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미국 헌법은 민주헌법의 모델이 아니다 -김선수 변호사

2008-01-10 170

미국 헌법은 민주헌법의 모델이 아니다 – 김선수 변호사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던 미국 헌법
법조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동안 미국 헌법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었다. 막연하게 표현의 자유는 수정 제1조가, 형사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는 수정 제6조가, 민사배심재판을 받을 권리는 수정 제7조가 보장하고 있다는 등 단편적인 쟁점에 대한 조항만 원용했을 뿐이다.
미국은 가장 선진적인 민주제도를 가지고 있고, 전형적인 대통령제로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가져 사법적극주의 입장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에 대해 확실한 견제역할을 함으로써 사법제도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대통령선거가 선거인단에 의한 선출이라는 간선제이고, 각 주의 선거인단이 승자독식의 형태로 한 표라도 많이 얻은 당이 그 주에 배정된 전체 선거인단을 독차지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는 이상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읽은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How Democratic Is the American Constitution: 박상훈·박수형 옮김, 후마니타스, 2004)는 미국의 헌정체제(constitutional system: 저자는 공식적인 헌법에 명시된 내용 외에 그만큼 중요한 선거제도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위 책은 로버트 달이 2000년 예일대 캐슬강좌(Castle Lectures)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여 출판한 것이다.

미국의 엄격한 헌법수정절차와 근본적 헌정체제의 유지
미국 헌법의 수정절차는 매우 엄격해서 상하 양원의 3분의 2가 수정을 발의하거나 전체 주 중 3분의 2 이상의 주 의회가 요청할 때 헌법수정회의를 소집하며, 전체 주 중 4분의 3의 주 의회가 비준하거나 또는 전체 주 중 4분의 3의 주 헌법회의가 비준하는 때에 헌법개정의 효력이 발생한다. 어떤 주도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상원에서의 동등한 참정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고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상원은 각 주의 의회가 선출한 6년 임기의 상원의원 2명씩으로 구성되며, 각 상원의원은 1표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미국 헌법은 1787. 9. 17. 헌법제정회의에서 제정된 이래 현재까지 11,000여건의 개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고 그 가운데 의회를 통과한 것이 29개이며, 27개가 주에서 비준되어 효력을 발생하고 있다. 주요개정으로는 수정 제1조부터 제10조까지의 권리장전(1789년), 노예제도 폐지에 관한 수정 제13조(1865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투표권을 인정한 수정 제15조(1870년), 연방의회 상원의원의 직접선거를 규정한 수정 제17조(1913년), 여성의 선거권을 인정한 수정 제19조(1920년), 대통령 임기를 2회를 초과하여 선출될 수 없도록 제한한 수정 제22조(1951년) 등이다. 한편 최근의 수정 조항은 1971. 7. 1. 비준된 18세 이상 시민의 선거권을 규정한 수정 제26조, 1992. 5. 8. 비준된 연방의원의 연봉인상 법률이 차기 하원의원 선거 이후에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한 수정 제27조이다.
미국 헌정체제의 기본구조라고 할 수 있는 연방제, 양원제, 상원의 각 주 동등대표권, 사법부의 강력한 위헌법률심사권, 단순다수제(1위대표제)의 선거제도,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대통령선거제도 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고 수정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과연 미국 헌법은 선진적 민주국가 헌법의 모델인가
로버트 달은 미국의 헌정체제를 비교법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1950년대 이래 안정적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22개 국가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유럽 15개국, 미국을 포함한 영연방 4개국(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중남미 1개국(코스타리카), 아시아 2개국(일본, 이스라엘)이다.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22개 국가 중에서 연방제를 채택한 국가는 미국을 포함하여 6개국(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스위스, 벨기에)인데, 모두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던 사정 때문이었다. 나머지는 단일정부체제를 채택하였다. 연방제 국가 중 확고한 양원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을 포함하여 4개국(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스위스)이다. 연방제 국가는 아니지만 영국도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1999년에 세습 상원의원 92석을 제외하고 모두 폐지하여 구닥다리 상원의 미래는 대단히 불투명해졌다. 상원에서의 심각한 대표의 불평등성을 나타내는 국가는 미국을 비롯하여 연방제 국가들인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스위스 등인데, 그 중에서도 미국은 가장 불평등성이 두드러진 국가이다.
