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미군위-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평화교류회 참가기
글_김진형 변호사
들어가며
올해로 여섯 번째 개최된 “한국–오키나와 평화교류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지난 6월부터 민변 미군문제연구위원회의 회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면서
선배변호사님들로부터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의 국제연대활동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 교류회에 대해 많은 기대를 했었고, 또 기대했던 만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교류회의 느낌과 감동을 많은 민변 변호사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2012. 9. 13. 오후 환영만찬회
교류회 첫 일정은 오후에 진행된 세미나였지만, 사정상 저는 퇴근후에
환영만찬회가 진행되는 여의도 선착장 파라다이스 레스토랑으로 향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레스토랑 한켠에 자리잡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마 뒤에 변호사님들이 들어오시더군요. 하지만 민변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느 분이 오키나와 변호사님이시고 어느 분이 민변 변호사님이신지도
잘 모르는지라 저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녕하세요’라고 우리말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어서 간단하게 인사정도는 건넬 수 있었지만, 민변 변호사님께 일본어로 인사를 드렸다가는 저를 오키나와 변호사로 오해하실 것 같았거든요.
자리가 정리되고 식사를 하면서 이재정 변호사님과 통역을 맡아주신 김영환 선생님의 사회로 소개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은 벌써 여러 해 동안 교류회에 참석하시면서 우리말을 많이 배우셨는지 우리말로 인사 하시는
분들이 여러 분 계셨습니다. 특히 기타지넨(우리말로는 ‘자연보호’라는
의미랍니다) 변호사님은 정말 유창한 우리말을 하셔서 많은 민변 변호사님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연세가 지긋하신 오키나와 변호사님(이시미네 젠조 선생님으로
기억합니다)께서는 ‘오늘의 감동적인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서’ 오키나와 전통 민요를 직접 불러주셨는데, 느리면서도 구성진 가락이 우리의 ‘아리랑’과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환영만찬이 끝나고 근처 술집에서 오키나와의 젊은 변호사님들과 2차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비록 제 일본어실력이 부족해서 간단한 영어단어를 가지고 짧은 대화를 해야 했지만, 서로 대한 반가움과 제주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2. 9. 14. 제주 첫째날
오전에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4·3 기념관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20만명 가량이었던 제주주민의 1/6
가량인 3만명 이상이 국가권력에 의해서 무참하게 학살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에 대해서 진실규명과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 못한 4·3항쟁. 역사책을 읽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기념관에 재현된 당시의 생생한 학살의 모습과 끝없이 이어진 희생자들의 비석 앞에서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군기지건설로 인해서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4·3기념비에 헌화와 묵념을 하고, 4·3
항쟁에 대해서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쓴 소설 ‘순이삼촌’의 배경이 되었던 북촌리마을을 둘러본 후 ‘돌하르방공원’에 들렀습니다.
돌하르방공원은 제주의 작가분께서 제주에 남아 있는 돌하르방과 새롭게 창작하신 여러 가지 형태와 표정의 돌하르방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같은 돌하르방이라도 제주의 지역별로 그 형태와 크기, 표정이 다르다는 사실이 새로웠습니다.
돌하르방공원을 둘러본 후, 근처에 있는 숙소로 향했습니다.
숙소에는 제주의 토속음식들과 함께 박진석변호사님께서 오키나와 분들과 미군위 변호사님들을 위해서 통크게 한턱 쏘신
활어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저녁식사와 함께 이어진 술자리에서는 어느새 모두들 오랜 친구처럼 친해져
있었고, 저역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과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나오코상은 한국의 배우 김명민을 좋아해서 김명민이 출연한 ‘조선명탐정’이라는 영화를 보았다는 이야기, 히타카상은 허리를 다쳐서 이번 교류회에 함께 오지 못할 뻔 했었지만 꼭 오고 싶어서 허리보호대를 하고 참석했다는
이야기, 사이토상은 나이는 제일 어리지만 벌써 결혼을 해서 1살된
예쁜 딸이 있다는 이야기, 아키후미상은 내년이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 밤늦도록 영어와 일본어, 손짓을 섞어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12. 9. 15. 둘째날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지만, 아침 일찍 강정마을을 방문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어서 모두들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 강정은 화훼와 어업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제주해군기지건설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입장이 갈라져서 형제들간에도 서로 왕래가 끊긴지 오래라고 합니다.
마을입구부터 집집마다 ‘해군기지건설반대’를 뜻하는 노란 깃발과 ‘찬성’을 뜻하는 태극기가 걸려져서 마치 전쟁터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해변의 군사기지건설현장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구럼비 바위가 있었던 자리에는
공사를 위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공사장 정문 앞에서 열리고 있던 평화미사를 함께 드린 후 점심식사를 하고 해군기지반대투쟁을 하고 계신 신부님, 목사님, 그리고 강정마을에서 상주하면서 법률적 도움을 주고 있으신
백신옥 변호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어렵고 힘들지만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는 싸움이기 때문에 끝까지 싸우고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마을회장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주의 현실에 대해서 제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강정마을을 나오면서, 마을주민들이 소개해 주신 ‘네끼리 소’에 들렀습니다. 숲길을 따라 가다가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갑자기 넓은 호수와 폭포가 보이는 네끼리 소는 ‘네가지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곳’이라는 뜻으로, 마을주민들은 이 곳에서 큰 소리도 내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네끼리 소를 바라보면서, 왜 이렇게 작고 평화로운 곳에 군사기지를
세우려고 하는지,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제주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면서 뒷풀이를 하였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제주의 가슴아픈
역사와 현실에 가슴아파 하면서 서로가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을 잊지 말고 내년의 만남을 기대하자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2012. 9. 16. 제주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제주공항에서 오키나와 변호사님들을 배웅하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간단하게나마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제주에서의 여정을 준비해 주신 ‘제주생태여행’의 고재량 선생님, 오키나와
변호사님과 민변변호사님들의 통역을 담당하시느라 제대로 쉬시도 못하시고 고생하신 김영환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성황리의 마친 이번 교류회의 성공을 축하하고 내년 교류회를 더욱 성대하게 치를 것을 다짐하는 조영선
미군위원장님의 말씀을 끝으로 교류회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마치며
청운의 꿈을 안고 고시공부를 시작해서 변호사가 된지 이제 8개월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서면과 재판참석에 치이다 보면, 처음 변호사가 되고자
마음먹으면서 다짐했던 꿈들은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민변 미군위 회의에서 선배 변호사님들께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고 ‘선배 변호사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자’라고 저를 채찍질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번 교류회를 통해서 제주의 역사와 현실을 새롭게 알게 되고, 오키나와
노변호사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왜 변호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변호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하셨던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내년에 밝은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