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국가보안법의 개폐와 인권위원회법 제정에 대한 정부와 여야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한다

2001-09-10 222

철야농성을 마무리하며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인권위원회법 제정에 대한
정부와 여야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틀간의 철야농성을 마치며 김대중 정부와 여야가 연내에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인권위원회법 제정에 대하여 전향적 결단을 내리기를 거듭 요구한다.

해방 이후 냉전적 대립의 와중에서 기형적인 모습으로 태어난 국가보안법은, 전세계적인 탈냉전과 남북화해의 새로운 시대적 흐름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여전히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짓누르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과거 군사독재의 암울하고 음침한 유산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참기 힘든 고통과 희생을 치르며 싸울 때, 국가보안법은 무수한 시민과 학생을 차디찬 감옥으로 어두운 거리로, 가혹한 고문과 의문의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6월 시민항쟁을 계기로 오랜 군사독재정권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커다란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지금의 ‘김대중 정부’도 군사독재와 국가보안법에 의한 가혹한 탄압에 항거한 시민들의 숭고한 투쟁과 희생 위에서 비로소 탄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당시 여야의 대통령 후보 모두 민주주의와 인권을 내세우며 “눈부신” 공약을 내걸었다. 야당의 총재 역시 국가보안법의 악용을 지적하며 그 개폐를 주장하였으며, 현 정부 역시 국가보안법의 철폐와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을 인권정책으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를 짓눌렀던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그 황폐화된 자리에 국가인권기구라는 자랑스러운 터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에 우리 모두 가슴 부풀었고, 이제는 어두웠던 과거를 씻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이제는 국가기구의 햇살 아래, 고문과 의문사, 비밀스러운 공작과 조작, 모든 불법적인 인권유린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국가보안법 개폐라는 해묵은 문제는 여야의 정략적 이해에 이끌려 연내에 개정조차 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악법개폐의 취지 역시 왜곡되어 누더기가 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의 폐허 위에 새로이 세우겠다던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어둠 속에 방치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우리는 결연한 마음으로 국가보안법개폐와 인권위원회법의 제정을 요구하며 철야농성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철야농성을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는 수구와 냉전을 탯줄로 버텨온 반민주적 세력들, 그리고 그에 야합한 간교한 정략가들과 무거운 싸움을 해야함을 절실히 느낀다. 철야농성을 정리하면서 우리는 개혁입법을 성사시키기 위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새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국가보안법의 개폐와 인권위원회법의 제정은 지금 김대중 정부의 개혁 의지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상황을 가늠하는 시금석이자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이다. 우리는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 땅의 모든 민주세력과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결연히 투쟁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제해온 변호사단체와 교수단체가 거리에 나서서 시위를 하고 구호를 외치기에 이른 현 시국을 깊이 헤아려, 김대중 정부와 여야 모두가 국가보안법 개폐와 인권위원회법의 제정을 위한 대승적 결단을 내리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작은 목소리가 커다란 분노의 함성으로 바뀔 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역사가 가르치고 있는 생생한 교훈을 여야 모두 되새기기 바란다.

2000년 12월 1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