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상에 관한 두 번째 텍스트
민변 공부모임에서 법사상 두 번째 텍스트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채택하고 2008년 1월 22일 모임을 가졌다. 책은 한 권으로 특정하지 않고 몇 권을 소개하고 각자가 알아서 읽는 것으로 했다. 소개된 책은 다음과 같다.
① 니콜로 마키아벨리, 권혁 옮김, 『바티칸의 금서 군주론』, 돋을새김, 2005
②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군주론』, 까치, 2003
③ 마키아벨리, 강정인 역, 『군주론: 강한 국가를 위한 냉혹한 통치론』, 살림, 2005
④ 로베르토 리돌피, 곽차섭 옮김, 『마키아벨리 평전 – 시인을 닮은 한 정치가의 초상』, 아카넷, 2000
⑤ 루이 알튀세르, 오덕근·김정한 옮김, 『마키아벨리의 가면』, 이후, 2001
⑥ 김욱, 『마키아벨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 책세상, 2003
나는 권혁이 옮긴 책을 기본으로 하고, 알튀세르와 김욱의 책을 읽고, 리돌피의 평전을 군데군데 발췌해서 읽었다.
마키아벨리의 약력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가의 통치 하에 있었는데, ‘꽃의 도시’로 불리고 입헌공화정 안에서 이루어진 자비로운 독재가의 통치체제로 평가된다.
1492년 로렌초 메디치가 사망한 후 피렌체는 혼란에 빠졌고 결국 1494년 메디치가의 통치가 끝나고 공화정치가 시작되었다. 1495년부터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신권정치가 시작됐으나 지나치게 엄격하고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상실하여 1498년 4월 8일 사보나롤라가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시뇨리아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그 후 피렌체에는 공화정치가 실시되었는데, 마키아벨리는 1498년 5월 28일 제2서기장에 선임되었다. 프랑스, 독일 등에 사절로 파견되기도 하고, 민병대를 조직하고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피렌체 공화정을 위해 활동했다. 그리하여 ‘피렌체의 서기장’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1512년 피렌체의 공화정부가 실각하고 다시 메디치가 통치로 복귀하였다. 마키아벨리는 구 정권에 봉직했다는 이유로 1년간 억류되었고 잠시 공직에 복귀되었으나, 반메디치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1513년 교황 레오10세 즉위 기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1513년 7월부터 12월에 걸쳐서 『군주론』을 집필했다. 1527년 죽을 때까지 많은 글들을 썼다. 마키아벨리는 1516년에 『군주론』을 교황 레오10세의 조카인 젊은 로렌초 메디치에게 헌정하고 발탁되길 희망했으나 메디치가는 마키아벨리를 중용하지 않았다. 1520년 피렌체 정부의 명을 받고 채권사절로 파견가기도 하고, 피렌체 정부의 의뢰를 받아 『피렌체사』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1526년에는 성벽방위위원회의 장이 되기도 했으나, 중용되지는 못했다.
1527년 5월 16일 피렌체의 금요일의 봉기로 메디치가의 통치가 다시 몰락하고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마키아벨리는 메디치가에서 몇 가지 일을 한 것으로 인해 공화정에 참여할 수 없었고, 결국 같은 해 6월 21일 사망했다.
문장가 또는 시인으로서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보통 정치가 내지 정치사상가로 알려져 있으나, 훌륭한 시와 희극도 쓴 문장가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가 쓴 희극 『만드라골라』(1518년)와 『클리치아』(1525년)는 실제 성공리에 공연되기도 했다. 공직에서 쫓겨난 후 베토리와 주고받은 편지는 마키아벨리의 일상생활과 당시 유럽의 판세를 읽는 뛰어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군주론』의 문체는 서양에서는 꽤나 유명한 모양이다. 미사여구나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모범적인 문체로 통한다. 리돌피가 쓴 평전에는 마리아벨리의 문체에 대한 다음과 같은 평가가 소개되어 있다. “진중한 듯하다가도 경멸조로 돌아섬으로써 당시 칭송과 인기를 함께 누렸던 그의 문체. 그것이 지닌 비할 데 없는 대담성과 힘. 그의 교의가 드물지 않게 지고의 권위를 부여받는 것도 작가로부터 풍겨져 오는 바로 그러한 인상 덕분인 것이다.” 리돌피는 마키아벨리의 글을 “신이 내린 글”이라고 극찬을 했다.
