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소식]
로스쿨 실무수습 활동 후기
주한미군범죄 관련 기자회견
글_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기 김현기
1. 민변 실무수습 첫 활동 – 주한미군 범죄 관련 기자회견에의 참석
(1) 가볍지 않은 발걸음
일기예보에서 ‘복사냉각 어쩌고’라면서 영하10도에 이르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린다고 떠들던 지난 1월5일 아침. 나의 민변 사무처 실무수습 첫 활동은 그렇게 차가운 날씨 속에서 무려 서울고등법원 앞 야외(!)에서 열리는 ‘동두천 10대 여학생 성폭행 주한미군 규탄 및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곳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물론 서울의 매서운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나를 좀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2) 고민과 부담감
우선 이러한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이 실무수습 활동으로써 적절한지가 의문이었다. 기자회견에 대한 찬반이나 적부를 떠나서, ‘이것이 과연 로스쿨생이 수습해 보아야 할 실무인가?’라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에서 떠나지 않았다. 또한 민변 미군위의 윤석민 간사가 자꾸 나에게 발언을 한번 하라고 강요에 가까운 권유를 하여, 걷고 있는 발등에 부담을 한 짐 더한 측면도 있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평소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양키 고 홈’ 말고 딱히 생각해 본 바도 없었고, 이번 사건이나 불평등한 한미SOFA 개정에 대해서는 다른 발언자들과 중언부언할 것이 뻔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로스쿨 2년차 주제에 서울고법 부장판사님한테 ‘형량 낮추지 말고 똑바로 하시죠!’라고 내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2. 법원 앞 기자회견 장소에 합류
(1) 낯선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잡다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뭐 생각이 정리 안 되면 일단 부딪쳐 본다’는 안이한 마인드로 법원 앞에 도착해, 민변 미군위의 윤석민 간사, 사무처에서 함께 실무수습하게 된 김수영, 엄태섭과 합류하였다. 우리는 ‘주한미군범죄 해결을 위한 연석회의’ 분들 10여 명이 현수막을 앞세우고 피켓 몇 개를 든 채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발언과 구호를 이어가고 있는 사이에 끼어들어 자리했다. 도착해 정신없이 자리를 잡고 정면을 바라보니 그제야 생각보다 기자들이 꽤 많이 와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TV조선, 채널A 등 종편 딱지가 붙어있는 카메라도 몇 대 보여 날 의아하게 했다. 물론 그네들이 취재를 해가서 실제 방송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 주변에 종편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고나 할까.
(2) 기자회견의 내용을 듣고 정리해 보다
연석회의에서 오신 발언자 분들의 이야기는 역시 활동가들답게 구체적이면서도 힘이 있었다. 이번 사건 재판 과정에서의 쟁점에서부터 시작해 불평등한 한미SOFA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배워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이번 사건 재판에 있어서의 쟁점’과 ‘일반적인 주한미군 범죄와 관련한 근본적인 문제점’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살짝 정리해 본다.
① 이번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보인 피고인의 기만적인 태도
피고인은 1심 법정에서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죗값을 달게 받겠다고 진술하면서도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자, 곧바로 만취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를 이유로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하면서 피해자에게 한미SOFA에 따라 2만달러를 배상하였다. 이는 처음부터 당연히 행하였어야 할 배상을 한 것인데, 피고는 정작 중형이 선고되어 자신이 불리해지자 부랴부랴 배상을 행하며 이를 합의의 근거로 내세워 형량을 깎아달라는 것이다. 또한 선고된 형이 과하여 항소하였다는 것은,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죗값이 달면 받겠다는 것 아닌가? 이러한 진정성 없는 모순되고 기만적인 행태로 호소하는 양형부당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항소심이라고 배운 적은 없다.
② 불평등한 한미SOFA
비단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범죄와 관련하여 한미SOFA 때문에 발생하는 불평등한 문제점들이다. 주요 쟁점들만 간략히 살펴보자면, i) 우리 사법당국 혹은 최소한 중립적인 기관이 아닌, 미군 장성에 의하여 공무집행이라고 판단되면 주한미군이 재판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공무중 사건이면 우리 당국은 관행적으로 아예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ii) 일방이 재판권포기요청을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일방이란, ‘일방이라고 쓰고 미군이라고 읽는다.’라고나 할까. 물론 우리도 재판권포기요청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극히 드물게나마 요청을 하더라도 미군에 의하여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 2002년 여중생 압사사건에서 우리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미군에 재판권포기요청을 하였으나 미군은 이를 가볍게 무시하였다. 가히 일방의 재판권포기요청 조항이 아니라 ‘일방적인 재판권포기요청’이라 할 만하다. 게다가 대한민국 당국은 미군의 포기요청에는 순순히 응하거나, 또는 협정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하다. iii) 우리가 재판권을 행사하게 된다손 치더라도 형사재판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송달에 관한 세부규정이 없어 미군이 공소장 수령을 거부하면 공판이 열리는 것조차 쉽지 않다. 또한 우리와 상이한 미국 형사법 체계가 적용되어 무죄판결에 대한 검찰의 상소권이 제한됨으로써, 미군 범죄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한 번 더 진실을 밝히고 배상을 구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3. 기자회견의 마무리
(1) 어리바리했던 나의 발언
결국 그 자리를 통해, 일개 한미SOFA 따위가 우리의 헌법과 형사법 위에 군림함으로써 우리의 사법주권과 우리 국민인 피해자의 권리 등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머리와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그러던 찰나, 문득 ‘아, 그런데 나는 뭘 발언해야 하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 내 발언 차례가 되어버렸다. ‘한미SOFA는 일개 행정협정 따위인데 어떻게 우리의 헌법과 형사법을 무시하고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인지, 자괴감이 든다. 주한미군은 북의 도발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주둔하고 있는데 주한미군이 있어도 북은 잘만 도발하고 오히려 주한미군 때문에 우리 국민의 안전을 해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취지로 적절한 횡설수설과 감정적 발언을 해댄 것 같은데, 어리바리하여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내 발언을 마지막으로 다 같이 구호를 외치고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2) 1시간 남짓, 길지 않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고민하고 느끼며 배운 것들
