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 고시랑] It ain’t over till it’s over! – 최용근 변호사

2012-05-31 241


<It ain’t over till it’s over!>



 글_최용근 변호사


“It ain’t over till it’s over!”


 


우리 말로 해석해 보자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정도 될까요. 독자 여러분께서는 위 문장을 보시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생각하셨습니까? 음악을 좋아하시는, 1991년의 빌보드 차트를 기억하시는 분이시라면 자연스럽게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의 목소리를 떠올리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또 다른 독자 여러분들은 그보다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 요기 베라(Lawrence Peter “Yogi” Berra)와, 짙푸른 잔디가 깔린 야구장을 상상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위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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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지루하고 골치아픈 스포츠?


 


저는 언제부터 야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저는 야구선수 유니폼에 부착되어 있는 등번호와 선수 이름을 보면서 숫자와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가족 중에 야구를 저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참 희한한 일입니다.


 


시작은 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지극히 미미하였던 저의 야구에 대한 사랑은,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뜨거워져 지금은 이제 제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없듯이, 저의 야구에 대한 감정도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야구는 보통 두 시간 반 이상 걸리는 긴 경기이고, 규칙도 꽤나 복잡합니다. 타율, OPS, 방어율 등 알 수 없는 수치들이 마구 등장하여 가뜩이나 복잡한 경기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합니다. 싫어하려면 얼마든지 싫어할 수 있는 이 야구에 저는 왜 빠져들게 되었을까요. 굳이 그 이유를 찾자면(혹은 만들어 보자면) 쓸데 없는 사족을 다는 것일까요.



“불완전”한 “인간”을 “중심”에 두는 스포츠, 야구


 


야구에서 득점은 선수가 1루, 2루,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인정이 됩니다. 농구에서는 공이 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야 하고, 배구에서는 공이 플로어(floor)에 닿아야, 축구에서는 공이 골대 속으로 쑥 들어가야 득점이 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구조이지요. 공은 그저 사람이 각 루를 도는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타자는 주자가 되어 공보다 빨리 자신이 출발한 자리로, 즉 타석이 있는 홈(home)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이러한 규칙 덕분에, 공의 궤적에만 집중하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야구에서는 공보다 사람에 집중하게 되는 인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야구는 크게 아홉 번의 공격과 방어를 번갈아가면서 치르고, 한 번의 공격 과정에서 공격팀에게는 세 번의 아웃을 당할 때까지 계속 공격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타자 한 명은 타석에 들어오면, 세 개의 스트라이크가 인정되기 전까지는 기다릴 수 있지요. 즉, 아주 거칠게 표현하면 적어도 투수는 타자가 칠 만한 공을 세 명에게 세 번은 던져야 하고, 각 타자는 두 번을 놓치더라도 세 번째 공을 잘 치면 1루로 무사히 나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다른 스포츠는 공격의 관점에서 찰나의 실수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은 편인 것 같습니다.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가 순간적으로 실수하여 골대 위로 공을 날려 보내면 “홈런왕”이라는 조롱을 받기 일쑤이고, 농구에서 공격수(이것은 수비수도 마찬가지입니다만)가 골밑에 3초 이상 머물면 아까운 공격권을 아예 날려버리는 것, 탁구에서 공격수의 스매시가 테이블 밖으로 날아가면 공격권을 잃는 수준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한 점을 헌납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과는 조금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야구에서는 공격에서 세 번의 기회 중 한 번이라도 잘 잡으면, 앞서의 실수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습니다. 앞의 타자들이 줄줄이 범타(凡打)로 물러나더라도, 세 번째 타자가 안타를 치고 출루하면 팀에게 또 다른 기회가 생깁니다. 술래잡기하는 조카들을 보니 술래를 뽑기 위해 하는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을 하던데, 한 번의 실수로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감내하여야 하는 것은 불완전한 존재인 우리들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목으로서의 야구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포지션의 분화가 매우 세밀한 종목입니다. 보통은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정도로 구분하지만, 투수 안에서도 선발투수와 중간계투(bullpen)를 담당하는 투수, 마무리투수 등으로 보직이 나뉘어져 있고, 같은 선발투수라 하더라도 강속구를 주 무기로 하는 투수가 있는가 하면, 공의 속도는 다소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송곳과 같은 제구력을 무기로, 혹은 지저분한 구위(movement)를 바탕으로 타자를 상대하는 여러 유형의 투수들이 존재합니다.


