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
呼父呼兄 판결을 받아들고
내부통신망 게시글 관련 행정, 형사 사건
글_김상훈 변호사(민변 광주전남지부)
1. 어느 국세청 직원의 내부통신망 게시글
가. 국세청 내부통신망은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하거나 그 내용물을 열람, 작성할 수 없도록 운영된다. 국세청 직원만이 고유 비밀번호로 접근할 수 있고, 직원만이 내용물을 열람하거나 작성할 수 있을 뿐이다. 직원이 글을 작성하게 되면, 작성자의 소속, 소관 업무 등이 자동적으로 등재되도록 함으로써 접근 범위의 통제와 관리를 담보하고 있다. 말하자면 국세청 내부 통신망은 국세청 직원에 의한, 국세청 직원을 향한 사이버 공간이다.
나. 국세청 내부통신망 중 ‘나도 한마디’란 코너가 개설되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위 코너는 직원의 조직 내부에 대한 건의, 비판, 희망 등을 게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작성자의 제안에 대하여 다른 직원이 찬반 의견, 논평 등의 댓글을 달 수 있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따라서 ‘나도 한마디’ 코너는 국세청 내부 표현 통로이자 여론 형성을 위하여 국세청 스스로 허용하고 권장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다. 어느 국세청 직원(이하 K로 약칭함)이 2009. 5. 28. 위 내부통신망에 제목을 포함하여 열수로 52열, 글자수로 1,122자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국세청 게시물관리위원회 담당자는 2009. 5. 29. 시간불상경 위 글을 삭제(비공개) 조치하였다. 삭제의 변으로 게시물관리지침 제11조 제1항에 의거 삭제되었다는 점만 적시되었을 뿐이다. K는 당연히 수차의 댓글을 통해 삭제조치의 부당성을 항의하였고 자신의 저작물의 복원을 요구하였다.
라. 문제의 글은,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의 발단이 승진 로비, 인사 청탁이 밝혀져 미국으로 도피한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무관치 않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한 후, 재임시 도덕성과 청렴성을 강조하던 청장의 이중성, 자리 보전 및 출세를 위한 기회주의적 처신을 꼬집고 조직의 자성과 거듭남을 제시하는 수준 정도로 정리된다. 그리고 당국의 삭제에 대한 댓글은 저작자로서의 당연한 항의 표시로 범주화된다. 최소한 필자의 해석과 이해로는 그렇다. 그러나 필자의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오염을 피하기 위하여, 날것 그대로의 원문을 싣는다.
제목 : 나는 지난 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측은하기 그지없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내몰기까지 국세청이 그 단초를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2009년 5월 25일(월요일) 한겨례 5면을 보면 “촛불에 덴 정권 ‘반전카드’ 세무조사 의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촛불을 꺼라’ 충성 맹세
국세청이 노 전 대통령 쪽을 향해 본격적으로 칼을 겨눈 것은 지난해 7월 30일 국세청이 태광실업 등 박연차 회장 계열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에 나선 때부터다. –중략–
‘정치논리 타는 국세청’
국세청의 세무조사 진행과정에서도 정치적 배경의 의혹은 가시지 않는다. 실제로 경남 김해에 위치한 태광실업 등에 대한 세무조사를 맡은 조직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다. 관할 기관인 부산지방국세청을 놔두고 일종의 원종 조사에 나선 것이다. –중략–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짓거리를 하여 국세청을 위기에 빠뜨리고 국세청의 신뢰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국세청 수장으로 있던 동안에 직원들에게 강연을 하고 사회공헌이다 뭐다 해서 쇼를 하게 만들었던가!. 자기 자리 보전하려고 골프를 치고, 자기 출세하려고 세무조사를 하고, 결국은 검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하게 하는 그래 놓고 조직의 신뢰도가 어쩌고 저쩌고!. 인간 쓰레기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인데 이건 재활용도 되지 않은 인간 이하의 수준이 아닌가!. 무슨 말로 표현을 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에 우리 국세청에 정말로 훈훈하게 조직을 대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를 벼랑 끝에 서게 한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우리의 수장이었던 인간이라니!.