사법부가 강력한 법률심사권을 갖는 국가는 미국과 캐나다, 독일 등 연방제 국가들이 이에 속한다. 선거제도의 경우 22개 국가 중 12개 국가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고, 6개 국가는 변형된 형태의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고, 3개 국가(미국, 캐나다, 영국)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결선투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강력한 양당제 체제를 유지하여 제3정당이 취약성을 드러내는 국가로는 미국 이외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등이다.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는 양당체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고 비례대표제는 다당제를 낳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뷔베르제의 법칙이라고 한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2개 내지 3개 정당으로 구성된 연합정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22개 국가 중에서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서 선출되고 헌법상의 중요 권한을 갖는 단일 행정수반인 대통령제는 미국이 유일하다. 코스타리카를 제외하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입법부가 행정수반인 수상을 선택하는 의회중심제의 몇 가지 변이형태들을 갖고 있다.
위와 같은 비교분석을 통해 로버트 달은 미국의 헌정체제는 오랜 역사를 갖는 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보편적이지 않은 사례일 뿐 아니라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독특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비례대표제에 근거한 다당제는 불안정하고 무능한가?
우리는 그동안 비례대표제가 다수대표제보다 시민들에게 동등한 대표권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아 더 공정하지만, 다당제로 귀결되어 다수대표제의 양당제보다 불안정하고 무능한 정부를 만들어낸다고 배워왔다.
그러나 로버트 달은 위와 같은 인식이 사실과 다름을 밝히고 있다. 비례대표제에 기반을 둔 합의제 정부는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정당도 다른 정당들과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나아가 야당과도 합의를 통하여 잘 통치하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패자의 수를 줄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책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합의를 강화한다. 그래서 합의제적인 특성이 강한 나라일수록 패자도 거의 승자만큼이나 자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학자 라이파트는 36개국을 대상으로 합의제 민주주의 유형과 다수대표제 유형을 비교한 후 “다수대표제 민주주의는 거시경제 관리와 폭력의 통제에 있어 합의제 민주주의보다 우월한 수행실적을 보여주지 못한 반면, 민주주의 질과 민주적 대표성에 있어서는 합의제 민주주의가 다수대표제 민주주의보다 뚜렷하게 뛰어난 수행실적을 보여주었으며, 공공정책의 지향이 갖는 관대함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는가?
어느 나라에 민주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위기나 혼란에 처하여 이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독재 내지 권위주의체제로 대체될 수도 있다. 민주정부가 성숙할수록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줄어들 것이다.
로버트 달은 20세기 동안 민주주의가 비민주적 체제로 대체된 경우는 대략 70번 정도였다고 분석한다. 민주제도가 20년 이상 지속되었던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전복된 분명한 사례는 1973년 우루과이의 경우가 유일하다. 같은 해 칠레도 민주주의가 전복되었지만 투표권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우루과이만큼 분명한 사례는 아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나치가 권력을 획득하기 이전까지 겨우 14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다.
