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권모니터링] 토지 수용으로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버마 농민들

2013-04-02 575

토지 수용으로 터전을 잃어가고 있는 버마 농민들

 

박찬민_10기 국제연대위 자원활동가

민주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 속에

2010년 첫 ‘민간인’ 대통령이라 불리는 테인 세인 대통령 취임 후 버마에서는 개방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군부집권 시절 정치적 불안으로 투자를 꺼려왔던 해외자본이 민주개혁을 약속한 현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리스크가 낮아졌다고 판단, 투자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또 2009년 이후 버마는 5~6%의 안정적 경제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첫 민간정부 출범, 안정적인 경제 성장 그리고 해외자본의 투자 증가. 민주화와 개방화를 이룬 개발도상국의 전형적 발전 징후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버마의 장밋빛 이면에는 개발과 투자로 인해 토지를 수용당한, 삶의 터전과 생계수단을 잃은, 고통 받는 농민들이 있다.

토지 수용은 199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도 진행되었다. 군사시설 건립, 정부사업 추진 등을 이유로 대부분의 경우 보상 없이 농민들을 쫓아내었고, 저항하는 소수민족의 거주 지역에서는 탄압을 목적으로 더욱 심한 형태로 진행되었다.1) 민간정부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적나라한 수탈은 없어졌지만 투자, 투기 자본에 의한 수용은 그 대상 및 범위를 점점 확장한 채 이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버마 북서부에 위치한 모니와 구리 광산 개발(정부 소유 기업과 중국계 기업이 추진)을 위해 세 마을 주민이 강제 퇴거를 당하였고, 2000년에 시작된 슈에가스 개발사업(정부, 중국, 한국 기업 등이 참여)도 끊임없는 인권침해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힘없는 농민과 힘있는 자본

증가하는 토지 수용 조치에 평생을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된 농민들(국민의 63%가 농사에 종업)은 시위, 소송 등 다양한 형태로 맞서고 있지만 거대한 자본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모습이다. 수용 대상이 되는 토지에는 막대한 개발 이권이 결부되어 있어 투자자 및 기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권력을 앞세워 농민들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있다. 모니와 광산의 경우 경찰이 시위 중인 농민·승려 수천 명을 유혈 진압하였고 그 사태로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Earth Rights International(ERI)와 Karen Human Rights Group(KHRG) 등 여러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버마의 토지 수용 현황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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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개발 반대 시위 중 부상당한 승려를 방문한 아웅산 수치 여사 (출처: New York Times)

농민에게 불리한 법적 여건

농민들을 구제할 법적 수단은 없을까? 인권단체들은 농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두 가지 법안 (경작지법, 휴경지법)이 2012년 통과되었지만 오히려 이 법들이 구제를 막고 수용을 돕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작지법은 토지의 소유 및 이전에 대한 권한 부여 기능을 지역 위원회에 두고 있는데 위원회 전원은 정부부처 대표들로 구성되며 농민의 의사를 반영할 농민대표를 위한 자리는 없다. 이러한 구성의 문제와 더불어 위원들의 경우 종종 상업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개발 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토지 수용에 긍정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등 개인의 부패 문제도 존재한다. 또한 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도 같은 위원회 소관으로 사실상 이의절차는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농민들은 위원회에 등록해서 토지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아야 수용에 대항할 수 있으나 위원회에 대한 불신에 등록 자체를 포기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미등록된 토지는 수용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버마 토지의 상당량이 미등록된 채로 사업 목적으로 개발 자본에 넘어가고 있다.

휴경지법 또한 경작지법처럼 친수용적인 방향으로 활용되고 있다. 휴경지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회는 휴경지에 관한 다양한 권한을 가지는데, 이중 수용에 있어 중요한 결정요소인 휴경지 여부 판단권이 포함돼있다. 버마 농민 다수는 이동경작을 하는데 (특히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이동경작을 하고 있다) 이동경작의 특성상 항상 토지의 일부를 놀리게 된다. 이때 놀리는 토지가 휴경지법에 의거, 위원회로부터 휴경지로 분류되면 아무리 오랫동안 점유·사용해왔다고 하더라도 농민은 토지를 잃게 되어 수용조치에 대해 아무런 법적 보호를 주장하거나 받을 수 없게 된다. 개발 자본과 결탁한 정부관료는 이러한 법적 허점을 이용하여 토지 수용 인가를 늘려가고 있다.