번역에서의 용어 문제
권혁이 옮긴 책은 『군주론』 원전 26장 전체를 번역한 것인데, 매우 읽기 편하고 의미전달이 쉬웠다. 추천된 책 중에는 전문 번역이 아니고 발췌번역하면서 해설을 곁들인 책들도 있다. 공부모임에서 그러한 책만을 읽은 회원 한 사람이 전문 번역서를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번역서의 경우 용어가 문제로 된다. 권혁 번역의 책에서는 군주(왕)나 귀족에 대응하는 개념을 ‘백성’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이는 부적절한 용어 같다. 국민국가가 형성되기 전이니 ‘국민’도 부적절할 것이다. 김욱의 책에서는 ‘민중’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으나, ‘민중’은 20세기 후반에 사용된 용어이어서 역시 부적절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인민’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강정인의 책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마키아벨리의 주요 개념인 포르투나(fortuna)와 비르투(virtu)를 어떻게 옮길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이다. 포르투나는 보통 ‘운’이나 ‘운명’으로 번역된다. 비르투는 ‘역량’, ‘덕’, ‘역능(力能)’, 능력 등으로 번역된다. 알튀세르의 번역서에서는 ‘역능’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 – 공화주의자인가 군주주의자인가
마키아벨리 사후 480년 이상이 지났다. 그런데도 마키아베리를 둘러싼 많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로 불리는 중요한 논쟁점들은 마키아벨리는 공화주의자인가 아니면 군주주의자인가, 친메디치인가 반메디치인가, 종교론자인가 무신론자인가 등등이다.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 논고』에서 공화주의자로서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는데, 『군주론』에서는 군주정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에 마키아벨리가 과연 공화주의자인가 아니면 군주주의자인가 하는 점이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루소는 마키아벨리가 왕들을 가르치는 체 했지만 진정으로 가르치려 했던 이들은 바로 인민들이고, 『군주론』은 공화주의자들의 책이며, 『리비우스 논고』에 이르러 공화주의자로서의 향기를 표출하였다고 평가했다.
알튀세르는 루소의 견해가 틀렸다고 지적하고 군주정과 공화정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이해한다. 새로운 국가 내지 정부를 창건할 때는 군주정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시작, 즉 국가의 창건은 한 개인의 행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군주정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창건된 국가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법을 통해 안정화되어야만 한다. 국가는 자신의 정체를 권력의 민중적 뿌리로 제도화하도록 전화시킬 경우에만 시간적으로 존속하고 공간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것이다. 군주정으로 창건된 국가가 공화정으로 발전해야만 지속될 수 있다.
이탈리아 통일국가의 가능한 정부형태 모색
『군주론』은 제1장에서 제11장까지 군주국의 여러 종류(유형학)와 그 성립과정에 대해 기술한다.