지금이라도 국세청 수뇌부에서는 왜 태광실업을 조사하게 되었으며, 왜 관할 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청 조사4국에서 조사를 하게 되었으며, 왜 대통령에게 직보를 하고 직보를 한 후에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공직을 떠나야 하고 국민 앞에 사죄를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상처를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직은 도덕성이 우위에 서야 정말로 우위에 서는 것입니다. 조직은 국민들이 우위에 있다고 여겨야 진짜로 우위에 서는 것입니다. 아래 글들을 보면 검찰에게 압수수색을 당해 억울하다, 검찰에 파견된 직원들을 철수하자, 옳은 얘기입니다. 그러나 조직이 도덕성을 무기로 우위에 서지 않으면 이 또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게 원인을 제공한 위치에 있었던 책임 있는 사람들은 공직을 떠나라고 감히 직언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이 또한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습니다. 국세청 수뇌부에서도 고심을 하겠지만 하루빨리 신속하게 결행이 있기를 바랍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전문을 한 자 한 자 써보는 것으로 글을 마감하려 합니다.
댓글 1. 민변 및 공노조(통합)와 협조하여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가로막은 게시물관리위원회 책임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하기 전에 이 글을 살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댓글 2. 저의 다른 행동이 일파만파로 퍼져 조직의 위기 상황으로 가기 전에 원래대로 돌려 놓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댓글 3. 무엇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인지, 진정한 우리의 가치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考 노무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면서 느꼈을 것입니다.
2. 시간 되감기(Rewind and Remind) 그리고 퍼즐 맞추기(Puzzle Out)
가. 총 15명의 국세청장 중 6명이 사법처리, 1명이 불명예 퇴진했는데, 제15대 국세청장 이주성은 재임시 뇌물수수 혐의로 퇴임 후인 2008년 구속되었고, 그 후임 전군표 역시 정상곤 전 부산국세청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07. 11.경 구속되어 사임하였다.
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하 한 청장으로 약칭함)은 2007. 11. 30. 위 전군표의 후임으로 국세청장에 취임하였고, 취임 후 전임 국세청장들의 뇌물수수 사건 등으로 추락한 국세청의 신뢰도 향상을 강조하며 강연활동을 하고, 사회봉사단을 조직하여 사회봉사활동을 하게 하였다.
다. 한 청장은 2008. 7. 30.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게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지시하였는데, 태광실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졌던 박연차가 운영하던 회사로서 경남 김해에 본점을 둔 연 매출액 3천억원 정도의 재계 600위권 중소기업에 불과하였다.
라. 일부 언론은 한 청장의 2008. 7. 30.자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지시가 당시 촛불정국의 국면 전환이 필요하였던 정부,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유임을 바라는 한 청장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기도 하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약 4개월에 걸친 세무조사를 진행하였고, 국세청은 2008. 11. 25. 박연차를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마. 한 청장은 2008. 12. 5. 경주에서 한나라당 영덕․울진 강석호 의원,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등과 함께 골프모임, 대구에서 대통령의 친인척과 친지, 재대구 포항향우회장, 이상득 의원의 측근 등과 함께 저녁모임을 가졌는데, 이에 대해 조서일보, 한겨례신문 등 대부분 일간지에서 한 청장이 국세청장을 유임받기 위해 대통령의 친인척, 주변인들에게 인사청탁을 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바. 국내 언론들은 2009. 1. 초순경, 전군표 전 국세청장 재임시절인 2007. 초순경 당시 국세청 차장이었던 한 청장이 인사청탁을 위하여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학동마을이란 고가의 그림을 상납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다.
사. 결국 한 청장은 결국 위 골프모임, 저녁모임, 그림 로비 의혹 등이 언론에 대서특필된 후 2009. 1. 15. 사임의사를 표시하고, 검찰의 수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된 2009. 3. 15. 인생 2모작을 미국에서 준비하겠다는 이유로 출국하였다.
아. 검찰은 2009. 5. 6.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가정에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의혹이 일자 국세청이 검찰에 넘겨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자료 중 일부 누락된 자료를 찾기 위하여 세무조사를 담당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을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하였다.
자. 태광실업을 운영하던 박연차가 탈세 등 혐의로 2008. 12. 12. 구속되고, 박연차로부터 뇌물을 수수하였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 5. 23. 자살하였고, 노제일은 2009. 5. 29.로 정하여졌다.
