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를 읽고- 김영준 변호사

2008-01-10 227

민변가입후 공부모임만 두차례 나간 김영준 변호사입니다.
지망위원회는 써냈지만, 아직 위원회쪽의 연락은 못 받았습니다.(솔직히 지금은 공익소송쪽으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도 하고요. ^^)

민변공부모임에서 선배변호사님들의 고견 들으면서, 많은 자극을 받았는데, 마지막 고미숙저/호모 쿵푸스 때는 이 책의 테마인 공부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하여 민변공부모임의 의의를 되돌아보고 ‘수유+너머’라는 연구공간의 운영방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날 약속드린 대로 저자가 2007년 한겨레신문기획 강연좌담(테마는 ‘자존심’)에서 했던 문답을 옮겨드립니다. 공부방법론에 대한 대단히 심도있는 사회자, 같이 강연을 했던 박노자도 감탄했던 문답입니다.

청중 6 :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제 앞에 당면한 가장 큰 권력이 자본권력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수유+너머’라는 연구공간을 통해서 자본권력에 대해 자존심을 세우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처럼 취직을 준비하고 있는 많은 학생들이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요즘에 가장 큰 고민이라서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고미숙 : 제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정말 자유로운가를 생각해보면, 완벽한 건 아니고, 상대적으로 좀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직장을 갖고 어떤 직위를 가지고 계신 분들보다는 그렇다는 겁니다. 친구나 선배교수들을 만나면 제가 자유롭다는 것을 좀 느껴요. 제 처지가 확실히 교수님들과는 대비되니까. 그런데 사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길을 나선 건 아니고, 늘 말하지만 저는 딱 한 걸음만 내딛은 거예요. 대학에 취직해야 되고 돈을 벌어야 되고 그 안에서 위계적인 질서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그냥 한 발짝 옆으로 샌 것처럼, 지금은 또 다른 방식의 문턱에 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도 있고, 제 주변에도 있는 거예요. 공동체 안에도 언제나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고 지금 질문하신 분이나 저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만 앞으로는 가는 거예요.
  개인마다 상황이 다 다를 터인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조언을 드릴 수는 없지만, 제일 먼저 내 욕망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취직을 해서 어떤 직종을 갖고 싶다는 것 자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그 욕망의 뿌리가 어디인가는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그러고 난 다음, 거기에서 하나씩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혼자 힘으로는 참 어렵기 때문에 두 사람이든 세 사람이든 친구와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전략입니다. 사실 저는 그 작전 하나로 여기까지 왔는데, 저는 절대 저 자신을 믿지 않아요. 제 자신의 재능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가 정말 제 안에 있는 지배와 예속으로부터 자유로운지에 대해서 저 자신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항상 어떤 관계와 활동 속으로 저를 밀어 넣어버립니다. 그러면 저의 내면과 활동이 장점이든 단점이든 다 노출이 되거든요. 그러면 그걸 바탕으로 한 발짝씩 좀 더 유능하고 힘있는 사람에게 묻어서 갈 수 있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 실존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잘못하면 좀 위험해요. (청중웃음) 그리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나중에 파시스트가 될 확률이 커요. 왜냐하면 자기가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남에게도 그런 식의 결단을 요구하거든요.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약점은 약점대로 강함은 강함대로 혼자서 승부하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옆에 있는 친구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잘 못하는 부분은 그 친구가 더 열심히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컨대 나는 취직이 안 되고 친구가 취직이 되면, 친구 가방도 들어주고 (청중웃음) 밥도 얻어먹고 그러다가 보면 또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거든요.
  저기 계신 박노자 선생님은 제가 아는 한 한국어를 제일 다중적으로 구사하는 한국인이에요. 외국어의 천재지요. 노르웨이 말과 러시아 말은 당연히 잘 하겠죠. (청중웃음) 심지어 한문, 산스크리트어로 불경을 봅니다. 그런 걸 알면 질투와 분노가 막 솟구치지만, 그것만 살짝 누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절대 경쟁할 필요가 없어요. 어떻게 하면 저 두뇌와 신체를 잘 활용할까? (청중웃음) 그건만 연구하면 돼요. 일종의 매니저가 되는 거죠. 그래서 박노자 선생님이 연구실에서 강의를 하면 저도 강의를 열심히 듣습니다. 그러면 네이버 지식검색과는 비교가 안되는 온갖 종류의 자료가 그냥 막 술술 흘러 나옵니다. 그러면 그 순간 내 신체는 박노자 두뇌와 접속되는 거예요. 박노자 선생님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청중웃음) 그러니까 그런 것인 사실 실질적인 연대죠.
  이런 것들을 할 수 있으면 이 세상에 어떤 사람도 열등하고 우월한게 없어요. 이런 기막힌 방법을 알려고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헤쳐 나가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자본과 타협해버립니다. 권력의 장막 속으로 무릎을 꿇고 들어가는 거예요. 사실 그렇게 해서 남을 지배하고 남을 지배하는 쾌감으로 살고 있는 거죠. 이 세상에 자본가라는 것이 다 그런거 아닙니까? 남을 지배하기 위해서 돈을 무지막지하게 벌어야 하잖아요. 그러지 말고 지금부터 10년동안만 저처럼 머리를 굴려서 친구들과 여낻를 하면, 10년 뒤엔 분명히 다른 종류의 삶이 펼쳐져 있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단 한 발짝도 못 벗어납니다. 10년, 20년 뒤에는 더더욱 자본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되고, 결국 무릎을 펼 수 없는 아니 무릎을 꿇어다는 것조차 기억할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