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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진단 및 전망찾기
한홍구 (성공회대ㆍ평화박물관)
최근의 어려운 상황 속에 진보개혁진영의 진로 모색 활발
– 특히 대선과 맞물려 논의
I. 현재의 어려움: 그 원인에 대한 진단
1. 가까운 원인
1) 노무현 정권의 실정
– 큰 기대 속에 출발:
대미예속의 탈피: 여중생 사건의 분노: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
사회경제적 개혁 기대: “한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
– DJP연합 같이 보수층에 기대지 않고 집권
– 절충적 정책: 고건의 총리 기용 /
대북송금 특검 (통일과 김대중 지지: 호남)
– 한나라당 식 사회경제 정책 채택
– 양쪽 모두 지지 받으리라 기대: 그러나 결과는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함: 지지층 떠나고 반대파는 만족하지 못함
– “친미 자주” “좌파 신자유주의”
– 어정쩡한 부동산정책
분양원가 공개 거부 직후 지지율 폭락:
6월9일 조사에서 41.5% /
6월25일 조사에서는 28.2%로 무려 13.3%나 폭락
– 잘못된 과제 설정과 그에 따른 자기 역할 규정
– 지역주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
* 2005년 여름의 대연정 파동: 우리당 지지자들 결정적으로 지지를 철회:
한나라당과 다른 개혁을 하라고 찍었는데 아무런 정책적 차이
없으니 연정을 하겠다고:
– 열린우리당 대선후보급들의 추인: 그들의 지지율 뜨지 않는 이유
2) 제 역할 못한 열린 우리당:
3) 수구보수층의 결집과 능동화
2. 보다 깊은 원인
1) 우리가 잃어 버린 두 번의 기회
– 1997년 외환위기: 위기를 초래한 재벌과 관료들을 개혁했어야
– 국제금융자본의 대표인 IMF도 재벌개혁을 강력히 권유
– 그러나 위기탈출 강박감 속에서 개혁 미룸
– 재벌과 관료가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전도사로 변신
– 2004년 탄핵
2) 세상의 변화에 대한 대응 또는 감지 실패
– 1989년 현실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미국 패권주의 확산
– 신자유주의
– 세계화
– 민주화 이후 세대에 대한 진보측의 호소력
– 민족주의 / 국익이데올로기
– 이북의 비틀거림: 핵문제 / 체제위기 / 인권문제 등등
II. 1987년 체제 이후의 전개: 민주화되서 행복하십니까?
– 6월항쟁의 성과, 그리고 한계
– 1987년 체제: 타협의 산물: 군사독재의 연명 가능: 보수대연합
– 물타기 형 민주화: 썩은 물 있는 통을 비우고 통을 씻은 후 새 물을 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새 물 부어 넣기 // 그러나 지금의 한나라당을 민정당과 동일시해서는 안됨: 많은 변화
– 3당합당 / 지역주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희석: 그러나 아직 유효
– 김영삼 시기: 과도기 거쳐 민주세력 집권 10년: 1998년부터
– 김대중 당선과 노무현 당선을 바라보는 수구세력의 시각
– 1997년 김대중 당선: 선거결과 나름대로 납득
– 외환위기
– DJP 연합: 보수층 안심 / 지역구도 역이용 (극복이 아님)
– 이인제 효과: 500만표
– 소통령 김현철의 전횡에 대한 분노
– 30년 군사독재에 대한 염증: 바꿔야 한다
–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논란:
– 후보 자질: 누구도 김대중이 대통령 자질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음
* 한 가지 만으로도 선거의 승패 가를 요인이 너 댓 가지 겹침
– 그래서 겨우 40여만표 승리
– 2002년 노무현 당선
– 경제적 어려움: 오히려 노무현에 불리
– DJP 연합이나 이인제 효과 대신 정몽준과의 단일화가 막판 깨짐
– 후보자질 둘러싼 논란: 대통령감 아니다.
