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 고시랑>
엄마가 된 장연희 간사의 워킹맘 적응기
글_장연희 간사
“엄마가 되다”
2011. 10. 7. 21:15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무엇인가 ‘툭’ 하고 터지면서 방바닥까지 흘러내린다. ‘이게 뭐지? 아직 예정일이 2주나 남았는데…’ 덜컥 겁이 나는 마음에 옆지기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양수검사를 마친 간호사는 양수가 터진 것이 맞다며 태아 감염우려가 있으니 바로 입원하여 항생제와 수액을 맞으란다.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안에 아기가 나와야 한다고… 그렇게 출산가방도 챙겨오지 않은 채로 경황없이 입원을 하고, 출산에 필요한 사전 조치를 하고 나니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간호사는 내일 아침에 촉진제 넣을 거라면서 힘쓰려면 한숨 자두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은 더 맑아지고 두려움 반, 설렘 반이 분만실 침대에 동침하여 나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그러나 촉진제를 넣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고, 간호사들은 아기가 아직 밑으로 내려오지 않아 이러다 수술을 할 수도 있다며 자꾸 겁을 준다. 옆 분만실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벌써 몇 차례 지나가고 있는데… 아가야, 엄마도 네 울음소리를 듣고 싶단다…
2011. 10. 9. 07:00
양수가 파수되고 하루 반이 지났지만 아기는 아직 소식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기의 심장 박동이 너무나 건강하다는 것. 아기도 힘내고 있으니 엄마도 힘내자는 간호사의 말과 함께 두 번째 촉진제를 넣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진통이 천둥처럼 몰려든다. 아, 이런게 바로 산통이라는 거구나.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이 산통의 정체를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으리라… 누워 있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는 고통스런 시간이 2시간여 지났을까, 드디어 아기가 세상 문 앞에서 ‘똑똑’ ‘똑똑’ 거리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걸까. 마지막 힘주기와 함께 갑자기 뱃속이 평온해 지고, 뭔가 물컹한 것이 몸에서 빠져나온 듯하다.
그리고 너무도 듣고 싶었던 한마디,
“축하합니다. 2011년 10월 9일 11시 45분 3.12kg, 50cm의 건강한 사내 아이 입니다.”
“행복한 씨름”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 2주 동안, 우리 아기는 더없는 ‘순둥이’였다. 먹고 자고, 또 먹고 자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옆지기와 나는 우리 아기는 정말 순하다며, 집에 가서도 계속 이렇게 잠만 자면 우리 부부는 심심해서 어쩌냐며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아기는 집으로 돌아온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새벽에 1~2시간 간격으로 계속 깨서 울어 대고, 자고 있는 시간이 아니면 한시도 혼자 놀지를 못하는 것이다. 그것뿐인가… 간신히 재워 눕히면 ‘누가 잔대?’하는 눈빛으로 엄마, 아빠를 쳐다보는 것이다. 어른들이 만삭인 내 배를 보며 그래도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하신 말씀이 괜한 말씀이 아니셨구나…
그날부터 나는 매일같이 아기와 씨름을 하며 옆지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주말을 기다리고, 엄마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100일을 기다렸다. 100일… 엄마들은 아기가 100일쯤 되면 잘 먹고, 잘 자며 제법 사람노릇을 한다고 이를 “100일의 기적”이라 부른다. 마침 한글이(우리 아기 이름입니다. 한글날 태어난 이유도 있지만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소중히 여기는 아기로 키우고 싶어서 짓게 된 이름입니다^^)도 그를 증명하듯 100일 즈음하여 잘 먹고, 잘 자는 모범생 아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기적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기와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소중한… 그야말로 기적 같은 시간들인가를 100일에서야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로 한글이와 함께 하는 하루하루는 정말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기쁨이고 설렘이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말, 그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일 것이다.
“2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제일 좋다는데…”
한글이가 드디어 엄마, 아빠를 향해 웃음을 날리고, 혼자서 뒤집고, 기어 다니고, 앉고, 일어서고… 그렇게 한글이와의 지독한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야속한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복직일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가장 괴롭힌 말은 바로 “2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제일 좋다”라는 말이었다. 그때 형성된 인성이 평생을 좌우하고, 만 2살은 지나야 면역력도 다시 좋아진다는 것이다. 거기다 시댁과 친정이 먼 맞벌이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어린이집인데 무상보육으로 바뀌면서 요즘은 어린이집 자리도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니 더 답답할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금쪽같은 우리 한글이를 두고 출근할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시린 것이었다. 그래서 내심 어린이집이 빨리 구해지지 않기를, 그러면 미안하더라도 돌까지 만이라도 육아휴직을 연장 할 수 있지 않을까 흑심을 품기도 했었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었는지. 계획된 복직일을 한 달여 앞두고 집근처에 새로운 어린이집이 개원을 하게 되었고, 원아모집 현수막이 붙던 순간 우연찮게도 그것을 보고 만 것이다. 단 몇 시간만 늦게 보았어도 자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누구는 그냥 눈 꽉 감고 육아휴직 연장하라고, 또 누구는 어차피 복귀해도 오래 버티기 힘드니 이참에 그만 두라며 꿈틀대는 모성애를 더욱 흔들어 대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한글이의 미래를 위해서도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또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라면 당차게, 멋지게 넘어보고 싶었다.
“워킹맘 적응기”
‘이유식 3개, 간식 2개, 냉동 모유 1팩, 두유 1개, 물컵, 빨대컵, 숟가락, 여벌옷, 손수건, 기저귀, 연락장, 그리고 내 휴대폰 꼭 챙기기!!’
냉장고에 붙어있는 메모지이다. 혹시라도 바쁜 아침에 하나라도 놓치면 곤란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메모지를 보며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긴다. 아직 보름도 지나지 않은 워킹맘 초보이기에 얼떨떨한 기분으로 아기를 맡기고, 아기를 데려오고 있지만 아기와 떨어져 있는 이 허전함도, 출퇴근 시간의 이 분주함도, 사무실에서 모유 유축을 하는 이 멀뚱함도 머지않아 조금씩 익숙해 지겠지… 그래야 겠지… 그리고 우리 한글이가 부디 새로운 일상에 잘 적응해 주기를, 나 또한 부디 더욱더 강한 엄마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열심히 응원해 본다.
훗날 워킹맘 선택이 후회되지는 않을지, 또 과연 무엇이 아기를 위한 최선일지는 아직도 혼란스럽다. 다만,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것, 아기랑 하루 종일 붙어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해 주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