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각 언론은 한 청장의 경주 골프모임, 대구 저녁 모임의 참석자들 경력과 각 모임의 성격, 그림 로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의 태광실업 세무조사의 이례성과 배경, 박연차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인 의혹을 제기하고 그 해설 등을 보도하였다.
3. 파면 처분과 명예훼손 기소 및 소송단 구성
가. 광주지방국세청장(이하 광주청장)은 K에 대한 징계와 고발 절차를 전광석화처럼 진행했다. 광주청장은 2009. 6. 15. K에 대하여 파면 처분을 내렸고, 더 나아가 2009. 6. 17. 한 청장 또는 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허위 적시 명예훼손을 이유로 광주지검에 고발까지 하였다.
나. 국세청이 내세운 파면 처분의 사유는 5가지로서 다음과 같다.
(1) 첫째 허위사실 게제 및 품위 손상. K는 언론보도 내용을 인용하는 수준을 넘어 언론이 제기한 모든 의혹이 모두 사실인 것처럼 단정하여 글을 작성하였으므로 허위사실을 게재하였고 그 결과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하였다.
(2) 둘째 선동. K는 ‘무엇이 우리의 진정한 가치인지, 진정한 우리의 가치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라는 댓글을 통해 직원들이 일정한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하는 등 직원들을 선동하였다.
(3) 셋째 명예훼손. K는 한 청장을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 이하의 수준, 국세청 직원들을 쇼에 동원된 자들로 폄훼 기술하여 그들을 모욕하거나 명예를 훼손하였다.
(4) 넷째 위협 및 협박. K는 ‘민변 및 공노조와 협조하여…’ 또는 ‘나의 다른 행동이 일파만파로 퍼져 조직이 위기상황으로 가기 전에…’라는 댓글로서 외부노조와 단체를 개입시키고 이들과 연대하여 특별한 행동을 할 것을 언급하여 위협 및 협박을 하였다.
(5) 다섯째 게시글의 언론 유출. K는 게시글을 적극적으로 회수하려고 노력하지 아니하고 널리 유포되도록 방관하거나 나아가 유포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다. 한편 광주남부경찰서의 2009. 8. 24.자 무혐의 송치 의견을 받은 검찰은 특별한 수사도 없이 시간을 보내더니, 2009. 12. 30. K를 한 청장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책임을 물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으로 기소하기에 이르렀다.
라. 민변 소속 23명 변호사들은 2009. 7.경부터 K에 대한 파면처분을 다툼과 동시 형사 변호를 위하여 소송단을 구성하여 각 23장의 위임장, 선임계를 준비하였고, 다만 각 소송의 구체적 진행은 민변 광주전남지부가 수행하기로 함에 따라 파면처분을 다투는 행정사건은 필자가, 명예훼손을 다투는 형사사건은 이상갑 변호사와 김정호 변호사가 전담하였다.
마. 소송단은 2009. 7. 7.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 파면처분에 대한 소청심사 청구를 하였고, 소청심사위원회는 2010. 1. 14. 파면을 해임으로 변경하는 결정(이 사건 처분)을 내렸고, 소송단은 2010. 1. 15.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장을 접수시켰다.
4. 복직 판결 및 무죄 판결의 확정
가. 대법원은 행정, 형사 두 사건을 모두 2011. 11. 24. 같은 날에 선고하여 내부통신망 게시글로부터 빚어진 K에 대한 법적 분쟁을 일단락지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임처분취소 판결은 광주청장의 이 사건 해임처분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명예훼손 판결은 K의 글에는 도대체 허위사실의 적시도, 비방의 목적도 인정할 수 없어서 무죄라는 것이다.
나. 행정법원은 이 사건에서 ‘사실의 적시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시간과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한 입증이 가능한 것을 말하고 판단할 진술이 사실인가 또는 의견인가를 구별함에 있어서는 언어의 통상적 의미와 용법, 입증가능성, 문제된 말이 사용된 맥락, 그 표현이 행하여진 사회적 상황 등 전체적 정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일반론을 설시한 후, K의 게시글에서 ‘의견의 표현’ 부분과 ‘사실의 적시’ 부분을 구분하여 후자만을 추려낸 후 여기에 광주청장이 주장하는 처분사유를 인정할 수 있는가를 검토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의견 2분법은 명예훼손죄의 긍부를 다뤘던 형사 판결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였다.