– 김대중 아들들 감옥행: 노무현에 불리
–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논란만 1997년에 이어 계속되었을 뿐
1997년 수구층에 패배를 가져다 준 요인들 작동안함
—> 그런데 50여만 표 차이로 패배!:
—> 인터넷 확산과 민주세력 확대에 대한 우려: 장기화되면 수구진영이 다시 정권을 찾을 수 없다
—> 탄핵
* 탄핵의 의미
– 수구세력이 진보개혁세력의 주류화와 계속된 집권을 막으려 행동에 나섰다가 역풍 맞음:
– 과거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
– 의회권력을 통한 쿠데타: 의회권력의 교체: 1997 대선, 2002대선, 2004 총선 세 번의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연승: 3권 중 선출되는 권력이 민주개혁진영 쪽으로 넘어 옴
* 선거 결과 거꾸로 민주개혁 진영이 의회 장악
– 탄핵 이전 47석에서 탄핵 결과 152석: 과반수 넘김
여기에 민주노동당 10석
– 개혁을 위한 좋은 기회: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어줍지 않게 실용주의를 표방하면서 화해와 상생을 찾다가 그 기회를 놓침
– 민변 출신 대통령에 민변 출신 국정원장에 민변 출신 법무부장관에 운동 경력을 가진 수십 명이 과반수 여당의 국회의원인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나?: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개혁 의지 결여
– 선출되는 권력 대 선출되지 않는 권력의 힘겨루기 시작: 나쁜 균형
선출되지 않는 권력: 사법부, 재벌, 언론, 관료, 종교, 사립학교 등등
– 기득권 세력이 국가권력에서 마지막 장악하고 있는 사법권력(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적극적으로 수구 이익을 대변 // 여기에 헌재와 대법원의 경쟁 + 김영란 대법원 판사 선임과정에서 서열파괴에 의한 자기 밥그릇에 미치는 충격: 2004년 여름 이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대법원, 헌재)
국가보안법 (대법원, 헌재)
행정수도 이전 (헌재)
선거법 판결 (대법원)
– 2004.12 국가보안법 폐지에 실패한 뒤에 2005년부터 정국주도권 완전상실
– 대연정
– 2006년 지방선거 패배 이후 급격한 열린우리당의 몰락과 해체 진행 중
* 민주세력 집권 10년: 민주-반민주 구도 호소력 다함
– 잘못하면 책임져야
– 정권 내줄 수 있다: 다시 찾을 수 있다
– 민주주의의 불가역성: 어느 정도 공고히 해 놓았나?
– 과거로의 회귀???
– 정치공학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 아님
III. 민주진보진영의 새로운 과제
* 새로운 인간형의 출현 / 이들에 대한 설득력 확보해야
– 민주-반민주 같은 것에 관심없는 젊은 세대의 등장
– 독수리 오형제의 시대는 끝났다: 당위보다는 이익 추구하는 것이 당연
* 정치적 자유에서 소수자의 인권으로: 과거의 거대담론으로 풀 수 없다
– 불이익과 인권
*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 일반화
– 민주화운동이 꾸준히 제기해 온 사회복지나 재벌 개혁 문제제기 어려워진 상황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의 역량을 벗어난, (이를테면 동구가 무너진다든지,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로 재편된다든지 하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의 역량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외적인 거대 변수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세계사적인 변화 같은 것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이라크 파병을 거치면서 표면화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진보세력이 무엇을 반성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이런 부분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사실 우리가 70년대, 80년대에 민중 생존권 얘기하고, 여공들의 저임금이라든가 사회 맨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하면서 ‘이게 정말 말이 되느냐?’, ‘정말 이건 말이 안된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까’하고 같이 고민을 했단 말이죠. 가령 제가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면 1주일에 세 번 가면 한 달에 7만원 내지 8만원을 받았는데, 우리 또래의 여공들이 60시간을 일하고서 8~9만원을 받았단 말입니다. 스스로 ‘이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고 했을 때, 부잣집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우리와 함께 행동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건 좀 문제가 있다, 어떻게든 해결이 되야지’하는 사회 전체의 그런 공감대는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사회 맨 밑바닥 층의 기초 생활비를 주장하면 ‘빨갱이냐, 사회주의냐’고 대뜸 그러고, 저 사람들이 게으르고 능력 없어서 그렇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사회복지 확대를 주장하면 ‘일 안하고 그런데 들어가서 빼먹는 놈들이 있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사회 복지라는 것이 일부 빼먹는 놈들이 있다고 해도 나가야 하는 거거든요. 그것을 어떻게 잘 막을 것인가, 걸러낼 것인가 그 차원에서 논의를 해야 하고, 대의를 막아서는 안되는데,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민중 생존권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이 훨씬 더 강퍅해진 그런 분위기이구요.
