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일터, 사회를 위한 법률가대회 및 촛불문화제 참석 후기

2012-10-30 161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일터, 사회를 위한

법률가대회 및 촛불문화제 참석 후기


글_ 9기 인턴 장현진



  날씨가 본격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한 지난 10월 18일, 대한문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일터, 사회를 위한 법률가대회 및 촛불문화제’(이하 법률가대회)에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 법률원에서 함께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윤애림 박사의 사회로 법률가대회 및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었다. 민변 노동위원장 권영국 변호사님의 첫 발언을 들으며 나눠주시는 촛불에 불을 붙였다. 이어서 현대자동차 아산지회의 투쟁발언이 있었다. 발언자께서는 현대차 아산공장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셨고 현대차 울산공장 송전탑에서 고공농성 중이신 두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함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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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쌍용자동차 비정규지회, 재능지부, 콜트콜텍의 사건 당사자와 법률가가 함께 하는 사건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노동자들이 각각의 사건을 간단히 설명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한문 앞에서 농성을 계속해 온 쌍용차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2009년으로 거슬러간다. 자동차 기술 이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상하이차는 운영자금이 모자란다는 핑계로 정리해고를 요구했고 일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자본 철수를 위해 국내의 바지 경영진, 회계법인과 공모하여 회계를 조작하고 유동성 위기를 조장하여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간 쌍용차는 2646명을 정리해고했다. 2009년 5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는 노동자에게 경영위기의 책임을 전가시킨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파업에 돌입하였으나 정부와 사측은 이를 불법파업으로 몰아붙였고 정부는 경찰특공대를 포함한 진압경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방해하였다. 77일의 옥쇄파업 이후 법집행의 후유증으로 인해 3년 만에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 22명이 사망해갔으며 남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학습지노조 재능지부는 2007년 12월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해서 만 5년째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부당한 수수료 제도에 반대해서 처음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이후 참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여성이지만 이들은 ‘특수고용자’라는 지위에 갇혀 노동법 보장을 받지 못했다. 출산휴가는 무급휴가였고 출산휴가 6개월 이내 복귀하지 않으면 재계약을 않거나 선별복직을 시켰다. 게다가 조합원이라고 하면 불이익까지 당했다. ‘노동자’라는 그 당연한 진실을 인정받기 위해 천막농성을 하던 도중 2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병가로 휴직 신청을 했는데 복귀를 하지 않는다고 해고되었고,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고, 노조 조합비 내는 것이 재능교육 불매운동에 동의하는 행위라고 해서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재능지부의 지난 발자취를 이야기하시며, 발언자께서는 이제 재능은 특수고용자의 상징이 되었다며 산재보험 등의 혜택보다도 특수고용자가 ‘노동자’로 인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콜트콜텍 투쟁의 역사 또한 복잡하다. 기타를 만드는 회사인 콜트콜텍은 2007년 7월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그러나 2008년에는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 해외 공장을 만들었고 아직까지도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점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즉, 회사는 사측 주장대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해 폐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주장 이면에 있는 반노조정서가 정리해고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소를 내고 장기간 농성에 돌입했고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월, 대법원은 당시 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이 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회사 측은 구제명령이 내려진 후 다시 노동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착 가라앉은 가을 공기와 같은 무거운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서로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 질문이 이어졌다. 쌍차 담당 김태욱 변호사님의 첫 인상은 ‘법적으로 특화된 노동자’였다고 한다. 기륭 연대하셨다는 이야기에 호감이 갔고, 지식이 좀 많은 그리고 자신과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하셨다. 재능 담당 조현주 변호사님의 첫인상은 ‘노동자와 함께 하고자 하는 동지’라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콜트콜텍 담당 박주영 노무사님의 첫인상을 ‘이리저리 잘 보는 기린’이라고 말씀한 부분에서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잔잔한 웃음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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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건을 진행하는데 어려운 점에 대한 사건 담당 법률가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쌍용자동차의 경우는 비정규직 간접고용의 측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는 점이 어렵다고 하셨다. 노동청의 집단조사가 있었지만 이후에 내부문서를 보면 회사에서 변조작업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또, 금속노조가 현장을 빼앗겼기에 자료확보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고 하셨다.

