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검찰을 기대한다

2001-10-23 113

다음 글은 “법률신문”(2001년 9월 24일자)에, 김석연 변호사가 기고한 글입니다.

회원 김석연 변호사

우리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상의 평등원칙이 법전에만 존재하는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현실에 있어서 속속들이 구현되는 사회가 바로 정의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국민들로부터 법을 적용할 권한을 위탁받은 기관이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갖가지 구실을 들어 사람을 차별하는 사회라면 그런 사회에서 정의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소독점주의를 기본구조로 하고 있어서 모든 범죄행위에 대한 소추권이 검찰에게 독점되어 있다. 불기소처분에 대한 헌법소원 등 검사의 소추권을 견제하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 제도를 통해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취소되어 재기소되는 경우가 사실상 극히 예외적이라는 사정을 감안할 때 결국 우리사회 대부분의 범죄행위는 검사의 손에 의해 결정되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범죄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겨져있기는 하나 만약 검사가 범죄 행위를 적극적으로 수사하여 기소하지 않는다면 법원은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이다.

결국 정의사회를 실현함에 있어 가장 1차적이고 우선적이며 중요한 법집행기관은 검찰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 된다.

한마디로 검찰은 우리헌법상 법 앞의 평등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함으로써 정의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국가기구 중 가장 막중한 권한이 주어진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실현의지가 없는 소추기관을 둔 국민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들이 가장 증오한 권력이 왕보다도 왕의 곁에서 소추권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고 혁명에 의해 최초로 파괴된 곳도 바스티유감옥이었다는 사실은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데 대한 민중들의 소추기관에 대한 불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이미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유행어가 된지 오래이다. 이 말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법집행에 대한 불신을 대표하는 말이다.
한 마디로 돈과 권력의 차이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대우한다고 국민들은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과 권력은 우리사회의 기득권층 또는 사회지도층을 상징한다. 따라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용어는 곧 검찰이 자신에게 독점되어 있는 소추권을 행사함에 있어 우리사회 기득층과 사회즈도층을 차별적으로 우대했다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검찰의 정의사회구현에 대한 의지를 시험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재벌의 한 계열회사가 그 재벌의 총수자녀 등 특수관계인에게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함에 있어 장외시장의 주식거래가격보다 현저하게 저가로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여 당해 사채의 인수자인 총수의 특수관계인으로 하여금 막대한 차익을 실현할 기회를 준 것에 대해 시민단체가 이를 결의한 계열회사의 임원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배임) 위반 혐의로 고소했을 때 검찰이 이를 무혐의 불기소처분했던 사건이다.

위 사건은 부산에 소재한 모중소벤처기업의 사장이 장외시장의 주식거래가격보다 현저하게 저가로 전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환사채를 인수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챙긴 사안에 대해 검찰이 동인을 구속기소하고 부산고등법원이 배임혐의를 인정하여 실형유죄판결이 내려진 사건과 비교가 되었다.

두 회사 모두 비상장회사였고, 그 발행주식의 일부가 장외시장에서 유통되어 장외거래가격이 형성되어 있었으며, 주식관련 사채를 발행함에 있어 주식을 취득할 수 있는 가격조건을 자오이시장의 거래가격보다 현저하게 낮게 정한 사안이어서 그 구조가 매우 유사하였는데 두 사건간에 크게 다른 점은 한 사건은 막강한 재벌 계열회사에서 벌어진 사안이었고 다른 사건은 지방의 작은 중소벤처기업에서 벌어진 사안이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검찰은 위 재벌 계열회사의 경영진을 배임혐의로 수사함에 있어 소환조사가 아닌 서면조사로 수사를 마무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검찰의 행동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실망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 것을 과연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밝다는 속담이 있다. 이것은 서양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과도 통한다. 사회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입고 있는 기득권층이나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국민들로 하여금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검찰은 정의사회를 구현하여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는 사명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다.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는 검찰은 국민들로 하여금 좌절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우리사회의 기득권층과 사회지도층에 대하여 보다 엄격한 검찰, 그래서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검찰,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자신의 직무에 충실한 검찰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