70년대, 80년대에 “재벌이 문제가 많다, 재벌 규제, 재벌 개혁 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했을때, 그게 사회적 공감대를 얻었던 것에 비해서 지금 재벌은 어마어마하게 비대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삼성이 먹여살린다고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리고 재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고쳐나가거나 할 수 있는 그런 우리의 목소리 자체가 힘이 떨어진 거죠. 민주화 부분에서는 민주주의가 됐으니까 민주대 반민주 그런 구도는 낡은 구도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70~80년대 민중운동이 제기했던 여러 가지 의제들과 과제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상대적인 역량, 영향력 이런 부분이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닌가, 문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다른 방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역사의 진보가 주는 긴장감이겠죠. 물론 지금이 80년대에 비해서 제도화라든가 그런 걸 보면 좋아졌죠. 재벌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도 도입이 되고, 사회 복지 분야도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이 되었고요.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역량이랄까, 분위기라고 할까, 그런 것은 오히려 옛날보다 나빠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잘 모르겠지만, 그런 문제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싶어요. 진보, 개혁 세력의 위기라는 부분에서 보면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랄까 그 문제도 심각하지만, 거기에서 초래된 것하고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더 근원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국익이데올로기
– 황우석 사태의 광기
– 국가보안법이 아직 잔명을 유지하는 가운데 국가보안법을 대체해가는 아닌 국익보안법 체제의 등장
* 파병 / 한미동맹
촛불시위의 열기 속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라 말하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은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 자체는 놀라운 것은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한국에 관철되는 미국의 힘이었다. 꼭 20년 전 김세진, 이재호 두 젊은이가 자기 몸을 불살라가며 반미를 외치던 그 시절과 비교한다면 반미의 대중화는 엄청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주류의 미국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이루어진 것 같다. 냉전의 종식 이후 세계를 단일제국으로 재편한 미국의 질서에 동참하지 않으면 죽는다라고 협박하는 자들은 이미 국제인이 아니라 제국인(帝國人)이 되어 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나 한미FTA문제를 보면 한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히 이들 제국인이다.
한국 이름을 갖고, 한국대학 나오고, 한국에서 한국인 부인과 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은 이미 한국의 국익이 아니라 제국의 이익이다. 내선일체를 꿈꾸었던 옛날 일본제국주의자들이나 친일파들이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체감을 제국은 이미 이루고 있다. 80년대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그 때는 ‘숭미(崇美) 사대주의자’라는 말도 쓰고, 친미파라고도 부르고 그냥 친미파라 하면 재미없으니까 ‘미친파’라고도 하고 그랬지만, 친일파나 친미파는 그래도 한국사람에게나 부칠 수 있는 말이다. 한국말에 능통한 머리 까만 미국사람들, 청와대에, 국회에, 정부 각 부처에, 언론사에, 대학에 득시글하면서 한미동맹만이 살 길이라 외치는 사람들, 그들의 머리 속에 한국은 없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리고 반미운동이 당면한 중요한 문제이다. (대한민국사)
한국 사회가 자주의 요구를 했고, 그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성과를 거뒀죠. 소파(SOFA) 문제도 제기가 됐고, 작전 지휘권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 분야에서 문제 제기가 됐다는 말입니다. 미국도 옛날처럼 함부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그런 부분에서 성과가 있었는데, 그 밑에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변화가 있었던 거죠. 주류라고 해야 할까요,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집단이 문제 제기 집단에 비해서 훨씬 더 빨리 변할 수 있다는 거죠. 정말 한국 사회는 말도 안되는 수구 꼴통이 있고, 실제 부딪히는 것은 그 사람들과 부딪히는데, 사회 변화 자체를 끌고 나가는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겁니다. 가령 신자유주의 같은 것은 순식간에 퍼져버린 것 아닙니까? 한미 관계에서도 전에는 한국과 미국이 별개로서, 한국은 미국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비판하고,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예속의 굴레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하는 걸 가지고 싸워왔고, 그 부분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잖아요. 하지만, 또 어느새 보면 한국이 예속된 것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었다는 거죠. 평화운동 내에도 ‘경계를 넘어’라는 단체가 있긴 하지만, 정말로 진보, 개혁, 평화 세력이 경계를 넘기 위해서 하는 노력과, 수단과 역량에 비해서 이 세력들이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더 본질적인 부분이라는 겁니다. 정말로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닌가 하는 거예요. 우리는 물리적인 예속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싸웠고, 굉장히 중요한 성과를 거둬가고 있고, 여기서 우리 힘을 확인하는 이런 분위기였는데, 우리 발바닥 밑에서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었던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죠. (인물과 사상)
