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즈 정의론>공부모임 후기-최은순 변호사

2008-03-20 241

<롤즈의 정의론> 공부모임 후기  (최은순 변호사)
 


1. 민변공부모임의 전도사가 된 듯한(?) 김모 변호사님의 권유에 2번째로 공부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어려운 책을 열심히 읽고 와서 발제를 하는 진지한 발제자의 모습, 거침없고 자유로운 토론, 그 내용의 다양성, 뒷풀이의 재미 등등. 첫 모임에서 이 모든 것들에 매료되어 이번에도 참석하게 되었고 영광스럽게도(?) 이번 후기는 새내기인 내 몫으로 돌아왔다. 




2. 이번 모임은 서울대학교 김도균 교수님께서 「John Rawls의 정의론과 한국사회」라는 제목의 강의(?, 책을 읽지 않은 내게는 강의로 들렸다. 그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민변 사이트에 게재된 원고를 참고하시길 당부한다.)를 하시고 질의 및 토론 형식으로 전개되었다.




3. 김교수님은 롤즈에 대해 ‘롤즈의 정의원리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정의의 제 1원리) 정당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교정하려는 평등주의적 관점을 견지(정의의 제 2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자유주의적 정의론의 초석을 마련하였다’고 평가하였다. 특히, 김교수님은 롤즈의 정의론 일반론에 덫붙여 우리 헌법체계를 이와 결부시켜 설명해 주셨다. 특히, 헌법의 기본권 해석과 관련된 헌법재판소의 실무를 롤즈의 정의원리와 결부시켜 분석하는 노력과 함께 롤즈의 정의원리를 헌법상의 권리로 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 토론시간에는 롤즈의 정의론의 의의와 평가, 시대 사조와의 관계(특히,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공리주의 및 복리주의)나 역사적 배경과 관련된 논의, 롤즈의 정의론의 현재적 가치 및 의미, 롤즈의 정의론의 현실적 적용과 관련하여 유럽, 미국의 비교 및 우리 사회에의 적용과 그 가능성 등에 대한 토론이 주를 이루었다. 그 외에 롤즈의 정의원리 현실적인 개인들의 기본권 충돌시에 해답의 원리가 되지 못하고 전부 이익형량문제로 환원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 롤즈의 정의론 비판과 관련된 내용 등 구체적인 내용, 롤즈의 저항권의 한계 등과 관련된 논의가 있었다. 이들 논의를 전부 요약할 능력상, 시간상의 제약으로 요약은 생략한다. (다만, 김교수님이 이들 논의를 바탕으로 롤즈 정의론 관련 논의를 더 심화연구하실 계획이므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은 향후 김교수님의 연구결과를 기대하시라는 팁을 드린다.)




5. 김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는 그간 내가 아는 체 해 왔던 롤즈의 정의론이란 것은 롤즈의 비판론자들이 비판이었고 롤즈의 정의론이 진정으로 목표하였던 그 실천적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였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즉, 롤즈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최대명제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즉 사회 전체가 하나로서 효율성을 추구하게 되는 과정에서 최소수혜자들의 행복, 배분적 정의가 소외되는 점에 착안하여 사회제도의 기반과의 관련에서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찾아주기 위해 실천적인 사회적 정의론을 세우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롤즈는 그런 점에서 그간 정의라는 것을 언어적인 내지는 사유의 문제로서 개인적 윤리나 도덕의 문제로만 다루오던 이전의 철학자들과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그럼에도 그가 사회적 정의의 원리를 찾는 과정에서 방법론적으로 채택한 ‘원초적 상황’, ‘무지의 베일’이라는 것이 ‘가당치도 않는, 있을 수도 없는 가정’이라는 점만 보고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민변모임은 개인적으로 ‘롤즈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가 반전운동과 미국의 민권운동의 세례를 받으면서 흑인들의 혹독한 삶에 대해 얼마나 실천적인 과제를 찾기 위해 노력하였는지는 그가 정의의 제 2원리를 세울 때 매우 잘 드러나는 듯하다. 즉, 그는 사회적 배경이 각자의 능력과 노력, 업적의 차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만 그 능력과 노력에 의한 분배를 인정(기회 균등의 원리)함으로써 사회적 요인들에 의한 불평등을 제거,보상,교정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래서 심지어 타고난 재능이나 행운과 같은 자연적 요인들에 의한 불평등에 대해서도 천부적 재능의 분배를 공동의 자산으로 보고 불운한 사람들도 도울 수 있도록 자신들의 자질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던 것이다.




