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고시랑] 天道是非, 사마천의 후예들

2011-11-14 236

[고시랑고시랑]


天道是非, 사마천의 후예들

 


글_김영준 변호사


동양의 대표적인 역사서인 史記의 저자 사마천이 태사령으로 있던 중, 장군 이릉(李陵)이 5천의 군사로 흉노와 대적하다 포로가 되었던 것을 두고 한나라 무제와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이릉을 비난하는 가운데 혼자 이릉을 비호하다 전제군주 한 무제의 비위를 건드려 억울하게 궁형(宮刑, 거세형)을 당하였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의 이른바 25사(史)가운데 첫 번째를 장식하는 기전체의 사서로 천자와 제후의 사적을 기록한 본기와 세가, 그 이외의 인물에 대한 행적을 담은 글인 열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마천은 열전 첫 번째인 백이열전에서 정당한 일을 정당하게 주장하다 치욕스런 형을 받은 자신의 처지와 관련하여 심경을 토로하고 있는 듯한 글을 남기고 있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惑曰, ‘天道無親 賞與善人’ (혹왈 ‘천도무친 상여선인)


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非耶 積仁潔行 如此而餓死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顔淵爲好學 / 然回也屢空 糟糠不厭 而卒蚤夭/ 天地報施善人 基何如哉


盜跖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 聚黨數千人 橫行天下 竟以壽終 / 是尊何德哉


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 / 若至近世 操行不軌 專犯忌諱/ 而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惑擇地而踏地 時然後出言 行不由徑 /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


余甚或焉 儻所謂天道 是耶非耶 (여심혹인 당소위천도 시야비야)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을 든다.’ 그렇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리고 공자는 칠십 제자 중에 오직 안회(顔回)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推賞)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끔 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夭折)하였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하여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가장 현저한 예라 하겠지만, 근세에 이르러서도 소행이 도를 벗어나 오로지 악행만을 저지르는데 종신토록 일락(逸樂)하고 부귀가 자손대대로 끊이지 않는다. 이와 달리 정당한 땅을 골라서 딛고 정당한 발언을 해야 할 때만 말을 하며 항상 큰길을 걸으며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이유가 없으면 발분(發憤)하지 않고, 시종 근직(謹直)하게 행동하면서도 오히려 재화를 당하는 예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사마천, 사기, 백이열전>에서


 


무도한 현정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소신을 가지고 행동하다가 해직, 기소되었고, 많은 선량한 사람들의 삶이 파탄나고 생업에서 쫓겨났으며, 많은 수의 사람들이 불의의 횡행에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꼈다.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이 언명은 어느 시대에나 유효한 것이겠지만, 역사의 역진을 경험한 최근 몇 년간의 한국에서처럼 위 말이 실감나는 경우가 있을까.


언듯 보았을 때 체념과 절규로 읽히는 이 글은 그러나, 이후 사마천의 생과 대비하여 읽어보면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마천은 궁형의 굴욕에도 불구하고 3년 뒤에 사면을 받고 감옥에서 나와 역사편찬일을 계속 하였으며 마침내는 멀리 신화 시대인 황제로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도합 1백 30편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의 <史記>를 완성하고 몇 년뒤에 세상을 떠났는데, <史記>는 적확한 사실의 기술과 史官 사마천의 엄정한 평가를 담고 있어서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그런 것이려니 하고 체념하고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다. 공편 무사한 하늘의 도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인 우리가 혹시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 잘못된 역사를 우리의 손으로 심판할 수는 없을까. 그리하여 끝내는 선인이 승리하고 악인이 패배하는 하늘의 도를 우리가 대신해서 구현할 수는 없을까. 그렇다. 내가 한번 그 일을 해보리라.” 사마천은 아마도 그런 각오를 가지고 궁형을 당한 수치를 딛고 일어서 자신의 혼이 담긴 <사기>를 집필하여 天道를 구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무도한 시대에 대항하여 천도를 구현하려고 했던 그리고 지금도 구현하고 있는 사마천의 후예들을 생각해본다. 지난 11월 10일은 용산참사와 함께 시대의 상처로 남아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한진크레인 농성 309일만에 ‘정리해고자 1년 내 재고용’ 등 한진중공업노사합의안의 타결로 땅을 밟은 날이었다.


 


마침 사마천의 도저한 의문에 대하여 답을 하고 있는 듯한 노자의 글들이 있어 옮겨본다.


 


‘하늘의 도는/ 겨루지 않아도 이기는 것이고/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응하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고/ 느슨하면서도 잘 이루는 것// 하늘의 그물은/ 너무 광대하여 성기지만/ 하나도 놓치는 것이 없다’ (‘그물’중. 이른바 天羅地網의 기원이 된 글이다.)


 


‘도는/ 언제나 무위지만/ 하지 못할 것이 없다// 제왕 제후가 이를 지키면/ 만사 저절로 달라지겠지만// 저절로 달라진다 해도/ 일 꾀하려는 욕심 생기면/ 통나무로 눌러야 한다// 마름질하지 않는/ 이름 없고 거친 통나무!// 욕심을 눌러 없앨 때/ 온 세상의 평화와 고요/ 다시 찾아들 것이다'(‘통나무 2’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