* 파병
베트남에 파병을 할 때도 국익을 위해서 파병을 하는 그런 부분,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서 파병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 정부 관료들도 민망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1964년~65년 아닙니까? 우리가 얼마나 못 살 때입니까? 정말 세계에서 최빈국 대열에 들어있었던 때인데요. 저도 깜짝 놀라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는데, 누가 그 얘기를 했느냐 하면 유창순이라고 나중에 롯데 회장을 하면서 전경련 회장에 국무총리까지 지낸 분이예요. 당시 사상계 좌담에서 국익 얘기가 나왔는데, ‘6.25때 도움을 많이 받았고, 한미동맹도 강화해야 되고,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참전을 해야 되고’하는 얘기가 나오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 갔다가 다시 국익 얘기가 나오니까 그 분이 무슨 얘기를 했냐 하면 ‘아까는 제가 말씀을 안드렸지만, 여기 군대에 보내면 항만 공사도 따고, 도로공사도 따고 해서 생기는 게 좀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는 민망해서 얘기를 못했습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때 유창순씨가 경제기획원 장관 그만둔지 얼마 안되었을 땐데, 관료 출신의 경제인조차도 남의 전쟁에 가서 돈 벌어오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습니다. 이 근원이 일본식 교육 때문인지, 유교적인 것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인간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유창순 씨는 전혀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민망한 걸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40년이 흘러서 지금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 아닙니까? 교육 수준은 그때하고 비교해서 어마어마하게 높아졌습니다. 그때는 국민들의 평균 학력이 국졸이 안됐습니다. 평균 학력이 국졸이 된 것이 75년입니다. 훨씬 못배우고 훨씬 가난했던 시절에 남의 전쟁에 군대를 보내서 돈을 버는 것이 창피한 것이라고 하는 얘기를 (심지어는) 관료조차도 했다는 겁니다. 그때는 적극적 파병론자도 그렇게 민망하게 여겼는데, 지금은 파병 반대론자도 국익 얘기만 나오면 꼬리를 내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 평화운동
* 민주화운동 이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괴리 // ‘민주권력’의 민중생활 등한시
* 시민운동의 도덕성
* 과거청산
5월 달에 강풀의 26년이라는 만화가 있었죠. 저는 그 만화를 다 못봤는데요. 처음에 시놉시스 들었을 때는 좀 황당하더라고요. 시민들이 전두환을 테러한다는 게 만화가 될까 싶었는데, 이야기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하더라구요. 솜씨만이 아니라 진짜 과거 청산의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린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충격을 받아서 5-6회 정도 보고 더 못봤어요. 덜덜 떨려서. 앞으로 언젠가는 봐야겠지만, 아직까지 못보고 있는 숙제인데요. 6회까지인가 밖에 못봤는데, 굉장히 많은 걸 생각하고, 많은 걸 반성하게 됐어요. 강풀의 그 만화가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라고요. 부끄러움과 반가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우리가 과거청산을 가지고 위원회를 숱하게 만들었잖아요. 과거청산 관련해서 정부가 만든 위원회가 스무 개에 가깝습니다. 동학위원회에서부터, 일제 강제동원, 친일파, 친일파 재산환수해서 스무 개 가까이 될 겁니다. 거기서 월급 받는 사람도 700~800명은 될 겁니다. 강풀 만화를 보면서 참 부끄러웠던 것이 뭐냐 하면 그렇게 많은 인원이 달려들었고, 저는 안식년까지 포기하면서 상근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는데, 지나 놓고 보니까 우리가 과거 청산과 관련해서 진실된 고백을 한 건이라도 끌어냈냐는 겁니다. 없거든요. 위원회를 스무 개 가까이 만들어 놨는데, 과거에 대해서 참회한 사람이 있느냐 하면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고백안한 놈을 객관적인 증거를 가지고, 감옥에라도 한 놈을 보냈느냐, 하면 그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전두환이 아직도 떵떵거리면서 ‘나 29만원밖에 없어’하고 다니는 거거든요. 국