위 통계를 유추해석 하면 민주주의가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헌정체제가 수립되고 적어도 20년 이상은 지나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1987년부터 계산하면 20년이 되었으나, 평화적 정권교체를 경험한 1997년부터 계산하면 1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권위주의체제 하의 지배세력을 승계한 정권이 지배한 시기를 민주적 헌정체제가 작동한 시기로 볼 수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취약하고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헌정주의와 민주주의의 갈등
로버트 달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강력한 법률심사권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법률과 행정조치가 헌법에 합치하는가를 검토하는 대법원의 역할이 민주국가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지만, 법원의 판결이 민주적 기본권의 문제영역을 넘어서게 되면 법원의 역할은 의심스러워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원이 선출되지 않은 입법부가 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달은 대법원이 헌법을 해석한다는, 혹은 심지어 헌법입안자들의 모호하고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입법의도를 파악한다는 명목 하에 선출된 관리들이 맡아야 할 중요한 법률과 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 로버트 달은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연방대법원으로 하여금 당파적인 공공정책의 입법 활동을 자제하도록 하면서 대신에 법률심사권을 엄격하게 기본권의 보호와 연방제와 관련된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는 최장집 교수의 한국어판 서문을 싣고 있는데, 그 분량이 전체의 4분의 1 정도에 이르는 독립된 글이다. 번역서는 한국에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탄핵사건과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결정을 한 2004년 11월에 출판되었다. 위 두 사건은 헌법재판소에 의한 정치적 결정의 대표적인 예로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법재판소가 정파 간 불일치의 성격을 갖는 갈등적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 계기가 되었다. 갈등사안을 다루고 조정해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현실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헌법으로 구체화된 제도적 형식성으로 나타나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와 인민의 지배라고 하는 민주적 규범을 의미하는 민주주의(democracy) 사이의 긴장과 괴리, 모순과 갈등을 포괄한다. 최장집 교수는 헌법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공격하려는 경향이 점차 노골화되는 오늘의 시점에서 헌법과 사법부의 역할 나아가 헌정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더 이상 회피될 수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최장집 교수는 민중적 동력을 중시하는 민중적 민주주의(populistic democracy)와 헌법으로 제도화된 민주주의를 가리키는 헌정적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 또는 메디슨적 민주주의(Madisonian democracy)를 대립시키고 플라톤적 의미의 엘리트주의, 후견주의, 전문가주의, 기술관료적 경영주의를 부정하는 로버트 달의 견해에 동의를 표한다.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가장 애매하고 민주적 통제와 거리가 먼 사법부에게 가장 강력한 권한, 즉 헌법해석권을 중심으로 한 헌법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야말로 메디슨적 민주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며 제도적 결함이라고 지적한다. 법원에 의한 정치적 결정은 사회의 핵심적 갈등이슈를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함으로써 정치를 내부로부터 약화시키는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주의 제도화 과정의 두 가지 접근법인 ‘정치를 바로세우는 것을 통한 민주화의 경로’와 ‘헌법을 바로세우는 것을 통한 헌법화의 길’ 중에서 엘리트의 역할보다 보통사람들의 역할이 커지는 민주화의 경로를 강조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든 대법원이든 사법기관이 위헌법률심사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입법례로 보더라도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프랑스는 헌법원이, 일본은 최고재판소가 각각 위헌법률심사권을 행사한다. 민주주의의 기본내용 중 하나인 3권분립 원칙에 의해 사법부가 법률심사권을 통해 입법부와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 공통된 것이다. 다수당에 의한 횡포로부터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서의 역할은 민주주의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하다.
또한 사법적 판단을 위해 법리를 개발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최장집 교수는 ‘법리’라는 말은 명시적으로는 정치를 비하하면서 암묵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범위를 축소시킴과 더불어 파당적 정치를 초월하여 공익에 충실하고 이성적인 법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인식을 사회에 부과하여 법관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는 후견주의적 논리라고 비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지만 사법적 판단을 위해서는 일관성 있는 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문제는 법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법률심사권을 갖는 헌법재판소의 구성과정에서 민주적 정당성과 다양한 가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절차 및 자격을 개선하고, 헌법재판소가 채택하는 법리에 대한 엄격한 감시를 통해 민주주의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대법원장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는 것은 민주적 구성원리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고,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법관 자격 있는 자로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항도 헌법에 규정된 것이라 이를 바꾸려면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공직선거법 제9조 – 대통령의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
대통령이 민간단체에서 한 강연, 명예박사 학위수여식에서 한 특강, 국가기념일행사에서 한 기념사, 일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 등이 공직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경고조치를 하였고, 이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청구를 하여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다. 최장집 교수가 서문에서 공직선거법 제9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서 위 헌법소원심판청구사건의 대리인으로서 정리해본다.
2004년에 있었던 대통령 탄핵은 공직선거법 제9조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해석으로부터 비롯되었고,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이 선거에서 중립의무를 부담하는 공직선거법 제9조의 공무원에 해당하고 그 위반행위는 탄핵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
최장집 교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헌법재판소의 위와 같은 판단은 대통령직을 좁은 의미에서의 공무원의 역할로 한정시키는 동시에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광범한 정치적 역할을 무시하고 부정한 것, 즉 정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며 민주주의 전 과정을 부정하는 것으로 본다. 헌법재판소의 논거는 정치와 행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치를 행정으로 환원시키는 것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라 하더라도 광범하게 부여되는 자율의 공간, 가능의 공간을 갖는 특별한 역할, 즉 정치적으로 국가/정부에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정책대안들을 결정하고, 민주적으로 제정된 법률과 행정의 수단을 통해 이를 집행하는 특별한 역할을 갖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공직자다. 따라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위와 같은 최장집 교수의 입장을 의견서에 반영하여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는데, 과연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단을 할 것인지?

