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위]「차별금지법안」(의안번호 1903793호)에 관한 검토의견서

2013-04-09 253

「차별금지법안」(의안번호 1903793호)에 관한 검토의견서

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

○ 현재 우리나라에는 차별시정을 위한 개별적인 차별금지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등)들이 존재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4호에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개별적인 차별금지법률만으로는 개별법 이외의 영역에서 발생하거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차별사유들과 하나의 특정 사유에 국한되지 않고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차별의 양상에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법」 역시 그 본질이 실체법이 아닌 조직법에 해당하고 구제수단에 강제력이 없어 피해자 구제에 미흡하다는 점 등에서 일반적 차별금지법을 대신하기에는 명백한 한계를 지닙니다.

○ 따라서 헌법상 평등권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그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실체법으로서, 차별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실효성있는 구제수단을 제공하며 개별 차별관련법제 및 정책의 상위법이자 준거법으로 기능할 수 있는 일반적·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 「차별금지법안」(의안번호 1903793호, 이하 ‘안’이라고 함)은 이러한 취지를 담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원칙적으로 이러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며 최근의 발의 움직임을 환영합니다.

○ 다만 안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해 아래와 같은 의견을 제출하니 법안심사에 적극 반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Ⅱ. 제1장 총칙에 관한 의견

1. 안 제3조 제6호 광고의 정의

○ 안 제3조 제6호는 ‘광고’를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표시 및 광고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현재 안에서 ‘광고’라는 단어는 제17조 제1호에서만 쓰이고 있습니다. 한편 안 제4조 제5호는 ‘성별·학력·지역·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행위’를 이 법(안)상의 차별로서 규정하고 있는데, 위 규정의 연혁으로 보아 ‘행위’라는 문언 앞에 ‘광고’라는 문구가 과실로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 안 제17조 제1호 및 (문구 누락이 맞는 경우) 제4조 제5호의 ‘광고’는 각 조항의 취지에 비추어볼 때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의도적인 활동’이라는 의미를 널리 의도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안 제3조 제6호가 ‘광고’를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정의규정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이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을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행위의 범위가 ‘사업자’가 자신의 ‘상품과 용역에 관한 사항’을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거나 제시하기 위한 상업광고에 국한되어버리는 결과가 발생합니다. 이는 앞서 본 해당 조항의 입법취지와 맞지 않으며, 제17조 제1호에서 규율하고자 하는 ‘모집·채용 광고’와도 명백히 모순되는 내용의 정의규정입니다.

○ 따라서 안 제3조 제6호의 ‘광고’에 대한 정의를 상업광고에 국한되지 않는 넓은 개념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안 제4조(차별의 범위)에 관하여

1) 안 제4조 제1호

가) 차별금지사유의 구체적인 명시

○ 안 제4조 제1호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4호에 열거된 19개 사유에 ‘언어’, ‘성적평등’, ‘성별정체성’, ‘고용형태’를 추가한 형태로 차별금지사유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 차별의 의미와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차별 구제를 도모하겠다는 차별금지법의 제정의 취지에 부합하기 위하여서는 차별금지사유를 법률 해석의 2차적인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도록 구체적으로 모두 명문화하여 누구든지 차별금지사유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출신민족, 정치적 견해,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과 같이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존재하는 사유일수록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차별금지사유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항목일 가능성이 크므로, 차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조항에 명시하여 차별이 금지되는 사유에 해당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 이러한 점에서 안 제4조 제1호가 차별금지사유를 폭넓게 열거하는 있는 점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나) 추가된 사유에 대한 의견

○ 현재 기간제․단시간근로자 및 파견근로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규정한 비정규보호법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비정규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차별해소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므로 ‘고용형태’를 추가하여 이를 규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 또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성전환자에 대한 차별을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에 포함시켜 처리하고 있으나, ‘성적 지향’은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성전환자에 대한 차별과 의미상 구별되므로 ‘성별정체성’이라는 차별금지사유를 별도로 명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 ‘언어’ 역시 현실에서 문제되는 차별사유를 널리 포괄하는 점에서 신설이 적절합니다.

○ 다만 추가된 사유 중 ‘성적평등’은 그 의미가 매우 불분명합니다. 현행법이나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닐 뿐더러 ‘성적평등을 이유로 한 차별’이라는 명제는 어법상으로도 성립될 수 없습니다. sex, gender 및 sexuality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성 정체성과 관련한 차별은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이라는 차별금지사유로 규율되고 있으므로, ‘성적평등’이라는 불분명한 용어는 삭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 삭제된 사유에 대한 의견

○ 안 제4조 제1호는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용어인 ‘임신 또는 출산’ 대신 ‘출산형태’,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 대신 ‘가족 형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신’은 ‘출산형태’와 명백히 구별되는 개념으로서 의미상 ‘출산형태’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가족 형태 및 가족 상황’은 ‘가족구성의 형태, 가족의 구성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책임과 관련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책임과 관련한 상황’을 의미하는 ‘가족 상황’의 개념 또한 ‘가족 형태’라는 단어에 포괄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상과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임신’과 ‘가족 상황’은 반드시 별도의 차별금지사유로서 명시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 분류에 대한 의견

○ 안 제4조 제1호는 일정한 차별금지사유들을 가운데점(‘·’)으로 묶어 신체조건, 출생지, 혼인상태, 사회적 신분 등 몇 가지 범주로 분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류기준이 적절하지 않아 혼란을 주거나 범위를 부당하게 좁아질 위험이 있습니다.