정원 과거사위가 과거사 위원회 중에서 수색대랄까 척후병 역할을 하면서 진로를 개척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고요. 제 나름대로는 지금 평화박물관 사업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못하고 거기 나가 있으니까 갑갑한 게 많은데요. 저는 나름대로 죽어라고 하고 있는데 결과를 보면 그렇단 말이죠.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강풀 같은 작가가 만화를 그려서 사람들한테 다시 한번 묻는 거잖아요. 과거 청산을 하려고 하면 전두환 같은 사람이 떵떵거리고 살면 안된다는 문제를 그 만화는 제기하는 거잖아요. 광주에서 적어도 수백 명이 죽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데 여태까지 아무한테도 책임을 못 묻는다는 거, 발포 명령이 어떻게 떨어졌는지 지금도 아무도 모른다는 거, 이게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강풀이 우리한테 중요한 문제를 던진 겁니다. 공적인 처벌이 좌절된 지점에서 보복의 문제를 던진 거예요. 과거 청산 문제가 시작될 때 우리가 힘이 없기도 했지만, 처벌 문제를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거예요. 꼭 누굴 감옥 보내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게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처벌하려는 거 아니거든. 우리는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거야’라는 얘기를 너무 쉽게 했단 말이죠. 이거는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느냐 하면, 남아공은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사면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떤 놈이 자신의 악행을 그냥 고백을 하겠습니까? 처벌이 있기 때문에 고백을 하는 거죠. 진실규명과 처벌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 처벌하려는 게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거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작업을 해보니까 처벌 없이 무슨 진실을 밝히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 이 사람 고문 했지’, ‘나, 안했는데요’, ‘그런데 저 사람은 왜 이렇게 아프냐? 니가 했잖아’, ‘내가 아니라 저 놈이 했는데요’, 그러면 저 놈을 붙잡아서 ‘니가 했지?’, 그러면 ‘사실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위에서 시킨 건데요’하면서 진실이 밝혀지는 건데, 어떤 미친놈이 그런 상황도 아닌데서 그걸 인정하겠습니까?
물론 저는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한 것이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개인으로서는 아니지만, 기관으로서의 국정원이 ‘맞다. 고문했다. 불법 감금했다’는 것을 인정하게 했다는 것만 해도 중요한 성과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도 중요한 성과이긴 하지만, 처벌이란 부분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부분이 가슴이 아픈데요. 처벌이 안되니까 보복이 생기는 거예요. 처벌과 화해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봅니다. 보복과 처벌이 대립되는 개념이지, 사회가 책임져야 될 사람을 책임지게 하지 못했을때 그 가족들은, 남는 당사자들은 그 한을 어떻게 풉니까? 우리가 살인자의 유가족들이 보복하는 것을 막는 이유가 뭡니까? ‘보복하지 마라. 대신 사회가 처벌 해준다’고 하니까 비로소 막을 명분이 생기는 거죠. 이걸 포기해놓고 뭘 한다는 게 말이 안되죠. 전에는 ‘보복, 말이 되나’하고 과거 청산 일선에 있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왔는데요. 강풀의 26년을 보니까 너무나 말이 되는 얘기였다는 거죠. 이것은 그대로 두면 안되는 거고, 이게 정의라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전두환에게 묻는 게 아니라 ‘나는 이런 문제 때문에 아픈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해?’라고 일반 시민들에게 물을 때 뭐라고 대답하겠어요.
조작의혹을 갖는 간첩 사건을 조사하면서 (내가 간첩 문제를 많이 다뤘다고 생각했고, 피해자들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깊이 들어가면서 거의 종교 체험에 가까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있어요. 화해라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쉽게 얘기하고, 진실과 화해 위원회라는 것도 화해 문제를 그렇게 쉽게 얘기할 것이 아니란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사실은 처벌 문제가 빠지고서 어떻게 화해가 됩니까? 가해자들이 용서를 구하지 않고,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데, 무슨 화해가 됩니까? 그리고 ‘피해자와 방관자들의 화해를 어떻게 해낼 것인가, 피해자와 일반 시민의 화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죠. 우리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당하고 있는 것을 몰랐던 사람들이에요. ‘설마 국가가 그랬겠어, 죄가 있으니까 그랬겠지’하고 그렇게 무심히 넘어간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죠. 그러나 피해자들이 간절히 호소하는 상황에서 그 걸 외면하면 안되잖아요. 하지만 실제 그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가 있고, 더 깊이 들어가 보니까 생기는 문제가 뭐가 있느냐 하면 피해자들끼리의 화해도 못하고 있더란 말이에요. 안기부에 가서 보안사에 가서 치안 본부에 가서 두들겨 맞으면서 없는 얘기를 불어야 했고, 그러면 또 누가 잡혀가야했고, 우리가 볼 때는 피해자이지만, 그 안에서는 누구 때문에 잡혀갔다, 누가 말 잘못해서 내가 고문당했다 그런 관계가 생긴다는 거에요. 그러니 피해자들 내부에서 화해가 안되어 있는 거죠. 조사하다보니까 25년 전에 법정에서 헤어지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피해자들끼리. 거기서 나온 얘기가 ‘아주머니 미안해’ 하니까, 숙모 말씀이 ‘니가 무슨 죄가 있니’라고 하면서 ‘니 비명 소리 듣다가 내가 까무러쳤는데, 니가 무슨 죄가 있니?’하는데, 25년 후에 내가 듣다가 정말 까무라칠 뻔 했어요. 이게 화해거든요. 이런 피해자끼리의 화해도 안된 상태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거죠.