  재능지부의 경우는 (1) 학습지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2) 학습지 노조는 노조가 아니다, 라는 이 두 가지의 대법원 판례를 바꾸는 점이 어렵다고 하셨다. 최근 회사에서 최종합의안으로 내용증명을 보내 해고노동자 11명의 전원복직을 약속하고 위로금을 지급하며 회사로 돌아온 뒤 다시 교섭을 시작하자고 제안했으나 해고노동자들은 제안서를 거부했다. 그 제안서는 해고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합의안이었기 때문이다. 제안서는 ‘학습지교사들은 근로자가 아니지만…’으로 시작한다고 한다. 본인 이해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합의안이었기에 조합원들은 흔들렸지만 그래도 자신들은 ‘노동자’라는 책임감으로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고 노무사님께서 전해주셨다.

  콜트콜텍의 경우는 2007년 4월 법적인 투쟁을 시작하였다. 복직명령을 이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으나 노동자들은 재해고 되었고 ‘긴박한 법률상의 사유가 있느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대법 심리가 진행 중이라고 하셨다.(그리고 지난 24일 안타까운 대법 판결이 나왔다.) 노무사님께서는 ‘폐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셨는데 국내에서 악기제조를 하지 않고 해외 생산 악기를 가지고 콜트악기라는 상표를 유지하면서 국내 영업을 지속한다면, 국내 영업장을 폐쇄하는 것만으로 폐업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문이었다. 전체 사업장 중 일부를 폐업한 것이 폐업인지, 이 명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였다. 또, 구 근로기준법에서는 부당해고가 형사처벌이 가능하기에 대법 판결 이후 형사절차가 이어졌어야 하는데 법정투쟁이 4-5년간 계속되면서 형사고발했던 사건이 노동부 또는 검찰 어디에선가 증발했다는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셨다.

  노조 활동가들에게 “나에게 법이란?”이란 질문을 마지막으로 토크쇼를 마치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결성한 밴드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십 수년 동안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이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한다. “십년동안 기타를 만들다가, 기타 회사에서 해고되고야 나서 처음 기타를 배웠습니다”라는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저 기타는 어느 회사의 기타일까, 라는 질문을 속으로 삼키며 어깨동무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민변 변호사님들도, 인턴들도, 다른 법률가단체 분들도, 집회에 함께 참여한 한신대 분들도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불놀이야>, <나 어떡해> 등을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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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일터, 사회를 위한 법률가대회 결의문을 낭독하고 법률가대회를 마쳤다.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 간접고용과 중간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 개정, 상시적인 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촉구, 정리해고 중단을 요구하였다.

  민변 인턴을 하면서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경험들을 하고 이전에 생각해보지 못한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사회학을 전공하며 노동 분야에 관한 내용도 배웠고 학회에서 몇몇 책들도 읽었지만 노동에 관한 한 내 관심은 신문에 실린 파업 기사를 읽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콜트콜텍도, 쌍용차도, 재능도 파업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래서 대한문 앞 이 한 자리에 모인 세 가지의 이야기가 참으로 무겁고, 슬프고, 복잡하고 또 어려웠다. 왜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데 임금이 다른지, 학습지 교사는 왜 특수고용자인지, 콜트콜텍은 왜 잘 나가는 회사를 폐업을 했는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데 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 현실이라는 점에, 그리고 우리와 멀지 않은 바로 이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 마음이 무거웠다.

  사건 이야기의 마지막 코너는 활동가들에게 “나에게 법이란?”이라는 약간 상투적인 질문으로 마무리되었다. 해고자들이 보는 법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었고 “고무줄 같은 것”이었으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약자의 편을 들 것 같고 모두에게 평등할 것 같은 법 해고되고 난 이후에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고, 불평등하고, 가진 자에게 기울어져 있었으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했다는 이야기들. “차라리 없었으면 만들어갈텐데…”라는 그 작은 침묵과 “법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외침, 고무줄 법이 아닌 정확한 잣대의 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참 먹먹했다. “법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라는 그 말이,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앞으로 계속 관심을 갖고 연대할 것을 다짐하며, 쌍차 재능 콜트콜텍의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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