 


강속구 투수가 강속구를 포기하는 것을 “공부만 하던 모범생이 공부를 포기하는” 장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부를 포기한 모범생이 다른 길로 대성하는 길을 주변에서 찾을 수 있듯이, 야구에서도 강속구를 버리고도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내는 선수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LG 트윈스의 이대진 투수, 삼성 라이온즈의 배영수 투수는 원래 강속구를 바탕으로 한 투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의의 부상을 당하고 오랜 재활 끝에 감동적으로 마운드 위에 다시 섰고,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주무기인 강속구를 포기하고도 제구력과 구위만으로 승리투수의 영광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종목의 태도(?)는 수비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번 타자로 손꼽히는 KIA 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 그는 작년(2011년)에 불과 3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대호 선수. 그의 커리어 하이 시즌(career-high season)이었던 2010년에 기록한 도루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그렇다 한들 그 누구도 이용규 선수나 이대호 선수의 능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당연히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홈런타자일 필요가 없고, 모두가 도루왕일 필요가 없습니다. 160km의 광속구를 던지는 투수도, 130km대의 직구와 훌륭한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도 당당히 투수진의 일원으로 인정받습니다.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팀 승리에 기여하고, 각자의 능력에 대해 틀림이 아닌 다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야구.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차원에서 야구는, 적어도 지금 제가 살아가고 있는 2012년의 대한민국보다 몇 걸음은 족히 앞서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합니다


 


불과 십 여년 전만 하더라도 TV 프로야구 중계는 주말에만, 그것도 가장 인기있는 팀의 경기만을 공중파를 통해 겨우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해설자 선생님들의 이야기 중 하나는,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라는 표현이었습니다. “실체(?)도 불분명한 흐름으로 무슨 야구를 설명한다구요?” 뭐 이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야구의 유명한 격언인 “위기 뒤의 기회, 기회 뒤의 위기”라는 문구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병살타를 세 번 친 경기를 이기는 것은 기적과 같다.”가 있습니다.


 


야구에서 득점 기회는 그리 쉽사리 찾아 오지 않습니다. 일단 주자가 모였을 때 좋은 컨디션과 타격 능력을 가진 타자가 타석에 들어와야 하는데, 이러한 조합은 확률적으로 우연에 기대는 것이어서 공격하는 팀 마음 같지 않은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찾아온 득점의 기회, 가령 1사 만루와 같은 기회에서 병살타로 맥을 끊어버리는 경우에 공격하는 팀의 정신은 얼마나 혼미해 질까요?


 


공식적인 통계는 찾을 수 없었지만 저의 직간접적 경험을 토대로 생각해 보면, 무사 내지 1사 만루에서 하다못해 외야 플라이도 못 치는 팀이 그 경기를 잡을 가능성은 30% 미만일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 봅니다.


 


기회는 앞머리만 있고 뒷통수는 대머리여서 떠나가는 기회를 잡을 수 없다고 하던가요. 기회는 왔을 때 잡으라는 취지이겠지요. 우리 삶처럼, 야구에서도 기회는 흔하게 오지 않고, 어느 일방에게만 가지도 않습니다. 찾아 온 기회를 잡지 못하면, 반드시 위기가 오고 맙니다.


