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세계의 배심제도 후기

2008-01-10 137

민주주의의 상징 배심원제도 – 김선수 변호사

우리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배심원제도
참여정부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제정된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08. 1. 1.부터 중한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원하면 배심원재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된다. 우리 역사에서 국민은 재판의 대상 내지 객체에 불과하였다. 국민이 판단자 내지 주체로서 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를 실시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비로소 배심원제도가 도입되어 국민이 판사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고 유무죄 및 양형에 관한 판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2006년 8월 사개추위에서 모의재판을 할 때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의원이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 국민이 법대 밑 피고인석 내지 방청석에서 법대 위 판사석 좌측에 마련된 배심원석까지 5미터도 안 되는 거리 앞으로 나아가는데 근대사법제도가 도입된 후 10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고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배심원제도 도입으로 달라질 법정 모습
배심원제도가 실시되면 형사법정의 모습이 달라진다.
우선 판사석 옆쪽으로 배심원석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인 5명 내지 9명의 배심원과 5명 이내의 예비배심원들이 배심원석에 앉아 재판진행에 참여하게 된다. 형사소송법의 개정으로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로 되겠지만 피고인이 변호사의 옆에 앉아 변호사와 상의하면서 재판을 받게 된다.
검사와 변호사가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동안 검사와 변호사는 판사만 설득하면 되었기 때문에 법정에서 작은 소리로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재판진행을 했다. 그래서 방청객은 물론이고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조차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심원제도에서는 배심원을 설득하지 못하면 재판에서 지게 되기 때문에 검사와 변호사는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배심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용어를 사용할 것이고, 목소리도 크게 할 것이다. 또한 법정에서 이루어진 것만으로 유무죄 결정을 내리게 되므로 소위 공판중심주의가 실질화될 것이다.
배심원들은 판사나 검사 및 변호사와 개인적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고 한 사건만 참여하면 되기 때문에 전관예우와 같은 법조비리가 발생할 여지가 없어진다. 배심원들이 매수될 것을 염려하는 견해도 있으나, 다수의 배심원 전체를 매수할 수도 없고, 그런 시도를 하는 자는 처벌받게 되므로 현실적으로 시도되기 어렵다.

세계의 배심제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 『세계의 배심제도』
2007. 8. 7. 민변 공부모임에서 미국 듀크대학 로스쿨의 닐 비드마르 교수가 엮은 『세계의 배심제도』(나남, 2007)를 텍스트로 해서 토론을 했다. 위 책의 번역자들인 김상준, 김형두, 이동근, 이효진은 현역판사들이다. 2004년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개혁과제의 하나인 국민의 사법참여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위 책을 초벌 번역해서 참고로 삼았고, 다시 대폭적인 번역과정을 거쳐 출판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공부모임에 번역자의 한 사람인 김형두 부장판사가 참석해서 위 책의 번역과정과 법원의 배심원재판 준비상황을 설명해주었고 또한 토론에도 같이 참여하였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배심원제도의 도입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한층 더 고양시키는 일로서 매우 중요한 발전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축하했다. 저자는 『세계의 배심제도』는 다른 나라가 그들의 특정 법률제도와 문화에 배심제도를 맞추기 위하여 배심제도를 어떻게 수정해왔는지 보여줄 것이며, 한국 배심원제도의 발전에 중요한 통찰력을 부여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새로운 한국 배심원제도는 진정 한국의 법제도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흥미진진한 실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신뢰를 보냈다.
위 책의 저자는 현재 형사배심제도는 전 세계 46개국에서 건재하고 대부분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는 배심제도 외에 참심제도도 있다. 배심제도와 참심제도는 배심원과 참심원의 선정방법(대개 배심원은 매 사건마다 무작위 추첨방식으로 선정하고 참심원은 자격을 요하고 일정한 기간을 정하여 위촉), 평의방법(배심제도는 판사 관여 없이 배심원만이 평의하고 참심제도는 판사와 참심원이 대등한 지위에서 함께 평의), 평의범위(배심제도는 보통 유무죄에 대해 결정하고 참심제도는 유무죄와 양형까지 결정) 등의 면에서 차이가 있다. 배심제도와 참심제도까지 포함하면 형사재판에서 국민의 참여제도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가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에 속하였는데, 우리나라도 이제야 비로소 예외적인 국가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국가가 된 것이다.
『세계의 배심제도』는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등 영미법계의 배심제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유럽에서 비교적 최근에 배심제도를 도입한 스페인과 러시아의 배심제도와 일본의 배심제도 부활 움직임을 소개한 후, 그리고 기타 지역(아프리카, 남미, 유럽, 아시아, 남태평양과 카리브해 제국 등)의 배심제도를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 위 책에서는 법률을 제정하지 전의 상황을 설명하였는데, 일본은 2004. 5. 참심제 형태의 법률(「재판원이 참가하는 형사재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09년에 실시할 예정으로 있다.