① 인권변호사를 꿈꾸는 로스쿨생의 실무수습이란
우선 기자회견 장소로 향하면서 했던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사실 고민하던 당시에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는데, 민변 실무수습을 다 마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돌이켜 보니 이미 기자회견 전날 실무수습 오리엔테이션 때 정연순 사무총장님이 들려주셨던 ‘인권과 변호사’ 특강이 어찌 보면 그 고민을 해결해 주는 단초였다. 정연순 사무총장님의 특강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니 이러하다. 법조인이란 이미 이루어진 법과 제도, 권력을 통해 세상이 떠받쳐지고, 이를 유지시켜 나가는 것이 그 본질일 것이다. 하지만 소위 공익·인권변호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를 감시하고 비판하며 고쳐나가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을 갖고 실천해 나감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법률전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와 신념, 실천을 위해서는, 그것이 기자회견이든, 집회든, 토론회든 사회와 직접 소통하고 연대하여 세상을 정확하면서도 폭넓게 이해하고 몸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인권변호사를 꿈꾸는 로스쿨생으로서 민변이 각종 사회 현안에 관하여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는 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실무수습’의 좋은 기회라고 결론을 내렸다.
② 한미SOFA에 대한 지식과 분노를 다지다
또 한편으로는, 해묵은 한미SOFA문제에 대하여 현실감 있고 깊이 있게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번 기자회견 일정을 접하기 전까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고, 미군범죄와 한미SOFA문제에 대해서도 2002년 여중생 압사사건 이후로는 잊고 살면서 막연하게 문제의식만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 기자회견을 함께 하면서 매서운 겨울바람이 스치는 내 머리는 더욱 차갑게 벼려졌고, 두툼한 외투 안에서 낯선 카메라와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내 심장은 더욱 뜨겁게 분노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쉽다면 기자회견을 마치고 항소심 1차 공판이 열렸는데, 사무처의 다른 일정이 있어 함께 방청하지 못한 점이다.
4. 끝마치며
(1) 항소기각 판결의 선고 – 그러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민변 실무수습을 마친 직후인 1월 19일. 뉴스를 통하여 피고의 항소가 기각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환영할 만한 판결인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주한미군의 범죄 문제는 단순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불평등한 한미SOFA, 미군의 오만함과 점령군적인 태도, 나아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해외 군대주둔과 이를 통한 경제적 침탈 전략,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친미사대적인 한국 정부 등의 요인이 복합적이고 뿌리 깊게 작용하여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이다. 최소한 한미SOFA가 하루빨리 바로 고쳐져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이 땅 위에서 우리 민중과 민족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Lives In The Balance’ by Jackson Browne
글을 맺으면서 문득 Jackson Browne이란 미국 가수의 Lives In The Balance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1948년생인 Jackson Browne은 서정적이면서도 사회참여적인 노래들로 1970~8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과도 같았던 싱어송라이터이자, 치열하게 반핵을 외치며 투쟁했던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65살의 나이에 워싱턴점령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Lives In The Balance라는 노래는 Jackson Browne이 80년대 레이건 정부의 중미 침탈정책을 비판하는 노래인데, 우리의 상황과도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이러니한 것은, 주한미군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생각난 Jackson Browne라는 가수가 독일의 하이델베르그에서 서독에 주둔하던 미군의 아들로 태어나 3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Lives In The Balance의 가사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Lives In The Balance’ by Jackson Browne
I’ve been waiting for something to happen
For a week or a month or a year
With the blood in the ink of the headlines
And the sound of the crowd in my ear
You might ask what it takes to remember
When you know that you’ve seen it before
Where a government lies to a people
And a country is drifting to war
And there’s a shadow on the faces
Of the men who send the guns
To the wars that are fought in places
On the radio talk shows and the t.v.
You hear one thing again and again
How the u.s.a. stands for freedom
And we come to the aid of a friend
But who are the ones that we call our friends
These governments killing their own?
Or the people who finally can’t take any more
And they pick up a gun or a brick or a stone
There are lives in the balance
There are people under fire
There are children at the cannons
And there is blood on the wire
There’s a shadow on the faces
Of the men who fan the flames
Of the wars that are fought in places
Where we can’t even say the names
They sell us the president the same way
They sell us our clothes and our cars
They sell us every thing from youth to religion
The same time they sell us our wars
I want to know who the men in the shadows are
I want to hear somebody asking them why
They can be counted on to tell us who our enemies are
But they’re never the ones to fight or to die
And there are lives in the balance
There are people under fire
There are children at the cannons
And there is blood on the w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