다. 해임처분 취소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1심, 2심 공히 광주청장의 처분 사유 어느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상고심 역시 이 점을 확인하였다. 판단의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앞서 본 바와 같은 각종 여론 매체의 보도 등에 비춰 볼 때 K의 게시글은 허위 사실 게재, 이를 전제로 한 품위 손상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고, 국세청 수뇌부에 대한 반성 및 직원들에 대한 도덕적 각성을 촉구하는 행위에 해당할지언정 선동이라 볼 수 없으며, 쓰레기 또는 쇼라는 단어가 감정적이고 격한 표현인 점은 인정되지만 게시의 중한 동기 내지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서 한 청장 또는 국세청 직원들의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볼 수 없고, 게시글의 삭제에 대한 항의는 정당한 권리행사이거나 해악의 고지라 볼 수 없어 위협․협박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이상 징계사유를 논할 수 없는 게시글을 유포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 이와 달리 명예훼손에 관한 형사 사건은 1심에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관하여 유죄 판결(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이유 무죄)이 선고되었다. 형사 1심은 ‘직원들에게 강연을 하고 사회공헌이다 뭐다 해서 쇼를 하게 말들었던가!. 자기 자리를 보전하려고 골프를 치고 자기 출세하려고 세무조사를 하고…’ 부분이 비록 허위 사실이거나 허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한 청장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적시한 점만은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형사 항소심은 ‘피고인으로서는 한 청장이 국세청장에 취임하면서 국세청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강연활동 및 국세청 직원들에게 독려했던 사회공헌활동의 진정성과 언론에 보도된 골프․저녁모임, 세무조사 등에서 드러난 한 청장의 처신에 대한 의심을 갖기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구체적인 소명자료를 제출한 반면, 검찰은 피고인이 제시한 소명자료의 신빙성을 탄핵할 만한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피고인의 허위에 관한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다. 비방의 목적에 관하여는 ‘관련 증거를 종합하였을 때 피고인에게 비방의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피고인이 올린 글의 주요한 동기 내지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5. 판결의 의미와 판결이 남긴 것
가. 전체적인 총평을 하자면 국세청의 무모한 징계권 행사, 검찰의 무리한 기소권 행사는, 이번 법원 판결에 의하여 통제되었다. 이번 내부통신망 게시글 사건은 광우병 보도와 관련된 MBC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검찰 기소가 무죄 판결된 소위 ‘PD수첩 사건’, 2008년 리먼 사태 시기에 정부의 외환정책을 비판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한 검찰 기소가 무죄 판결된 소위 ‘미네르바 사건’의 속편이자 업그레이드판이라고 생각된다. PD수첩 사건과 미네르바 시건이 일반인을 향한 방송, 불특정 다수인이 접근할 수 있는 글을 문제삼은 것이라면, 이번 사건은 내부비판자의 소통 글을 문제삼아 징계권과 기소권으로 관여하려 들고 그 결과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악스럽고 노골적이다.
나. 애초 국세청의 징계권은 무모하였다. 그 간 행정기관 내부에 확립된 징계양정 준칙에 비춰 볼 때 이 사건 징계는 징계사유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웠다. 그 뿐 아니라 백보 양보해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가정해보더라도 한 청장의 처신, K 게시글의 진지성과 충정 등을 종합할 때, 비례의 원칙상 선택된 파면 처분의 적정성이 도저히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 뿐 아니라 국세청의 징계권은 다분히 자의적이고 이중적이었다. 국세청은 2009. 6. 18. 한 달 동안 10여 차례 성매매를 한 혐의로 입건된 국세청 직원에 대해서는 단순 전보 조치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국세청이 K의 게시글에 대해 요구한 품위와 성매수자 직원에 요구한 품위의 질과 양은 현격한 차이가 있어 이중적이고 자의적이며 왜곡되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다. 검찰의 기소권 행사 역시 무리수였다. 국세청의 고발 사건을 담당한 광주남부경찰서는 무혐의 송치하였음에도 검찰은 이를 뒤집어 기소에 나아간 것이다. 국세청 직원에 대한 명예훼손은 피해자 특정에 문제가 있음이 자명하고, 당시 한 청장은 渡美하여 당분간 귀국의사가 없었고 정작 K에 대한 처벌의사를 표시한 바도 없는데, 검찰은 한 전 청장을 (명예훼손의) 피해자로서 혹은 (뇌물, 로비 관련) 피의자로서 본격적 수사도 진행하지 않은 채 K에 대한 기소에 나간 것은 심히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 위와 같은 필자의 우려는 조국 교수의 2009. 6. 2.자 한겨례 컬럼에서 이미 경고된 바 있다. 검찰의 이번 기소가 조국 교수의 표현을 빌자면 ‘절제된 劍舞’였는지 ‘권력의 유혹에 취해 추한 모습으로 마구 사람을 잡는 망나니 춤’이었는지는 이번 판결들이 답을 내 놓았다고 본다.