세습군주국, 복합군주국(기존 세습군주국의 군주에게 정복되어 편입된 군주국), 교회형 군주국, 완전히 새로 탄생한 군주국 등이 분석된다. 완전히 새로 탄생한 군주국의 유형으로는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탄생한 신생군주국, 다른 세력의 군대와 행운으로 기반을 얻게 된 신생군주국, 부정하고 사악한 방법을 통해 군주의 자리에 오른 유형, 시민의 호의로 군주가 된 유형 등이 있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가 가능한 정부형태의 일람표를 검토하면서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목표와 양립불가능한 기존의 봉건적 형태를 소거하였다고 본다. 당시 분열되어 있고 외국의 침입으로 고통 받으며 또한 교황도 세속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이탈리아의 상황에서는 기존 군주국의 어떠한 군주에 의해서도 국민통일을 이룰 수 없다. 결국 자신의 군대와 능력으로 신생군주국을 창건하는 길만이 이탈리아통일의 가능한 형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자국군대의 중요성
제12장부터 제14장까지는 군대의 종류를 검토하고 군주가 군사에 정통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에 있어 군대에 대한 본질적인 명제는 국가장치로서의 이데올로기와 법에 대한 군대의 우위성(군대는 제1의 핵심적인 국가장치로서 국가를 구성하고 실재적인 물질적 존재를 부여한다), 군사에 대한 정치의 우위성(군대, 그 구성, 편제, 유용성 등은 우선적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이라고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대의 종류로 용병, 지원군, 혼성군, 자국군 등을 검토한다. 그 결과 군주는 자신의 군대가 없으면 절대 안전할 수 없으므로 자국군대를 가져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국군은 상시적인 시민군의 형태를 취하고, 기병에 대한 보병의 우위를 확보하도록 군대를 재조직화함으로써 군대를 국민통일의 학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의 정치적 실천
제15장부터 제25장까지는 군주의 실천원리를 설명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종교와 도덕 그리고 윤리로부터 완전히 분리해낸다. 정치는 결과를 중시하고, 그 과정에서 수단을 도덕으로부터 해방시킨다. 또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이를 통치에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부분은 동양의 병서나 법가와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구절들을 뽑아본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는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언제나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곧 몰락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라면 사악하게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며, 자신의 필요에 따라 그것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가 된 경우에 관대한 것은 해로우며, 군주가 되는 과정에 있는 경우에는 관대하다는 평을 받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인색하다는 평판을 얻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다만 경멸이나 미움을 받게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비로 인한 혼란보다는 잔혹함으로 인한 질서가 낫다.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사랑하는 자를 해칠 때보다 두려워하는 자를 해칠 때 더 주저한다. 사랑은 일련의 의무감에 의해 유지되는 것인데, 인간은 비열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경우라도 그것을 저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지되므로 거스를 수 없다.
군주는 짐승(힘에 의존하는 것)과 인간(법률에 따르는 것)의 성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의 성품을 활용해야 한다. 현명한 통치자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해지거나 약속하도록 만들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약속을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지켜서도 안 된다. 군주는 운명의 방향과 자신에게 닥쳐오는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는 인민의 미움을 받거나 경멸당할 만한 일들은 그 어떤 것이든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주를 미워하게 만드는 것은 탐욕스러움, 인민들의 재산과 부녀자를 강탈 등이고, 경멸받는 것은 변덕스럽고 경솔하며 여성적이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군주는 측근의 충성심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를 잘 관찰하여 우대하고 부유하게 만들며 친숙하게 대함으로써 명예와 책임을 나누도록 해야 한다.
군주가 아첨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자신이 진실한 이야기를 듣더라도 결코 화내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 외에는 없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군주에게 진실을 말할 수 있다면 군주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그들에게만 진실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훌륭한 조언은 현명한 군주로부터 비롯된다. 훌륭한 조언에 의해 군주의 현명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훌륭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운명의 반은 인간이 좌우한다. 운명의 여신은 격렬하게 넘실대는 강물에 비유할 수 있다. 운명은 맞서 견뎌내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곳에서 그 위력을 드러내며, 운명을 막기 위한 제방이나 둑이 만들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힘을 집중시킨다. 전적으로 운명에 의지하던 군주는 그 운명이 변화하면 몰락해버린다.
운명에 대담하게 맞서야 한다. 신중한 행동보다는 과감한 행동이 낫다.
운명은 여성이어서 그녀를 손아귀에 넣어두고 싶다면 때려눕혀 거칠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그녀는 냉철한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보다 과감한 사람에게 더욱 많이 이끌린다. 운명은 언제나 젊은이들과 더 친하게 사귀는데, 젊은이들은 그다지 신중하지도 않고 매우 공격적이며 보다 더 대담하게 그녀를 다룬다.
마키아벨리의 당파성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의 당파성이 법의 체계에 의해 구속되는 군주의 정부는 인민과 귀족의 투쟁에서 인민의 편을 택하는데 있다고 평가한다. 귀족은 지배를 향한 강력한 욕망을 갖고 있는 반면, 인민은 단지 지배받지 않으려는 욕망, 결과적으로 자유롭게 살려는 강력한 의지를 지니고 있으므로 귀족과 인민이 갈등할 때 군주는 인민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귀족과 인민 사이의 투쟁과 균열을 안정화시키고 자유를 생성시키는 매개체로서 법이 등장하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인민의 관점에서 이탈리아의 통일을 확립할 군주의 실천을 진심으로 요청하고 사유했다는 것이다.
