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현금의 지배”를 읽고 – 김진욱 변호사

2008-01-10 177

“현금의 지배”를 읽고 – 김진욱 변호사

성경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원저명 Cash Nexus)의 저자 니알 퍼거슨(Niall Ferguson)은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전쟁’이야말로 근대 및 현대국가의 기본적 모습을 형성한 가장 중요한 動因이라는 독특한 역사관을 제시한다.  오늘날의 국가를 기초지우는 근본적 제도들은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요한 장치로서 고안된 것이거나 혹은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가 채용하고 있는 제도들을 수용, 모방한 것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국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제도들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근대 이래의 전쟁들은 총력전이며 따라서 ‘자원을 총력으로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인데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결국에는 자원획득 수단으로서의  ‘돈’을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었는가 여부가 가장 중요했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구와 생산능력, 자연자원 등의 측면에서 대륙의 경쟁상대국에 비하여 열위였던 영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세계의 패권국가로 등장하게 된 이유에 관하여 「의회, 세무공무원, 중앙은행, 국가채무제도」를  통해  필요 자원을 우월하게 동원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갖추었던 까닭이라고 한다.

「의회」는 소득세등 직접세를 징수할 수 있는 정치적 기반으로 작동하여 관세나 물품세등 간접세에 의존하는 경우에 비하여 세수증대를 가져왔고,  투명하고 잘 조직된 「세무공무원」은 종래의 징세청부인제도에 비하여 낮은 비용과 부패없는 재정수입 조달을 가능케 하였으며,  「국가채무제도」는 미래 평화 시기의 예상 조세수입을 전쟁비용으로 미리 당겨서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고,  「중앙은행」은  통화만발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를 저지하여 민간이 낮은 이자율로도 국가채무를 인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이 4가지 제도들은 상호 연계하고 관련하면서 결과적으로 영국으로 하여금 경쟁상대국에 비하여 전비 조달의 필요성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국들이 이들 제도들을 모방하고 수입함에 따라  이 4가지 제도는 현대국가의 기본적인 제도들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아가 저자는  영국에서 최초의 산업혁명이 가능하였던 연유에 관하여도 이상의 4가지 제도의 성립에서 찾고 있다.  읽고 셈할 수 있는 세무공무원의 조달을 위한 공공교육제도로부터 자기 사업을 영위할 능력을 갖춘 자들이 배출되었고,  의회의 발달은 재산권제도와 법의지배를 수립하여 ‘축적’의 제도적 기초를 형성하였으며, 국가채무인수와 관련하여 발달한 금융시장이 사업을 위해 필요한 자금조달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안정된 화폐가치 역시 화폐적 축적을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산업혁명을 위한 제도적 전제로서 기능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의 논지를 종합하면,  근현대 민주국가의 정치제도인 대의제와 법의지배 및 직업공무원제도들과  자본주의 경제제도인 화폐, 은행, 금융제도의 골간이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래서 아마도 저자는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을 소개하고 번역하게 한 전철환 前 한국은행총재는 소개말에서 ‘이 책을 접하고 현대역사에 있어서의 화폐(돈)와 권력의 역할, 그리고 상호관계에 관한 저자의 탁월한 식견과 통찰력에 매료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화폐의 역할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은 그것이 때때로 권력을 대체하는 작용을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역사로부터 전해들은 전쟁들-먼 과거의 수당의 고구려침입전쟁, 조선시대의 임란과 호란, 그리고 6.25등-에서 전쟁에 필요한 자원이 조달된 방법은 징병, 징용, 징발등 극단적인 권력적 수단이었던 데에 반하여  영국에 있어서는 현재 혹은 미래로부터 현금을 조달한 다음 그 현금으로써 소요 물자를 구입하는 방식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화폐라는 것이 사회 내에  권력적 수단에의 의존정도를 저감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구한말까지 現物을 징수대상으로 한 租庸調의 수취제도를 유지하였던 조선왕조가 절대적 전제정치체제였던데 반하여 현금 형태의 소득세를 징수하는 영국이 대의적 입헌정치체제였던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을 듯하다.  이렇듯 화폐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통하여  권력적 수단에의 의존을 대체하거나  혹은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한다면 사회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노력으로서  화폐적 수단의 역할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측면에서 이 책  「Cash Nexus」는 Cash가 작동하고 역할하는 국가 또는 세계 차원의 여러 분야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