○ 예를 들어 ‘성별’이나 ‘연령’을 이유로 한 차별은 ‘신체조건’에 대한 차별보다 그 범위가 훨씬 크며, ‘인종’이나 ‘출신민족’을 이유로 한 차별 역시 대한민국에서 출생한 자에 대한 차별을 포함하므로 ‘출생지’를 이유로 한 차별로 분류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또한 개인의 내밀한 지향성과 정체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회적 신분’보다 넓은 개념입니다.

○ 따라서 보다 적합한 분류 체계를 선택하거나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같이 차별금지사유를 분류하지 않고 병렬적으로 열거하는 방안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2) 안 제4조 제4호

○ 안 제4조 제4호는 성별,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장애라는 5가지 사유에 한하여 ‘신체적 고통을 가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소위 괴롭힘, harrassment)을 차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별, 용모, 출신지역, 가족형태, 종교,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등 위 조항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차별사유들을 이유로 한 괴롭힘 역시 매우 심각하게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유독 위 5가지 사유에 한하여 괴롭힘이 금지되어야 하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상대방에게 신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인 괴롭힘(harassment)은 본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의미하지만, 그 괴롭힘의 형태가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행해지는 것일 경우에는 차별대우의 의미까지 포함하게 됩니다.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사유를 이유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게만 행해지는 괴롭힘은 개인들 간의 사사로운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권력관계와 위계관계에 기반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이며, 피해자를 그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로부터 고립시키거나 배제하는 수단으로 쓰이거나 고립 또는 배제시키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들은 인권을 침해받는 동시에 학교에서 고립되거나 배제됨으로써 학생으로서 받아야 할 교육 또한 동등하게 받지 못하게 되는 차별의 결과가 발생합니다. 법을 통해 금지되는 차별사유를 이유로 하는 괴롭힘을 일반적인 자유권 침해와 달리 차별금지법에서 규율하는 것은 이러한 취지이며, 위 취지는 안 제4조 제4호의 5가지 사유뿐만 아니라 다른 차별금지사유 모두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입니다.

○ 이상과 같은 괴롭힘 금지 조항의 취지 및 모든 차별사유에 걸쳐 심한 괴롭힘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차별로서 금지되는 괴롭힘을 5가지 사유에 한정하여 규율하는 것은 부당하며 합리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안 제4조 제4호의 괴롭힘의 사유는 안 제4조 제1호에 규정된 모든 차별금지사유로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해외 입법례 : 독일 「일반평등대우법」제3조 제3항, 캐나다 「인권법」제14조 제1항 등의 경우 사유를 한정하지 않고 모든 차별금지사유에 근거한 괴롭힘을 금지하고 있음

3. 차별금지의 예외 규정에 관하여

○ 안은 ‘합리적인 이유’(제4조 제1호, 제17조, 제42조 제2항) 또는 ‘정당한 사유’(제4조 제3호, 제18조 제2항 등)라는 문구 외에 차별금지의 예외 규정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 그러나 ‘적극적 우대조치’는 차별금지의 예외사유로 반드시 규정되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와 이를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정·개정 및 정책의 수립·집행에 관해서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예외규정 신설이 필요합니다.

4. 복합차별 규정의 신설 필요성에 관하여

○ 현실 속에서 차별은 단일한 차별사유에 근거하여 이루어지기도 하나, 여러 차별사유가 서로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차별예방과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차별의 양태들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있는 범주가 필요하므로 안 제4조(차별의 범위) 이하에 복합차별에 관한 규정을 두어 이를 규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 또한 차별의 정당화 사유와 관련하여서도 복합차별의 경우에는 사안에서 문제되는 개개의 차별사유에 대한 정당화 사유가 모두 존재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별도로 두어야 합니다.

○ 해외 입법례 : 영국 「평등법」14조(Combined discrimination: dual characteristics), 독일「일반평등대우법」제4조(복수의 사유에 의한 차별대우) 등

Ⅲ. 제2장 국가의 차별금지계획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의견

○ 안 제2장은 차별금지정책위원회에서 차별금지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주요정책을 심의하도록 하면서, 위 위원회의 위원장은 국무총리, 부위원장은 법무부장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 위원회는 차별진정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와 어떠한 접점도 갖지 않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어 차별에 관한 정책과 그 시정이 별개로 진행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시정기본계획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두 기구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통합적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 차별금지정책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해서도 위원은 중앙행정기관의 장, 국무총리실장 및 ‘인권정책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서’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이 위촉한 전문가로 구성한다는 규정만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내용만 가지고는 차별금지기본계획 수립·시행 과정에 국가인권위원회나 시민사회 등 정부로부터 독립된 인권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절차가 체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안의 인권기본법으로서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차별금지기본계획 수립·시행 과정에 정부로부터 독립된 인권전문가의 의견을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절차 규정들이 필요합니다.

Ⅳ. 제4장 차별의 구제에 관한 의견

실효성있는 차별구제를 위하여 안 제39조 이하에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나라의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은 기본적으로 직간접적인 피해액을 보상하는 것에 한정되어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손해배상액으로는 차별시정의 효과가 크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 특히 의도적으로 차별을 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패소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차별금지법을 위반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이익일 수 있으므로 법률 위반 행위를 지속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악의적 차별임이 인정되는 경우 재산상 손해액 이외에 손해액의 몇 배수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규정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 우리 법체계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맞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으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여부는 입법 정책상의 문제일 뿐입니다. 특히 2011. 3. 29.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제35조 제2항이 신설됨으로써 우리 법제에도 민사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 따라서 악의적인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규정을 두어 법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할 것입니다.

2013. 4. 9.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장 주 영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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