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단병호위원장 재구속사태 유감

2001-11-27 127

현 정부의 철저한 노동배제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주노총이 부득불 정권퇴진까지 주장하여 노정간의 대립상황이 계속되고, 날씨마저 찌는 듯한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던 지난 7월말, 단병호 위원장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중재로 자진출두하면 형집행정지 취소에 따른 잔형을 복역한 후 그 외의 나머지 행위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약속을 받고 8월 2일 자진출두했었다. 당시의 답답한 상황에서 단병호위원장의 자진출두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과 같은 결단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해 출범한 현 정권에 대한 기대가 차츰 물거품으로 되어가고 정권퇴진을 주장하기에 이른 시점에서, 현 정권의 위와 같은 약속은 현 정권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조속히 해결되어야 할 주5일 근무제,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문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문제 등 산적한 노동현안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갈 것이라는 희망도 갖게 했다.

▶ 발뺌하는 정부에 차라리 연민 느껴

그런데 잔형 복무를 마치고 출소를 앞둔 시점인 9월 27일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는 단병호위원장을 불러 지금까지의 불법행위에 대한 반성문 제출, 앞으로 폭력사태 우려가 있는 집회를 열지 않겠다는 약속, 파업을 자제하고 불법파업을 지도하지 않겠다는 약속 및 노사정위원회 복귀 약속을 요구하고, 단병호위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천주교의 중재로 청와대가 한 약속을 무시하고 10월 3일 단병호위원장을 재구속하였다.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이후에 민주노총이 개최한 집회가 불법이라는 것 등이 이유였다.
검찰이 단병호위원장에게 석방의 대가로 요구한 사항들은 민주노총 위원장의 지위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들로서, 검찰은 재구속의 빌미로 삼고자 위와 같은 요구를 한 것에 불과하다.
최고권력기관인 청와대가 도덕적 권위를 갖는 종교계의 중재로 한 약속을 어기는 것은 도의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위와 같은 약속마저 지키지 않는 현 정권에 대해 무엇을 더 기대하겠으며, 현 정권의 무슨 약속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다시 위와 같은 약속을 했던 청와대 관련자들이 약속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나, 중재를 한 종교지도자와 그 종교계가 위와 같은 약속사실을 확인하고 재구속에 대해 무기한 항의농성을 하고 있다. 결국 청와대 관련자들의 부인은 발뺌에 불과함이 명백한데, 이렇게까지 궁색하게 대처하는 정권에 실망감을 넘어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한다.
밈ㄴ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민주적 노동운동 진영의 대표라는 상징적 지위에 있는 단병호위원장에 대한 재구속은 현 정권이 철저하게 노동계를 배제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여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내세우고 있다. 노동계에 대한 철저한 배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정당을 어떻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노동자는 중산층과 서민에 포함되지도 못한다는 말인가?

▶ 마지막 기대 져버리지 않길

현 정권의 노동배제적 정책은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어느 정도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손실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파업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은 파업권이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노동자의 유일한 권익보장수단이기 때문이다. 파업으로 인해 초래될 수도 있는 혼란과 경제적 손실은 사회가 감수하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런데 현재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검찰 공안부가 공안적 시각에서 대처하고 있고, 주요 언론들은 파업의 부정적 효과만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현 정권 들어 3년6개월여의 기간 동안에 구속된 노동자 수가 지난 김영삼 정권 5년 동안에 구속된 노동자 수를 초과했다.
아무래도 현정권에 걸었던 일말의 기대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꺼진 불씨를 뒤지는 마음으로 이 정권에 촉구한다. 단병호 위원장을 즉각 석방하여 현 정권에 대해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