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월례회 후기

2008-07-31 192

 

지난 7월 24일 개최된 민변 월례회에서는 한국싸이버대학교 컴퓨터정보통신학부 곽동수 교수를 초청하여 “네티즌의 진화과정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곽교수는 1964년 일본에서 태어나 6∼7년 살았고, 홍콩에서도 살았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1992년에는 한글과 컴퓨터 창립 멤버로 참여한 바 있다. 2004년부터는 CBS라디오 ‘싱싱경제’(새벽 6시 5분부터 7시까지)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글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방송국, 법원 등에 컴퓨터 교육을 다니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교육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컴퓨터와 정보기술의 발달 덕분에 가능해진 개인 사업을 뜻하는 소호(SOHO; Small Office Home Office; 소규모 사무실 가정 사무실)라는 용어를 국내에 보급시켰다고 한다.




곽교수는 컴퓨터로 사진을 보여주면서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의 속도가 워낙 스피디해서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강연 내용이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않지만, 그 대강을 쫓아가 본다.


1994년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도입된 지 14년이 지났다. 곽교수는 클레이 서키의 저서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There Comes Everybody)』를 인용해서 네티즌의 특성을 설명했다. “조직 없이 조직된 상태를 유지하며 놀라운 조직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대중”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곽교수는 1955년생의 동갑인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를 비교했다. 빌 게이츠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하버드를 중퇴하였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으로 있다가 은퇴하여 사회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히피 과정을 거쳤으며 현재 애플사 CEO로서 영향력 1위의 인물로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을 소개하는 강연에서 직접 본인이 제품 가격까지 알려주고 오늘부터 판매한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을 직접 사용하는 점이 우리나라 회사 CEO와 다를 것이라고 한다.




곽교수는 한국의 디지털문화의 발전단계를 연도별로 개략적으로 정리했다. 1985년에 조립형 삼보컴퓨터가 출시되고 용산전자상가가 개장했다. 미국에서 컴퓨터는 숫자를 계산하는 계산기 기능으로부터 시작했고 시간단축과 효율을 추구하였으며 누구나 이용하는 형태로 발전한 반면, 우리나라는 컴퓨터가 워드프로세서 및 타자기 기능으로부터 시작했고 다양한 언어 사용을 추구하였으며, 특정 기능인들이 이용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하이텔 등에 의한 IP사업, 정보사업이 발전했고, 사무실이 없는 디지털 작업 방식의 SOHO가 유행했다. 컴퓨터 1대로 1억 번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1994년에 인터넷이 도입되었고, 1996년에 활성화되었으며 홈페이지가 등장했다. 1997년에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의 이메일이 등장하여 실시간 정보교환이 가능하게 되었다. 1998년에는 스타크래프트 열풍으로 인터넷붐을 일으켰다. 1999년에는 다음에 동호회(커뮤니티) 중심의 카페가 등장하여 10대부터 70대까지 ID만 가지고 가상공간에서 대화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2000년에 등장한 ‘아이 러브 스쿨’은 추억의 부활을 통해 인터넷을 대중화시켰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였다. 2001년에는 IT벤처기업의 버블이 꺼졌다. 2002년에는 붉은 악마가 탄생하고 디시인사이드가 등장하여 처음에는 디카 관련 갤러리로 출발하여 패러디, 해외축구방 등 다양하게 발전했다. 2003년에는 사용자가 만든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와 동영상 및 지식iN 등이 등장했다. 2004년에는 싸이월드가 등장했는데 여성들의 소외감을 해소하기 위한 미니룸을 제공했다. 사이버모니(도토리)가 등장하여 인터넷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2005년에 블로그가 활성화되었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도움으로 소통의 장으로 기능했다. 2006년에는 UCC가 발전하여 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하여 표지 모델로 사용했다. 1982년에 올해의 인물로 컴퓨터를 선정한 이후 24년 만에 UCC가 선정된 것이다. UCC는 무소불위의 정보축이던 신문과 TV의 지위를 위협했다. 2007년에는 디시가 일탈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인터넷이 생활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아고라에서 집단토론을 전개하고 촛불시위의 원동력이 되었다. 인터넷은 사회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학교생활에서 치이고 좌절한 이들의 해방구이자 사랑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네티즌을 국민의 이름으로 모으고 광장으로 불러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사법연수원 2년차인 1987년에 시보로 근무하면서 2벌식 타자기를 구입하여 조서 작성하는데 사용했다. 시대변화와 새로운 기계에 둔감하여 변호사생활 초기에는 서면을 직접 써서 여직원으로 하여금 타자하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엔가 컴퓨터를 워드프로세서로 사용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이메일을 본격적으로 이용했다. 인터넷바둑도 많이 두었다.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의무적으로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라고 해서 처음으로 블로그에 접했다. 그리고 2007년 4월 변호사생활로 다시 복귀한 이후 블로그를 관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생활을 정리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으니까 쉽게 잊어버린다. 정리하면서 반성하는 계기도 된다. 둘째 대중적인 글쓰기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빠르고 쉽게 글을 쓰는 연습을 한다. 리포터로서의 역할을 시험하고 있다고나 할까.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으므로 편집 등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 네티즌의 발전단계에 비추어 볼 때 나는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가?