토지 수용에 관한 정부의 편법 동원 및 횡포에 맞서 사법부가 견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수용 관련 법령이 정부 및 위원회에 관련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하고 그 자율적 사용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수용적인 법령에 맞서 군사시절부터 오랫동안 정부와 유착관계를 맺어온 사법부에게 운신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국민 대부분이 군사정권 시절 사법부의 부정부패를 경험해 왔기에 권리 구제를 위해 사법부에 호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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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수용 반대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 (출처: 로이터 통신)


희망은 없는 걸까?

버마 국민의 70%에 가까운 수가 농촌지역에 거주하며 그 중 3분의 1이 토지가 없는 상태임을 감안할 때 지속되는 토지 수용을 둘러싼 분쟁은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건 테인 세인 대통령의 ‘민주’정부에 상당한 부담을 시사한다. 군부독재 청산과 민주화를 표방한 그는 국내외로 그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고 토지 수용과 같이 범국민적 비판 여론을 형성하는 이슈의 확대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2015년 총선을 앞두고 민심을 외면하는 행보는 정권교체라는 치명적인 결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수용 관련 문제 해결은 대통령과 여당의 시급한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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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치 여사는 2015년 대선출마 의사를 밝혔다. (출처: 연합뉴스)

 

결국 2012년 4월, 정치적 부담이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집권여당인 통합단결발전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은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버마 전역에서 일어나는 토지 분쟁을 조사하는 위원회 설치안을 통과시켰고, 발족된 의회 소속 토지조사위원회(Parliamentary Land Investigation Committee)는 토지 수용 문제의 직접 조사에 나섰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또한 이러한 의회의 진상조사 및 구제노력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하는 것은 정부나 정당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수용된 토지에서 사업을 하거나 수용을 앞둔 기업 중 몇몇은 지역민들에게 토지를 반환·보상하거나 공동개발참여를 제시하는 등 지역민들과의 관계 개선 및 이미지 제고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8월 Ayeya Shwe Wah社는 이라와디 삼각주에서 수용한 토지 4만 에이커를 농민들에게 반환하였고, 12월에는 버마 재벌기업 Zaw Zaw社가 13명의 농부들에게 106 에이커 면적의 수용토지에 대한 보상으로 한화 8억원을 지불하였다. Zaw Zaw社가 군부정권과의 유착관계로 미국 경제제재 리스트에 오른 기업임을 감안할 때 자체적 보상 노력은 수용토지 분쟁해결에 있어 고무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정당과 기업이 최근 보여준 수용문제에 대한 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되나 산적해 있는 분쟁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정당의 경우 총선을 앞두고 문제 해결에 나섰고, 기업들도 성난 민심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보상을 시작했음을 고려할 때 작금의 노력들이 한시적인 조치에 그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하여 Asian Legal Resource Centre(ALRC)는 최근 작성한 버마 토지 수용 문제 보고서를 통해 현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근본적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을 발표했다.

ALRC는 현 경작지법은 국책사업 또는 국익이라는 미명 아래 농경지 수용을 정당화기 때문에 그 적용이 중단되어야 하고, “독립적 지위를 가진 전문가나 농민대표”가 없는 “정부관료가 독점한 위원회”의 구성은 공익을 진정으로 보호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 사용자, 법률가, 기술자 등 다양한 구성원의 참여가 전제된 개정 노력을 정부가 추진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토지 분쟁관련 해결절차가 행정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사법부를 포함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야 함을 지적하고, 나아가 “토지 수용 관련 분쟁을 진정 해결하기를 바란다면 사법부가 실효적이고 신뢰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주문하며 사법부가 마지막 보루로서의 제역할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참고]

1) “Land grabbing as big business in Myanmar”, <Asian Times>, 2013.03.08.

(http://www.atimes.com/atimes/Southeast_Asia/SEA-01-080313.html)

2) “’Epidemic’ of land grabing in Burma: report”, <Mizzima News> 2012.06.07.

(http://www.mizzima.com/business/7277-epidemic-of-land-grabbing-in-burma-report.html)

3) “Expert cautions on ‘land grab’ model”, <Myanmar Times>, 2012.03.04.

(http://mmtimes.com/2012/news/616/news61612.html)

4) “Rebel ceasefire fuels Myanmar land grabs: report”, <Global Post>, 2013.03.05.

(http://www.globalpost.com/dispatch/news/afp/130305/rebel-ceasefire-fuels-myanmar-land-grabs-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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