검사(檢事)는 종종 스스로를 검사(劍士)로 비유한다. 이들은 수사권과 공소권이라는 쌍검을 휘두르며 범죄와의 투쟁을 벌인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부패범죄와 기업범죄를 전담하는 중수부나 특수수 소속 검사들의 헌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부심이 권력의 뜻과 이익의 범위 안에서 우쭐대는 것이고, 그 헌신이 권력이 처 놓은 테두리 안에서 맴도는 것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또한 그 칼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칼이거나 권력의 의향에 따라 휘두르는 칼이라면 검사의 손에 있을 필요가 없다.
이제 검찰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이 권력의 요구에서 독립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범죄는 죽이고 사람은 살리는 절제된 검무(劍舞)를 추고 있는지, 아니면 권력의 유혹에 취해 추한 모습으로 마구 사람을 잡는 망나니 춤을 추고 있는지. 정권의 신뢰를 얻는 데 급급하여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검찰에 미래는 없다.
라. 이번 판결로서 K는 물론 복직될 것이고, 무죄가 공시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까. K가 이 글을 게시할 때, 그는 녹을 받는 공복이었고,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이었으며, 고3 수험생을 둔 아버지였다. 파면 시점부터 대법원 판결 선고시까지 무려 2년 5개월의 기간 동안 K는 공복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역동적이고 적극적인 의견 표현을 주저하고 자기검열을 하면서, 과연 자식에게 떳떳한 父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하며 번민하여 왔다. 과연 이번 판결이 위와 같은 근거 없는 징계권이 남긴 상채기와 이유 없는 기소권이 남긴 트라우마를 말끔히 일소시켜 原狀回復시킬 수 있겠는지 필자는 자신할 수 없다.
마. 국세청의 징계권과 검찰의 기소권은 위와 같은 K의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간단치 않다. K에 대한 징계와 고발이 전개되자, 국세청 내부통신망의 글쓰기는 현저히 줄고 이와 같은 현상은 비단 국세청 뿐 아니라 다른 기관 내부통신망도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권력의 의도가 K를 희생양 삼아 비판적 표현자들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그들의 징계권과 기소권은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겠다. 누구라도 의견 표현 때문에 징계권과 기소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 표현을 주저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활발한 소통을 단념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비록 징계권과 기소권의 행사가 법원 판결에 의해 좌절되기는 하였지만, 위와 같은 자기검열 효과,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는 이미 성공한 것이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은 위와 같은 사회적 패배의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바. 이번 판결을 받아 들고 홍길동전의 ‘너에게 呼父呼兄을 許하노라’란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이번 판결을 좀 냉소적으로 말하면, 법원이 (국세청과 검찰과 달리) K에게 게시글을 통한 비판적 표현을 허락한 것이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으로 따져보면 아버지를 아버지, 형을 형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무슨 許諾이 필요할 것인가? 또 국세청, 검찰, 법원 중 어디는 허락되고 어디는 불허될 것인가를 과연 때마다 궁리하면서 표현해야 할 것인가? 그 어떤 유보나 자기검열 없이 아버지를 아버지, 형을 형이라고 표현해야 가장 소망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이번 판결을 받아 들고 일단 안도하면서도, 그렇다고 마냥 호들갑스럽게 들뜰 수만은 없는 이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