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되살리자 –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20주년에 부쳐
[특별기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되살리자
– 남북기본합의서 서명 20주년에 부쳐 –
글_이석범 변호사
노태우 정부시절, 꼭 20년전인 1991년 12월 10일부터 13일.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던 한밤중의 쉐라톤워커힐호텔에서는 남과 북의 대표들이 협상타결을 위하여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극심한 이견대립을 보여 왔던 ‘불가침의 보장조치’조항과 ‘정전체제의 남북간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에 대한 조항은 끝까지 타결될 것이 어려울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12월11일 밤 일찍 잠에 든 임동원대표는 갑작스런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깨 ‘지금 자신의 방으로 와 달라’는 북의 최우진 대표로부터의 요청을 받고 새벽2시까지 비공식 심야협상을 벌였다. 이후 몇 차례의 실무대표회담을 거쳐 마침내 1991년 12월 13일 오전 9시 서문과 4개장 25개 조항으로 구성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남의 정원식 수석대표와 북의 연형묵 대표단장이 각각 대한민국 국무총리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의 이름으로 서명함으로써 정식 채택되었다. 북의 연형묵총리가 결속발언을 통해 “우리는 이제 평화와 긴장완화와 통일의 길로 크게 한걸음 내딛게 되었다.”고 선언하자, 정원식 국무총리도 “남과 북은 공존공영하면서 평화와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되었다.”며 “이 합의가 대결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협력과 통일의 새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통일부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첫째, 통일을 한민족의 공동번영을 위한 과정으로 전제하여 남북관계개선과 평화통일을 향한 ‘기본틀’을 제시하고 있고 둘째, 7천만 온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3자의 개입없이 남북간에 공개적인 협의를 거쳐 채택․발효된 최초의 공식 문서이며 셋째,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민족내부 특수관계로 선언함으로써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존중한다고 규정(제1조)하고 있고 서명란에서는 남북한의 정식국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남북한이 상호 체제인정․존중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상대방을 국제법상 완전한 “국가”로 인정함을 의미하지는 않으나, 남북한이 각기 상대방의 「실체성」을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해설하였다.
주지하다시피 남북고위급회담은 대외적인 국제냉전질서의 해체와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 및 대내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진전에 힘입어 1988년 12월 28일 강영훈 국무총리가 남북고위급회담 개최를 북에 제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북의 연형묵 정무원총리가 1989년 1월 16일 남북고위 정치․군사회담을 수정제의하는 형식으로 수락한 이후 1989년 2월 8일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을 시작으로 8차례에 걸친 예비회담을 통해 남북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시하는 문제를 의제로 하는 남북고위급회담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남북정상들의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선언’에 의해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서해에서의 1차, 2차 연평해전 등의 무력충돌이 있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이후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사태와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포격사건은 남북 간 군사적 긴장국면이 다시 표면화하는 사건이 되었다. 현 정부가 ‘비핵․개방․3000 정책’을 적극 추진하자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강조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발하여 왔다. 마침내 북한은 2009년 1월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으로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을 무효화하고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해상경계선에 관한 조항들을 완전히 그리고 종국적으로 폐기한다는 것을 공식 선포함으로써 현재 남북기본합의서는 실질적으로 폐기될 처지에 이르렀다.
생각건대 2011년 12월 13일이면 남북기본합의서가 서명된 지 20주년이 된다. 남과 북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 소중하고도 기본적인 합의를 하고 있고, 그 명시적 내용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나타나 있다. 종전 후 첫 남북 정상간의 만남에서 합의된 2000년 6․15 공동선언은 위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사항 가운데 실천 가능한 최소한의 부분이었고, 2007년 10․4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기본합의서의 합의사항을 분야별로 실천 의제화하여 구체화한 대강이라고 할 수 있다. 채택 발효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사문화된 남북기본합의서를 되살리고자 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거두어 내고 밝은 광장으로 나가기를 희구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되돌아간 길에서 다시 화해와 번영의 길로 나가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은 남북기본합의서에 다시 생명을 불어 넣는 수밖에 없다. 그 길은 남과 북 사이에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대하여 법규범성을 명확히 부여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렇듯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와 가치를 중시할 때 비로소 남북은 공히 새로운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발걸음을 구체화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본문의 내용은 개인이 작성한 것으로 민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