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재판을 진행하던 도중 재판장이 30여분에 걸쳐 재판에 대한 소회를 말하였다. 그 중 이 영화와 관련된 부분의 요지는 이렇다. ‘법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데, 법원을 불신하는 영화가 제작되어 발표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참담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직접 피해 판사를 만나 보았는데 실제로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영화는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영화로 인하여 국민들이 법원을 불신하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재판장이 무엇 때문에 자신이 맡은 재판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소회를 밝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법정에서 재판장은 왕이니까 그저 듣는 수 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재판장이 언급한 영화는 다름아닌 ‘부러진 화살’이었다. ‘부러진 화살’은 한때 세간을 뜨겁게 달군 석궁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이미 언론을 통해 영화 제작사실을 알고 있던 터에 마침 기회가 닿아 ‘부러진 화살’을 볼 수 있었다.
위 재판장이 이 영화에 대하여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느꼈듯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나도 무겁고 답답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물론 서로 전혀 다른 차원의 답답함이었겠지만.
영화를 통해 본 석궁사건의 쟁점은 세 가지였다. 피해 판사의 내의와 조끼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정작 그 사이에 착용한 와이셔츠에서는 왜 혈흔이 발견되지 않았는지, 그렇다면 피해 판사가 입고 있었던 옷의 혈흔은 과연 피해 판사의 혈흔인지,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은 부러졌다고 하는데 정작 그 부러진 화살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영화는 석궁사건의 항소심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항소심의 변론을 담당했던 변호사는 위 세 가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피고인이 실제로 피해 판사에게 석궁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실갱이 과정에 우발적으로 발사되어 화살이 벽에 맞아 부러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피해 판사가 화살을 맞아 상해를 입었다는 검사의 공소사실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라 혈흔 감정과 피해 판사의 재증인신문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담당재판부는 증거채택을 거부하였고, 결국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무엇이 실체적 진실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겁고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은, 담당재판부가 무엇 때문에 추가 증거조사를 채택하지 않고 서둘러 재판을 종결하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심에서 어느 정도 심리를 거쳤다 하더라도 또다른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었다면 응당 재판부로서는 충분한 증거조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 두려워서 추가 증거조사를 채택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저 피해자가 판사의 신분이고 판사가 직접 석궁을 맞아 상처를 입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더 이상 증거조사가 필요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재판은 무엇 때문에 하는 것인가? 충분한 심리를 해보기도 전에 이미 결론을 내려놓았단 말인가? 영화에서 이런 의문에 대해 속시원한 답변은 얻을 수 없었다.
물론 영화 ‘부러진 화살’의 장면들이 사법부 전체의 모습은 아니리라. 하지만 재판을 조금은 안다는 필자조차 영화를 보는 내내 무겁고 답답한 심정이 사그러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불문곡직 법원을 믿으라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더구나 법원을 불신하게 만드는 영화 상영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맹목적인 제 식구 감싸기요, 국민을 깔보는 권위적 태도로 비칠 수 있다. 법원이 할 일은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피고인의 말을 성실히 들어주고 이유 있는 항변에 대하여 응당한 증거조사를 채택하는 것이다. 결과는 그 다음이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지금도 영화 속 피고인의 분노에 찬 외침이 뇌리에 맴돈다. 판사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볼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