민주주의의 상징으로서의 배심제도
배심제도는 재판절차에 민주주의적 가치를 투영하는 수단이고, 사회통념의 결정체이자, 사법권력에 대한 보호자이며, 국민에게 법률교육을 시키고, 법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배심제도는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민형사사건에서도 국가권력이나 사회지배세력, 국가에 의해 임명된 판사나 부패한 공무원의 편견에 대항하는 유일한 보호막 역할을 하였다.
미국연방대법원은 배심제도에 대해 “피고인에게 자신의 동료인 배심원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부패하거나 공명심이 지나친 검사, 그리고 권력에 순응하거나 편견이나 괴벽에 빠진 법관에 대항하는 더 없이 소중한 안전장치다”라고 설명했다(Duncan v. Louisiana 사건).
배심제도는 노르만족에 의한 영국 정복 이후 영국에서 도입되었고, 나폴레옹 전쟁에 의해 프랑스혁명이 유럽에 전파되면서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유럽의 배심제도는 권력을 장악한 정권의 성격에 따라 요동쳤고, 관료주의적 성향이 강한 전통에 힘입어 참심제로 변모한 국가들도 많다.
유럽에서 가장 최근에 배심제도를 부활한 나라는 러시아(1993년)와 스페인(1995년)이다. 위 두 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민권의식 내지 민주주의가 발전한 시기에는 배심제도를 실시하였고, 독재자가 정권을 장악하고 먼저 취한 조치 중의 하나가 배심제도의 폐지였다. 배심제도가 독재정권에게 매우 위험한 제도라는 점은 러시아와 스페인의 역사에 의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의 경우 18-19세기의 혼란기 속에서 형사사법제도가 부당한 권력에 의하여 손상되는 것을 목도한 많은 사람들이 1937년에 배심재판제도를 헌법상의 제도로 만들어 또 나타날지도 모르는 폭압적 권력의 전횡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삼고자 하였다고 한다. 바로 이것은 세계 공통적으로 주장되어온 배심제도의 존재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배심원제도는 우리나라에서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인가
『세계의 배심제도』는 일본이 배심제도 도입에 적합한 국가인지 여부를 검토하면서 미국의 지어리(J. H. Jearey) 교수가 주장한 ‘배심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한 세 조건’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그 조건이란 “①배심제도를 운영하는 사회는 인종적, 문화적, 언어적, 종교적으로 대부분 동질적이어야 한다. ②사회구성원의 교육수준이 배심원 의무와 의무이행 시 개인적 편견을 버려야 함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한다. ③배심원이 될 경우 적용하여야 하는 법률내용에 대하여 전반적으로 동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 세 조건의 의미는 “①사회가 동질적일수록 그 사회의 배심원이 결정을 내릴 때 인종적, 종교적 또는 민족적 편견에 기초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②한 사회의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배심원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사실과 법률에 기초하지 않은 개인적 편견을 배제할 수 있게 된다. ③적용해야 할 법률에 대한 배심원의 기본적 동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배심원의 평결은 법 이외의 요소에 기초하게 되어 법의 지배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검토해보면 우리나라는 배심제도 도입에 적합한 국가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우리 사회는 지나칠 정도로 동질적인 사회이다. 단일인종이고 단일민족이다. 다양한 종교가 병립하고 있으나 대립적일 정도는 아니다. 둘째, 우리 국민의 교육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문맹이 거의 없고 교육열이 높아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의 비중이 높다. 셋째, 독재시대에 만들어진 법률 중에 국민으로부터의 지지가 미약한 법률이 일부 있지만 민주화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성숙함에 따라 법률에 대한 국민의 동의는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배심제도의 긍정적 측면
