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1 궁궐의 우리나무 (박상진)

2008-05-16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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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공부모임은 5월 21일 수요일 7시, 박상진의『궁궐의 우리 나무』, (주)놀와, 2006(초판 9쇄) 입니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와  『게으른 산행』 도 참고해 주시구요, 아래 김선수 변호사님이 작성한 관련 글도 꼭 읽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무와 친구 되기- 김선수 변호사




 


먹을 것을 제공하는 나무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전북 진안 산골짜기에서 살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초롱불로 밤을 밝혔다. 신작로도 뚫리지 않아 차도 다니지 않았다. 내가 나올 때까지 마을 전체에 전화나 텔레비전도 없었다. 가정형편도 넉넉하지 못해 먹고 사는 문제가 빠듯했다. 마을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냇가와 벌판이 있으며, 그 건너편에 다시 산이 있었다.


나무와 풀과 야생화는 항상 가까이 있었지만 친구로 삼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절기에 따라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나무들이 반가웠을 뿐이다. 이름도 모두 알 필요가 없었고, 먹을거리를 제공하거나 생활에 쓸모가 있는 것 정도만 외웠다.


봄에는 앞산뒷산에서 참꽃인 진달래꽃을 따 먹었다. 많이 먹으면 입술과 입안이 파랗게 변했다. 찔레 순을 꺾어서 껍질을 벗겨 먹었고, 노란 감나무 꽃도 맛이 좋았다. 5월말이나 6월에는 꿀이 많은 아카시 꽃이 우리 배를 채워줬다. 아카시는 두 사람이 잎을 하나씩 따서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손가락으로 작은 잎을 튕겨 먼저 모두 떨어뜨리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재료가 되었다. 장난감이 없는 시골에서는 좋은 장난감이었다.


여름에 산에는 산딸기와 깨금 등이, 밭에는 뽕나무의 오디가 좋은 간식거리였다.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 으름, 머루, 다래 등도 구경할 수 있으나 아주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과실수들에 열린 과일들이 풍성했다. 앞산과 뒷산의 밤나무, 집 주위의 감나무와 고염나무, 간혹 대추나무와 호두나무 등의 열매를 따거나 주우러 다녔다. 감은 단감, 왕감, 장도리 또는 뾰조리감 등등 생긴 모양에 따라 이름을 붙여 다양했다. 홍시로도 먹고, 덜 익은 상태에서 따서 물에 넣어 불려서 먹기도 하고, 곶감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홍시를 광에 보관해두었다가 겨울에 먹기도 했다. 고염을 따서 항아리에 넣어두었다가 겨울에 홍시와 함께 먹으면 별미였다.




이런저런 용도의 나무들


시골에서 싸리나무는 자치기나 윷의 재료가 되었다. 또 곧고 가늘어서 지휘봉 비슷하게 잘 다듬어서 하나씩 보관하기도 했다. 논바닥에 잘 꽂히므로 나무치기를 할 때 좋은 무기가 되기도 했다. 빗자루를 만들어야 하므로 겨울이 되기 전에 싸리나무를 충분하게 베어 와야 했다.


닥나무는 겨울에 팽이채를 만드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알아야 했다. 보통 밭두렁이나 논두렁에 무더기로 자랐다.


대학에 다닐 때는 봄이 오면 관악캠퍼스에 꽃이 순서대로 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핀 후 철쭉과 라일락이 이어서 폈다. 개나리의 진한 노란색은 희망을 주었지만, 화려한 벚꽃은 오히려 외로움을 주었고, 라일락의 향기는 알지 못할 슬픔을 주었다.


군대에서는 빗자루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베어 와야 했다. 철책지역에서 싸리나무를 베다가 지뢰를 밟아 부상당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있어 항상 조심해야 했다. 겨울에 훈련 받을 때 너무 추워 몰래 불을 피울 때는 항상 싸리나무를 이용했다. 연기가 나지 않고 타므로 걸리지 않고 불을 피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군대에서 기억에 남는 나무 중의 하나는 피나무이다. 제대하는 사람에게 기념품을 하나씩 선물하는데, 피나무로 만든 바둑판이 인기가 좋았다. 그래서 소대에 제대자가 있으면 바둑판을 만들 수 있는 피나무를 찾으러 산속 깊이 헤매기도 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특별히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가로수나 아파트 단지에 생각보다 많은 나무들이 있음에도 거기에 나무가 서있다는 사실 자체도 간과하고 지내고 있었다.




2007년 6월 30일 산딸나무와의 만남


2007년 6월 30일 청계산에 갔다가 이수봉 못 미쳐 철책으로 둘러싼 지점에서 뜨거운 뙤약볕 아래 흰 양산을 층층이 쓰고 있는 나무와 만났다. 같이 산행을 하고 있던 박태주 선배가 산딸나무라고 알려주었다. 가을에 딸기와 같은 열매가 열려 산의 딸기나무라는 의미로 산딸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하얀 꽃잎 4개가 열 십(十)자 형태로 되어 있는데, 하얀 것은 꽃잎이 아니라 잎이 변한 포(苞)라는 것이다. 꽃은 그 위에 아주 작게 나 있고, 꽃만으로는 벌이나 나비를 불러올 수 없으므로 잎이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변했다는 것이다. 생명의 오묘한 이치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태주 선배는 생강나무 잎을 따 주면서 냄새를 맡아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강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고 한다고 설명해줬다. 그 당시에는 생강은 뿌리를 먹는 야채이지 나무이름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 박태주 선배는 등산을 왜 하느냐고 물으면 나무를 보러 간다고 대답할 정도다. 그러면서 참나무 종류 구별법, 소나무 종류 구별법, 청가시덩굴과 청미래덩굴 구별법, 쪽동백과 생강나무 등등을 설명해주었다. 나무를 보면서 그 자리에서 설명을 들은 것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고 바로 내 것이 되었다.




우종영의 『게으른 산행』과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산딸나무와 운명적인 만남 이후 어느 산에 가더라도 그 산의 대표적인 나무 하나를 간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에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관리를 위해 산행을 하였는데, 그 기회에 나무도 보기로 했다. 그 즈음부터 카메라도 가지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대모산과 구룡산부터 시작했다. 무엇을 대표적인 나무로 삼을까 찾아보았다. 껍질이 조각조각 벗겨지는 물박달나무가 첫눈에 들어왔고, 껍질눈이 다이아몬드 형태인 은색 줄기의 은사시나무, 수피가 비교적 매끈한 팥배나무, 대모산 정상 근처에 있는 싸리나무와 산사나무, 구룡산 정상에 있는 조그만 노간주나무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들 나무들의 이름을 아는데도 상당한 진통과 기간이 필요했다. 사진을 찍어 와서 도감을 찾아보고, 그래도 몰라 오랜 기간 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우연한 기회에 알기도 했다.


박태주 선배는 나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나에게 우종영 선생의 『게으른 산행』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하면서 우종영 선생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도 같이 구입해서 읽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비로소 또 다른 세계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꾸준히 노력하는 길밖에


그 이후에는 나무 관련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사서 읽고 매주 산에 가면서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다. 생활 속에서 대화의 주제를 나무로 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나무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약 10개월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초보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숲해설가 과정을 꼭 참여해보고 싶은데 여의치가 않다.


앞으로 2년 정도는 더 깊이 빠져보았으면 하는데 가능할 것인지? 그리고 일정한 경지에 오를 수 있을지? 제자리걸음을 하고 진도가 나아가지 않아 답답하다.


그러나 어쩌랴. 욕심 부리지 말고 매일 나무와 친구 되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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