 


국회의원의 임기는 4년이고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므로, 산술적으로 최소공배수에 해당하는 20년의 주기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지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시기를 맞게 됩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바로 올해가 그 20년만에 돌아 온 2012년입니다. 20년만에 돌아온 이 기회를, 우리에게 찾아온 아까운 기회를 지금 날려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럭 갑자기 겁이 나는 것은 불민(不敏)한 저의 착각일 뿐일까요. 이 기회를 놓치고 나면 찾아올 위기를 미리 걱정하는 것은 소심한 한 야구팬의 기우(杞憂)일 뿐일까요.


 


 


끝날 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라굽쇼


 


야구의 여러 격언 중 가장 대중적인 것으로,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9회말 2아웃”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도 있었지요).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기록에 따르면, 우리나라 프로야구 역사상 9회말 2아웃 이후 최대 점수차 역전승 경기는 2002. 4. 10. 부산 사직구장에서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였습니다. 당시 롯데는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1-5로 삼성에 뒤지고 있었는데, 당시 삼성의 마무리 투수였던 김진웅 선수를 상대로 롯데 박현승 선수의 적시타와 김응국 선수의 끝내기 만루홈런이 각각 터지면서 롯데는 역사에 남는 역전승을 일구어 냈습니다.


 


9회말은 늘 변수가 많은 이닝입니다. 9회말까지 진행되었다는 것은 곧 홈팀이 지거나 비긴 채로 9회초를 마무리했다는 뜻이고, 9회말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경기를 내주거나 연장전에 돌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개 9회말 수비에 임하는 원정팀은 마무리투수 내지 필승조 계투진을 투입하게 되지요. 즉, 수비팀의 마운드는 평소보다 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불리한 상황에서, 앞의 예와 같이 극적인 역전 경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자주 경기가 뒤집어 집니다. 왜 그럴까요?


 


농구나 축구, 아이스하키, 미식축구와 같은 종목들은 시간을 정하여 두고 그 시간까지 승부를 벌이게 됩니다. 따라서 강팀과 약팀이 만나 점수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게 되면, 경기 후반은 선수도 관중도 그저 세월아 네월아 경기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물론 야구도 초반에 점수 차이가 벌어져 경기가 다소 느슨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야구에서는 경기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선수들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야구의 특성상,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가능을 정의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불가능은 가능성의 완전한 포기로 완성되는 개념입니다. 즉, 아무리 미약하더라도 가능성을 인정하고 도전하면 불가능은 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앞서 예로 든 9회말 2아웃에서 기적과 같은 역전승을 일구어 낸 사례가 당연히 일반적인 것은 아니겠고, 불가능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기적을 만들어 낸 주인공들이, 유인구를 골라내고 한 베이스라도 더 진루하기 위해 아낌없이 유니폼에 흙을 묻혀 가면서, 온 몸을 던져 공을 막고 혼신을 다해 송구하면서 불가능과 패배를 상상하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포기할 수 없는 승리에 대한 갈망이 역전의 원동력이 된 것은 아닐런지요? 이것이 비단 야구의 문제만은 아니겠지요?


 


 


야구와 닮은 것이 현실인지, 현실과 닮은 것이 야구인지


 


사족과 같이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고자 노력해 보았지만, 그래서 몇 가지를 위와 같이 정리하려 해 보았지만, 결국 제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야구가 우리 현실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야구를 보면서 때로는 저의 과거와 현실을 돌아 보기도 하고, 지금 저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自問)하여 보기도 합니다. 물론 야구가 그 대답을 직접 저에게 알려 주는 법은 없습니다. 해석(?)을 통해 알게 되는 교훈 아닌 교훈의 내용도 제가 문제를 맞닥뜨린 시기와 형편에 따라 늘 다르게 마련입니다. 지금 야구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 것일지, 글을 마무리하면서 잠시 고민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 각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 불완전한 존재로서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온 귀한 기회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것이 2012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정리하면 야구를 너무 제 마음대로 해석한 것일까요.


 


레니 크라비츠와 요기 베라의 목소리가 어지러이 뒤섞이는 여름밤입니다. 올 여름은 무더위가 기다리고 있다던데, 독자 여러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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