캐나다 온타리오 주는 민사배심제도의 문제점을 연구해서 궁극적으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 온타리오 사법개혁위원회(Ontario Law Reform Commission, OLRC)를 구성하였다. 위 위원회는 1994년과 1996년에 연구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거기에서 배심제도 찬성론과 반대론의 논거를 매우 잘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찬성론의 논거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배심제는 권한남용에 대한 보호책이 된다. 사법부의 편견으로부터 피고인 또는 원고를 보호함으로써 사법부의 권한남용에 대한 보호수단이 된다.
둘째, 배심제는 적법절차를 보장하고 공동체의 기준을 재판에 반영하는 기능한다. 배심제는 법이 공동체의 현재 가치기준을 반영하여 각 사안을 특별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여 정의를 실현한다. 민간인의 참여는 판사의 획일적 판단에 대한 보호수단이 된다.
셋째, 배심제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분쟁해결을 촉진시키고 그로 인해 사법제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한다. 배심원의 평결로 종결된 사건에 소요된 시간의 중앙값은 판사에 의한 재판의 경우보다 18시간이 더 많았으나, 배심재판이 시작되었다가 최종 판결 이전에 화해 등으로 종결된 사건까지 포함하여 계산한다면 배심재판에 소요된 평균시간은 판사에 의한 재판의 경우보다 짧았다.
넷째, 배심원의 판단능력은 믿을 만하다. 배심원에 의한 집단적 의사결정이 판사에 의한 의사결정만큼 훌륭하거나 오히려 더 낫다. 실제로 동일한 사안에서 배심원이 내린 결론과 판사가 내렸을 결론을 비교하였을 때 80% 정도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다섯째, 배심제는 공정한 사건처리에 대한 확신을 준다. 일반인들이 판사가 단독으로 내린 결정보다 공동체의 대표가 내린 결정을 더 수긍할 것이다.
여섯째, 배심제는 참여의 기회를 제공한다. 배심제도를 통하여 시민들이 사법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참여는 사회의 기초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
민사배심제도의 폐지를 위하여 오랜 기간 동안 운영되어 온 OLRC는 정부의 긴축재정정책으로 1996년 그 활동이 중단되었으나, 캐나다의 민사배심제도는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배심제의 성패는 국민의 참여에 달려 있다
배심제도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에 친한 제도이고 독재자에게는 위험한 제도이다. 사법관료들은 배심제도를 불편하게 여긴다. 자신들의 권한에 대한 침해와 간섭으로 여긴다. 시민에 의해 감시받고 사법절차가 투명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배심원제도의 도입에 대해 법관이나 검사, 심지어는 변호사들조차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 법조전문가들끼리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재판업무를 독점하는 것의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 국민의 국민성이나 정의감에 대해 자학적 인식을 가지고 배심원제도에 회의적인 견해를 유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배심원제도는 국민의 사법불신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 결과 도입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은 전문가라 자칭하는 검사와 판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실망을 했던가? 인류가 직업법관과 검사의 권한남용에 대한 보호장치로 개발한 것이 바로 배심제도인 것이다. 법률이 제정되고 제도가 시행되기에 이른 것은 출발에 불과하다. 제도가 뿌리내리고 보다 완성된 형태로 발전되어가야 한다.
현재 법원과 검찰에서 내년부터 배심원제도를 차질없이 시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법원과 검찰을 포함한 전체 법조의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배심원제도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켜야만 한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법관이나 검사 또는 변호사 등 법조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어서는 배심원제도가 성공할 수 없다.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배심원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법조전문가들이 직역이기주의적 관점에서 배심원제도를 왜곡하고자 시도할 경우에 강력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그러한 시도가 없을 것이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김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