『군주론』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들이 위와 같은 입장을 뒷받침한다.
귀족들은 억압하기를 원하지만 인민들은 억압받지 않기를 원하므로 인민들의 목표가 더 정의롭다. 인민들의 수가 많기 때문에 군주는 인민을 적으로 삼게 되면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지킬 수 없다. 군주는 언제나 동일한 인민들과 함께 살아야 하지만 동일한 귀족들과 살아야할 필요는 없다.
군주는 기필코 인민들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군주는 곤경에 빠졌을 때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다.
군주에게 가장 훌륭한 요새는 인민이다. 인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음모에 대해 군주가 갖출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비책은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음모를 꾸미는 자들은 언제나 군주를 암살하는 것으로 백성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군주는 비난받을 만한 일들은 남에게 미루고, 자비를 보일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군주는 귀족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 하지만 그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당파성 때문에 이탈리아 공산당 이론가인 그람시나 프랑스 공산당의 독자적인 이론 분파을 이끈 알튀세르도 마키아벨리에 의존했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의 새로운 군주를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으로 해석했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의 의식이라는 가면 속에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고 고백했다.
김욱의 한국의 대통령들 분석
김욱은 마키아벨리즘이 어떤 경우라도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좋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전제 위에서, 마키아벨리즘을 사용수단과 결과를 기준으로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한국의 대통령들을 분석했다. 4가지 유형은 마키아벨리즘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반마키아벨리즘의 성공과 실패이다.
마키아벨리즘의 성공은 ① 나쁜 수단으로 좋은 결과를 이루는 경우이고, 마키아벨리즘의 실패는 ② 나쁜 수단이 과도하여 나쁜 결과로 전화된 경우이며, 반마키아벨리즘의 성공은 ③ 좋은 수단으로 좋은 결과를 이루는 경우이고, 반마키아벨리즘의 실패는 ④좋은 수단만 고집하다 나쁜 결과에 이르는 경우라는 것이다.
김욱의 한국 대통령들에 대한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승만의 분단반공국가 이념은 헌법제정권력의 정당성을 양립시키지 못해 마키아벨리즘이라 보기 어렵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이념과 치유불능에 빠진 정권의 정당성·정통성 부재는 그의 정치를 마키아벨리즘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마키아벨리즘으로 보아야 한다. 김영삼은 정당의 정당성 부재를 안고 정권을 잡았지만 정권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마키아벨리식의 군주가 아니었다. 김대중의 집권으로 우리 사회는 개인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 데까지 정치적 진화를 이루었고 그도 마키아벨리즘에 충실하려 했지만 결코 훌륭한 마키아벨리스트는 아니었다. 노무현의 반마키아벨리즘은 이제 역사의 시험대에 올라있고, 성패는 민중의 헤게모니에 달려있다. 김욱씨가 책을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3년 4월에 출판했으므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없는데, 제17대 대선에서 보수진영에게 정권이 넘어간 현재 노무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궁금하다.
몇 가지 생각들
이번 독서를 통해 마키아벨리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에게 매료되었다. 다양한 실례를 들면서 간명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군주론』의 문체와 내용은 훌륭했다. 마키아벨리가 44살 때 『군주론』을 썼는데, 그보다 나이가 많은 현재의 나는 어떤 글을 쓸 수 있으려나?
마키아벨리는 훌륭한 시와 희극까지 썼다. 한 여인에게 매료되어 위대하고도 중차대한 문제 같은 것은 생각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친구에게 보내고, 자신의 애정행각을 소재로 해서 『클리치아』라는 희극을 쓰고 이것을 연극으로 공연하기도 했다.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피렌체, 나아가 이탈리아의 통일국가 형성을 위한 일념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출간하고, 또한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에게 자신을 발탁해줄 것을 간청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공자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
정치는 냉엄하게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노무현 정부는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과 진정성을 믿어 달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라고 강변해왔으나 결과는 참담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의 평가 자체도 이념적인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적을 위한 진정한 방법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주의에 매몰될 경우 돌이킬 수 없는 과오의 길로 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