인터넷을 통해 사회와 대중이 달라졌다. 인터넷은 역사에 길이 남을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네티즌은 인터넷을 통해 시각이 넓어졌고, 한 번 새로움을 맛보고 나면 이를 되돌릴 수 없다. 디지털 도구에 대한 통제는 카약을 조종하는 것과 비슷해서 매우 제한적인 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무책임한 일부 네티즌이 좌파선동을 벌인다’는 괴담(ghost story) 수준의 인식은 네티즌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다.


아나로그 사회에서는 지식이나 기술이 성공을 가져왔으나,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는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으므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만 남았고 결국 지혜가 성공의 조건이 된다. 네티즌은 집단지성을 훈련하게 되고, ‘적당히’가 아니라 ‘끝까지’ 제대로 분석해서 실행으로 옮긴다. 인터넷에서는 획일적으로 구속할 수 없고 다양한 입장이 개진되며,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적 디지털 문화는 처음부터 참여형이었다. 상위 5%에 들어가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이 사랑받고 애정을 확인하는 공간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에 접속하여 소통(커뮤니케이션)하고 집단지식을 통해 지혜를 형성한다. 네티즌은 행동하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 네티즌의 힘은 거대한 흐름이다.


정신적 미숙아는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틀린 사람’으로 이해하며,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으로 인식한다. 네티즌을 불온시하고 사이버모욕죄를 만들어 인터넷을 통제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위와 같은 정신적 미숙아의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식민지의 백성으로 산 할아버지 세대, 개발지상주의에 동원된 아버지 세대, IT전문가인 아들 세대라 공존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혼란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인터넷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을 처벌법규가 없어서 단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형법상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조항으로 얼마든지 단속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이버모욕죄 신설 운운하는 것은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말할 자유를 위축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현재의 정부나 집권세력은 시위라고 하면 체제전복시위밖에 모르기 때문에 변화된 네티즌들의 촛불시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은 갈림길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의 신에 맡겨서는 안 되고, 대화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곽교수는 한편으로 인터넷에 의한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단속보다 피해자 구조와 지원이 우선되어야 한다. 외상성 스트레스를 치유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 등도 필요하다. 조만간 인터넷에 의해 심각한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곽교수는 개인적으로 이에 대비하여야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는 네티즌이 조직 없는 새로운 대중이라는 특징을 갖는다고 한다면 그것만으로는 사회발전과 변혁을 위해서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 궁금하다. 촛불시위로까지 이어진 열기를 모아서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결실을 이끌어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이에 이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네티즌은 모두 진보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우리 모두가 방안을 찾아야 할 문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