6. 한편으로, 롤즈가 자신이 1단계로 세운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원칙들이 사회의 제도적 구성에 적용되는 과정(제 1단계 헌법의 정당성 부여, 가상적 정의 원리 합의, 2단계 제헌의회에서의 정의구현, 3단계 헌법제정 4단계 사법부 강제 등), 입헌 민주주의의 제도들을 염두에 두고 자유와 법과 분배 등 논의하고, 자유의 원칙이 헌법에 의해 보장되고 차등의 원칙은 입법을 통해 실현된다는 결론까지 도출(이는 모임 후에 안 것이다.)하는 것을 보면 헌법학에서의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우리 법조인들에게는 익숙한 헌법 기본권 제한의 이론들-기본의 등급화,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보장을 위한 사상의 자유, 정치적 의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등과 같은 다각적 수단의 보장의 강조, 사회경제적 기본권의 경우의 입법적 재량권을 통한 기본권 제한가능성 등-의 많은 부분들이 롤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7. 그런데, 공부모임 내내 드는 의문 하나는 롤즈가 정의의 제 2원리인 차등원리를 통해 최소수혜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의 배분을 강조하긴 하나, 그 이론적 전제조건이 자유주의적 틀 안에 있다 보니, 또 롤즈의 정의론 이후 더 강화되어 가고 있는 자유주의적 추세인지 공리주의적 추세(신자유주의, 더 극단적으로 ‘승자독식사회’라고도 누군가 표현하기도 하는 사회) 속에서 사회적 기본권의 보장이 제 2원리의 보장으로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다. 즉, 자유를 등급화, 결국 기본권을 자유권적 기본권과 사회?경제적 기본권으로 나눠 전자는 헌법의 영역에 후자는 입법의 영역으로 제한가능한 것으로 보는 롤즈의 정의론은 최소수혜자의 보호를 위한 국가의 적극 개입, 생산수단이나 토지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소유권을 제한하기 위한 논리로서는 정당해 보이나 거꾸로 오늘날과 같이 정치적 자유보다 기본적 생존권이 중요한 사회에서 생존권을 단순 복지로만 파악하지 않고 롤즈가 최대보장하려는 권리의 영역인 제 1의 원리에 포함시켜 생존권이 최대한 보장되게 하려면 이러한 롤즈의 구성으로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다.


   또한, 롤즈가 세운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리와 가족의 자율성 보장 문제가 서로 충돌하는 것과 교육의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각 가정에서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타인이나 자녀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한 자율성 보장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롤즈가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현실과 승자독식사회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현실을 목도하였다면 이렇게 나이브하게 얘기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지위-특히 공직 취임 등에 있어서의 실력에 따른 엄정한 평가(절차적 공정성 원리)를 롤즈는 강조하였다. 그럴 경우에 ‘적극적 조치’에 의한 누적된 차별의 결과시정을 위한 조치들로 성별, 인종별로 내지는 롤즈의 입장에서 최소수혜자로 볼 수 있는 장애인, 농어촌 출신 지역자 등에 대한 각 할당제 시행이 롤즈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문과 함께 그의 정의론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았다.  




8. 마지막으로, 행운평등주의에 입각하여 각자에게 자신의 노력의 댓가에 해당하는 정당한 몫만큼만을 배분하려는 롤즈의 태도에 따르면 사회적 행운에 의해 성취한 결과 중 많은 부분을 세금이나 법이나 제도등을 통해 사회에 환원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이것이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롤즈가 상상한 ‘무지의 베일에 쌓인 가정적인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탐욕스러운 개인들의 다수결 원리, 의회민주주의를 통과해야 한다. 또한, 각자에게 제몫을 시장원리가 아닌 다른 원리에 의해 보상, 배분하려 할 경우에 각자의 노력의 댓가분과 사회시스템적 측면의 도움 등을 어떻게 나눠서 측량하고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다면 롤즈의 이론은 결국은 헌법상의 원리, 실천적 원리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 틀 내에서 또 하나의 도덕 규범으로 타인에 대해 이타적 관심의 호소를 부르짓는 정의론으로 환원되고 마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일었다.




9. 롤즈가 던진 ‘공정으로서의 정의’‘그 정의를 사회제도에 관철하기 위한 노력’의 정신을 승계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나 전 세계가 처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해답을 찾는 것은 결국은 우리 몫이다. 이런 우리 몫을 진지하게 해 나가기 위한 초보적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이 ‘공부’의 가치인 듯하다. 그런데, 마침 민변 공부모임의 차기 주제가 공리주의에 관한 것이다. 롤즈의 정의론의 대척점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는 공리주의, 현재 우리 사회의 근저에 깊이 깔려 있는 공리주의를 이 롤즈의 정의론과 대비시켜 보면 롤즈 논의에서 풀지 못한 숙제, 고민의 실타래가 한가닥이라도 풀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낙관론을 품고 다음에 있을 공리주의 공부를 고대해 본다. 또 그날 오신다는 이상영 교수님과 이번 모임에서 롤즈와의 매개자 역할을 해 주신 김도균 교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하니 이 두 분의 깊은 논의는 물론이고 2차 모임도 기대하며 부족한 모임후기를 맺는다. (참고로, 시간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중 매우 쉽게 롤즈에 접할 수 있는 책 한권을 소개키로 한다. 이양수, 롤스 & 매킨타이어 정의로운 삶의 조건, 김영사 200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