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인권보고대회를 다녀와서
글_ 조성은 민생·경제,소수자위원회 7기 인턴
매년 세계 인권선언의 날에 열리는 한국인권보고대회가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오전에는 올해 화두가 된 사안을 중심으로 대담형식의 보고시간을 가졌고, 올해의 디딤돌-걸림돌 판례를 발표하는 순서로 오후 세션을 시작했다. 디딤돌 판례 중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의 ‘공익을 해할 목적’ 부분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을 위반한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최고의 판결로 꼽혔다. 반면 신고하지 않은 1인 시위의 경우 시위자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1인 시위자를 격려한 사람들도 모두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판결이 대표적인 걸림돌 판례로 선정되었다.
오후에는 비정규직, 반값등록금, 재개발 재건축과 의료민영화 등 복지 문제와 제주해군기지를 둘러싼 대립을 다루어 한 해 동안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 인권 문제를 검토할 수 있었다. 소수자 인권위원회와 민생경제 위원회 소속으로 일하는 나에게 제주도 강정마을을 둘러싼 해군기지 건설의 논의는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인권보고대회를 마치고 나오는 나의 머릿속은 강정마을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렸을 때 주위에는 법조인의 꿈을 키울 만한 롤모델이 없었다. 그보다 법을 몰라서 억울해 하고, 물어볼 데가 없어 답답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은 높았고, 법은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것이 반드시 내 주변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득달같이 법원으로 달려가 문제의 해결을 보기보다 서로 납득하고 이해하며 사안을 마무리짓곤 했다. 땅 끝보다 먼 제주의 작은 마을에서 평생 법원 근처에도 가본 적 없던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생업을 팽개치고 법정다툼까지 불사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사실 군사기지란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내 앞마당에 쓰레기장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식으로 보였던 것이다. 인권보고대회에서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님을 만나기 전 내가 강정마을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그러나 강 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온당한 소망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회장님을 비롯한 강정마을 주민들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이라면 결국 어느 지역은 기지를 유치해야 한다는 점,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가장 적합하다면 마을에 들어와도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계셨다. 그 과정에서 입는 피해를 ‘나라’에서 모두 보상하지 못할 것도 알고 계셨다.
다만, 마을 앞 근거리에 섬이 있어 군함이 드나들기 부적합하고, 연산호 군락 등 천연기념물이 서식하여 절대보존지역으로 선정되어 있었던 강정마을이 왜 갑자기 해군기지 입지대상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1차 선정 대상지역에서는 물망에 오르지도 않았던 강정마을이었다. ‘와서 우리와 대화를 해 달라. 우리가 이해가 되면, 그래서 50%보다 한 명이라도 많은 수의 주민이 찬성한다면 우리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회장님의 말씀은 큰 울림이 있었다.
나는 바로 이 부분에서 마음이 움직였다. 그간 언론은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 자체를 반대하는 보도를 많이 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 아니다. 종국적으로는 강정마을과 제주시민이 염원하는 바이며 국가와 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강동균 회장님을 통해 느낀 마을 주민들의 마음은 거창한 목표보다는 작은 데 있다고 느껴졌다. 사람들이 서글퍼한 것은 옛부터 이어오던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마을 모임들이 전부 깨졌다는 것, 자식과 부모의 견해가 달라 집안에서 제사도 따로 지낸다는 것, 수십 년을 가족처럼 지낸 이웃끼리도 찬반이 갈려 눈이 마주치면 오던 길도 되돌아 간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마음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묻는 말에 대답도 해주지 않는 것이었다.
강정마을의 문제는 주민의 일생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덮어놓고 멀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기지 건설이 강행된다면, 몇 갈래로 찢어진 강정마을은 각자의 기억에 갇혀 와해된 공동체로 남게 될 것이기에 더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강정마을 사태는 입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 마을에서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해군기지 사안이 논의된다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1900여 명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87명이 참여하여 만장일치 되었기에 절차적인 문제가 없다는 대답은 왜 꼭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된 제주에, 그 중에서도 강정마을이어야 하는지, 뭍에 사는 사람은 자연 경관을 보러 제주에 오는데 군항이 어떻게 경제적 타당성이 있다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인권보고대회 마지막 세션에서 조효제 교수님께서는 ‘이주 노동자에 대한 거부감은 이주노동자를 전혀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훨씬 높았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고 말씀하셨다. 이주노동자 문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갈등이 무지에서 기인하는 막연한 경계심에서 더 커진다고 생각한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님을 직접 만나본 사람이라면 부당한 이유를 내세워 고집을 피우거나 사익을 도모하고자 폭력을 동원할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결정 과정에서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지 사후적으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제적으로 덮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 당국은 지금이라도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인권보고대회를 마치면서, 민생위 소수자위 인턴으로 민변에서의 보낸 지난 3개월을 돌이켜보았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 큰 배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만, 민변에서의 생활이 나를 더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여기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냈을 일들을 목도하면서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구멍이 먹먹해지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퇴근할때 쯤이면 오늘도 마음의 추를 더 얹었다는 기분으로 지하철 계단을 내딛곤 한다. 나름대로 사회 현상에 관심이 있고 스스로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음에도 내가 살아갈 세상이 참으로 엄동설한의 숲과도 같아서 손을 싹싹 비벼가며 눈을 부릅뜨지 않으면 언제 눈발에 휩쓸려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정마을을 비롯하여 인권보고대회에서 다루어졌던 사례들이 ‘내가 이렇게 행동할 때 상대방의 마음은 어떨까’를 결정의 원칙으로 삼는 계기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런저런 의견을 듣다가는 아무 일도 되지 않으니 일단 밀어붙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은 상대방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과 같이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 대립은 속전속결식 의사결정방식이 효율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증명한다. 그 마을에 부모님이 살고계시다고 생각했다면 적극적으로 진행상황을 알리고, 쉬운 말로 공들여 여론을 수렴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