사법개혁의 문제
최장집 교수의 서문에 사법개혁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어 사법개혁 작업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최장집 교수는 사법개혁 논의의 범위가 극히 협애하여 현행의 사법시험제도를 법학전문대학원제도로 바꾸는 것이 곧 사법개혁인 듯이 인식되고 있고,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역할이 급격히 커지는 것을 목도한 개혁파들은 전문적인 법관들만이 아닌 영미의 배심원제도를 모델로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의 효과를 과장하기도 한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의 사법개혁 논의가 보여주는 특징은 정치체제 전반,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 그러한 개혁이 초래할 효과를 고려함이 없이 분야별로, 고립적으로 개혁 대안을 추구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최장집 교수는 우리는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떤 내용과 목표, 어떤 실천적 모습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체적으로 성찰할 시점에 이르렀고, 특정의 개혁이 전체 민주사회의 모습과 어떻게 상보적이 될 수 있고, 또 어떻게 그 가치와 규범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는 사법개혁의 구체적인 방향이나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전체적인 성찰에 기초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연방대법원의 헌법해석 범위를 기본권과 관련된 영역에 한정하자고 한 로버트 달의 제안을 최장집 교수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받아 제안하는 것인지 문맥상 불분명하다.
위헌법률심사권을 헌법재판소에 부여하는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대법원에 부여할 것인지, 또 그 범위를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 하는 점은 이번 사법개혁에서 제외되었다. 아직까지 공론화가 충분히 되지 못했고 국민의 개혁요구가 강하게 제기된 것도 아니어서 무리하게 시도하더라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구체적 개혁방안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현실적으로는 이를 개혁과제에 포함할 경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첨예하게 대립하여 전체적인 개혁과정이 무산될 것을 우려하였다. 여건이 더 성숙되길 기다려야할 주제라고 본 것이다.
위헌법률심사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체적인 고려 없이 분야별로 고립적으로 대안을 추구했다고 단정해버릴 수 있는가? 1995년경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되어 오던 사법개혁과제가 있었다. 문민정부도 국민의 정부도 시도했으나 법조기득집단의 반발과 저항으로 인해 실패한 과제들이다. 그것은 특권화된 법조관료를 양성하는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 의한 법조인 선발 및 양성제도의 개선(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소위 조서재판으로 인권보장에 미흡했던 형사재판절차의 개선, 국민이 재판과정에 법관과 함께 판단자로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도입,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나타나는 법조비리 예방을 위한 법조윤리 확립 등이 그것이다. 참여정부는 과거 정부에서 시도하다가 실패한 개혁과제들을 거의 대부분 입법화했다.
배심원제도를 외부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방안으로 이해하는 것은 배심원제도를 오해한 것이다. 배심원제도는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로서 사법의 민주화를 상징한다. 배심원제도를 꼭 영미제도로 볼 것도 아니다. 배심제도가 처음 도입된 곳이 영국이기는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그 후 각국 사정에 따라 참심제로 변형된 국가도 많지만 배심제도를 채택한 국가도 있다. 특히 스페인과 러시아의 경우에는 1995년과 1993년에 배심제를 부활하였는바, 위 두 나라의 경험에 의하면 독재정권은 배심제를 폐지하고 민주정권은 배심제를 부활하였다.
이번 사법개혁이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측면이 있겠으나, 입법과 제도화는 출발에 불과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감시가 있어야만 개혁성과가 국민에게 돌아올 것이다.

민중적 동력의 투입과 정당의 활성화
최장집 교수는 이 서문에서도 다른 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중적 동력이 정치과정으로 투입되고, 정당으로 조직되고 대표되는 정치과정의 활성화를 결론적으로 강조한다.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민중적 동력을 정치과정에 투입하고 정당을 활성화할 것인가? 나는 현재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나는 무엇을? 이에 대한 대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