 두느냐 마느냐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생명관과 직결되어 있으며, 사형이 반지성적 형벌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사이에 큰 이론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두대의 예에서 보듯 과거에는 사회 구성원에게 처형 장면을 공개하여 겁을 줌으로써 사형이 범죄를 줄인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오늘날은 사형과 범죄 간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즉 사형제도가 있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며 사형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범죄가 느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형죄가 유지되는 이유는 몇몇 중대한 범죄의 경우에는 범죄인의 목숨으로서 죄의 값을 치룬다는 응보적인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또 우리도 군사독재 시절 경험한 바이지만, 국가안보 사범을 사형으로 처벌함으로써 국가를 방위한다고 하는 국가안보적인 관점이 배경에 있다.

먼저 응보적인 사상이라는 것은 범죄가 주로 범죄인 자신의 잘못에 연유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일찌기 이태리의 범죄심리학자 롬브로조는 범죄인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고 하는 범죄생래설을 편 적이 있는데, 오늘날 그의 학설은 거의 폐기된 처지다. 현대에 와서 범죄는 범죄인 개인의 잘못과 범죄인을 그런 형편에 가져가게 한 사회적 책임이 중첩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범죄인에 대한 처벌과 아울러 교화에 신경을 쓰고 있으며, 교도행정도 범죄인이 처벌을 받은 후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데 사형은 오판의 문제점을 포함하여 사회 복귀가 아니라 아예 생명을 빼앗는 것이므로, 사회적 책임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모든 행동은 크던 작던 사회적 여건의 산물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환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인간의 행동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범죄를 사회적 책임과 무관하게 오로지 본인의 잘못으로만 돌릴 수 있는 것일까.

응보보다 사회적 책임이 더 크다 할 국가안보적인 관점은 우리의 경우 분단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됨으로써 비극적인 예를 낳아 왔다.
1970년대에 대법원의 국가보안법 위반죄 유죄 선고가 있자 바로 해당 피고인들을 전격적으로 사형시킨 인민혁명당 사건은 사형 제도가 안고 있는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1987년의 6월 항쟁 후 민주화의 요구에 따라 이와 같은 국가안보적인 관점은 인간안보의 관점으로 개선되어 가고 있으나 과거에 적용되던 사형제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이렇게 볼 때 응보적인 관점과 국가안보적인 관점을 완화시켜 사형폐지 논의로 승화시켜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여건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구체적으로 분단 문제를 포함하여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때 폭력이나 무력을 피하고 가급적 평화적인 수단을 찾도록 여론을 모아가야 할 것이다. 사회가 경성으로 치닫고 있는데 범죄인의 목숨을 귀하게 여길 것인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존중될 것인가. 그런데 작은 예 같기는 하지만 요즈음 폭력 영화가 유행하고 온갖 사회 갈등 구조가 해결은 커녕 오히려 더 복잡하게 심화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부드러움’이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또 다소 먼 예인 것 같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미국 사회의 경우 적어도 형벌제도와 관련하여 우리가 본 받을 게 무엇이 있는 지 의문이다. 유럽의 다수 국가와 영국이 1960년대에 폐지한 사형제도를 미국의 많은 주는 아직 존속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오클라호마 주청사 폭파범의 사형 집행 과정을 언론이 생중계하느라고 전 미국이 법석을 떠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거기에다가 지난 9월에 있었던 끔찍한 뉴욕의 비행기 테러 사건과 그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폭격은 단순히 미국의 사건을 넘어 여러모로 우리 사회를 긴장케 하고 어둡게 한다.

생명의 존중은 긴장을 늦춘 여유로움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사랑의 공동체라 할 여러 종교계가 연대하여 사형폐지 운동에 동참키로 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사형폐지 운동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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