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어느 토요일 광화문 네거리의 단상 – 쌍차 국정조사 요구하는 민변 삼보일배 참석 후기

2012-10-30 124

어느 토요일 광화문 네거리의 단상

– 쌍차 해고자 복직과 국정조사 촉구를 위한 민변 삼보일배 참석 후기


글_ 최용근 회원



<“삼보일배(三步一拜)는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하는 불교의 수행법으로,
탐(貪) 진(瞋) 치(癡)의 삼독(三毒) 즉,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끊어내고자 하는 수행법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서전, “삼보일배” 참조>


  2012년 10월 27일, 쌍용자동차 해고자 복직 및 국정조사 촉구를 위한 민변 삼보일배에 참여하였습니다. 오후 두시부터 시작된 집회는 대한문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까지 약 1km 구간에서 진행되었으며, 권영국 변호사님을 비롯하여 열여섯분의 변호사님과 전명훈 간사님, 그리고 민변의 9기 인턴 다섯 분이 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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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끊어내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서 하늘이 벌을 내린 것일까요. 하늘에서 비가 쏟아집니다. 우의를 입었지만 우의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기엔 애초에 무리였을까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어느덧 마음 속 깊은 곳을 향합니다. 무엇인지 모를 먹먹함이 세 걸음을 더욱 더디게 합니다.


  “같이 살자 쌍용 복직!” 대오 후미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구호에 맞추어 세 번을 걷고 한 번을 엎드립니다. 우리가 정한 아주 단순한 원칙입니다. 물웅덩이 앞에 엎드려, 스물 세 분의 귀천(歸天)을 생각해 봅니다. 횡단보도의 정지선 앞에 엎드려, 사랑하는 가족을 속절없이 떠나보낸 누군가의 얼굴을, 감히 떠올려 봅니다. 울퉁불퉁한 보도 블럭 앞에 엎드려, “아버지가 쌍용자동차에 다니는 사람 있느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묵묵히 고개를 숙여야 했던 어느 소년의 비통한 심정을, 감히, 감히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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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처음엔 빗물인 줄 알았습니다. 온 대지를 적시는 차가운 빗방울이 내 눈이라고 비껴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땀방울인줄 알았습니다.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만 구조조정의 부당성을 스크린 위에 나열하였던 게으름을 탓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에 서운함을 느낄 때 쯤, 어느 한 여대생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힘내세요.” 울먹임이 뒤섞인 그 한 마디에, 비로소 물방울의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기실 힘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3000여명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일터를 잃었습니다. 생존권 확보를 위한 77일간의 옥쇄파업은 가혹한 폭력진압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님은 스물 네 번째 귀천(歸天)을 막기 위해 곡기를 끊고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젊음을 회사에 바쳤습니다. 잔업도 특근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고 여기며, 저녁도 주말도 포기하고 회사를 집처럼 여겼습니다. 아이들에겐 땀과 기름때, 담배 냄새, 피곤에 절어 있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이번 생산만 끝나면,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아이들 손을 잡고 놀이동산도 가고 여행도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린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은,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는 회사의 알량한 해고 통지와, 아파트 23층 난간에서 맞닥뜨린 차가운 공기였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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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을 위해 생존으로부터 멀어져야만 하는 비극적인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왜 사람이 비용으로만 인식되어야 합니까? 왜 아무런 잘못도 없는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작은 행복을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조차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야 합니까? 빈약한 근로기준법 제24조의 문제입니까? 아니면 경영상 해고의 위법성을 밝혀내지 못한 사법시스템의 문제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을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로만 여기는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까? 불민(不敏)한 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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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보일배가 끝났습니다. 두 시간 동안 세 번 걷고 한 번 절하며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데에는 불과 10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거리를 참 멀리도 돌아온 것은 비단 우리만은 아닌 듯 합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이 원래의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쌍용자동차의 경영상 해고에 관한 국정조사를 실시하여 그 위법성을 밝혀 줄 것을 촉구합니다.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게 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게 깊이 사과하고 위로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아무런 귀책사유 없는 노동자들이 그저 회사의 경영상 위기라는 사용자의 귀책사유에 의해 삶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 없기를,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저의 삼보일배는 과거가 되었습니다. 내리는 비도 모두 그치고, 따가운 가을 볕이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속에서 지난 토요일 광화문 네거리에서의 두 시간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듯 합니다.

  연대의 따뜻함은 나눌수록 커집니다. 못내 휘청거리는 오금을 곧추세워 준 것이 여대생의 울먹이는 한 마디였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삼보일배가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그리고 그 외로운 투쟁을 끝낼 수 있는 아주 작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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