또 하나는 보수 세력 내에서 과거 청산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청산 문제를 진보 진영 일부에서도 정략적으로 접근한 사람들이 있었던 게 사실이고, 그렇게 되니까 보수나 수구 세력에서도 기를 쓰고 정략으로 몰고 갔는데, 국가 기관이 고문한 피해자들을 조사해서 사과하고 그 사람들의 억울함을 벗겨주는 게 왜 진보적인 과제입니까? 정말 보수적인 과제예요. 한국 사회에서 보수 세력이 왜 신망을 못 얻느냐 하면 이런 거 안하니까 그런 겁니다. 진보 세력이 왜 피로하냐 하면 진보 세력이 대신 이런 것을 하니까 과부하가 걸리는 겁니다. 과거 때문에 미래의 성찰을 못하고 있고요.
*** 민중들의 현명한 정치적 선택: 67년 7대 국회의원선거 (6ㆍ8부정선거) 이후
– 1971년 대선과 8대국회의원선거
– 유신 말기인 1978년 10대 국회의원 선거: 신민당이 득표율에서 공화당 앞지름
– 1985년 12대 총선: 2ㆍ12총선: 관제야당 민한당의 몰락과 신민당 돌풍
– 1992년 14대 총선: 3당합당 거부: 사실상의 양당제
– 2004년 17대 총선: 탄핵 거부
현재의 어려움에 대하여
지금 상황이 어렵다는 얘기를 참 많이 합니다. 실제로 어렵구요. 두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요. 하나는 낙담하지말자, 더 어려웠던 시절은 많았다는 거구요. 수구세력들의 손봐야할 사람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저보고 조심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농담반 진담반 그런 말들을 합니다. ‘웃기지 마라. 우리가 박정희, 전두환 밑에서도 살았는데, 이명박, 박근혜 밑에서 못살게 뭐 있느냐’라는 대답을 합니다. 지금 상황이 어렵긴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에서 이것보다 더 어려웠던 적이 훨씬 많았거든요. 그때 생각하면 얼마든지 헤쳐나갈 수 있는 거죠. 여기까지 온 게 어딘데요. 한국 전쟁 후에 아무 것도 안남은 데서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낙담하지 말자는 얘기도 하구요.
또 하나는 지금의 어려움에 대해서 왜 어렵게 되었느냐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제 얘기는 이 상황을 너무 쉽게 정치공학적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말자는 거예요. 물론 저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거 바라죠. 그렇지만, 거기에 너무 급급하다가 우리가 진짜로 깊이 있게 반성해야할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외환위기 때 우리가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이유가 탈출 강박관념 때문이었거든요. 지금의 상황이 어렵죠. 이것도 탈출 강박 관념 때문에 공학적인 묘수풀이에 매달리기 보다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진짜 진지한 반성을 해야하는 거죠. 우리 사회 안에서 성찰의 계기, 그 성찰은 꼭 우리의 잘못한 점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 하 고 있는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변했구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는 부분에 대한 성찰까지를 포함해서 진지하게 반성해야 된다고 봅니다. 민주화 10년 동안 비판할 것도 많지만, 이 정권 동안에 이룬 것도 만만치 않잖아요. 절대로 후퇴하게 해서도 안되고, 지금 세상이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정권 잡았다고 해서 또 다시 민주 인사들이 국정원에 잡혀 가서 거꾸로 매달려서 두들겨 맞는 일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런 시스템 상에 우리가 만들어놓은 부분들,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정권이 넘어간다한들 이걸 허물 수는 없다는 말이죠. 심지어는 조갑제나 정형근이 잡아도 이걸 바꾸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우리가 잘못한 게 있으면 정권을 내줄 수도 있고, 그러다가 정권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구요. 그러면 정권을 되찾았을 때 확고한 민주화, 돌이킬 수 없는 민주화를 해나갈 수 있으면 되는 거죠.
IV.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