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랑 고시랑] 하필왈리(何必曰利)! – 황희석 변호사

2011-10-17 233


何必曰利(하필왈리)!


글 : 황희석 변호사


깊이 공부하지는 않아 확언하긴 어려우나 맹자는 이미 천자와 제후, 제후와 신하 사이의 위계질서가 뿌리부터 흐트러진 전국시대에 대의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입지를 넓힌 당시로서는 명망 있는 정치학 교수, 속되게는 요즘말로 약장사(?)였다.
맹자 속 글구 중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의 하나로는 君子三樂(군자삼락) 편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맹자는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으로 父母俱存兄弟無故(부모구존형제무고), 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 得天下英才而敎育之(득천하영재이교육지)를 들고 있는데, 곧 양친이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우러러 하늘에 부끄럼이 없고 굽혀 사람들에게 부끄럼이 없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이 군자삼락장의 핵심은 이 같은 삼락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삼락에 대비하고 있는 바, 즉 맹자가 군자의 삼락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에 있다. 군자삼락장에서 맹자는 그 글머리와 꼬리에서 반복하여 이와 같이 말한다.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군자유삼락이왕천하불여존언). 곧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나 천하의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맹자는 과연 실제로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했을까? 젊은 시절 이 군자삼락을 접하고서 깊숙이 깔려있던 의문은 갈수록 더 커졌는데, 맹자의 실제 삶을 곰곰히 살펴보면 맹자는 왕 노릇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천하의 제후들 위에서 정치사상의 왕 노릇을 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맹자만큼이나 전국시대 여러 제후들을 만나며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고 정치적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을 찾아 돌아다닌 사람도, 이곳저곳 제후국을 방문하면서도 별 시련을 겪지 않으면서 선생님 대접을 톡톡히 받은 사람도 드물기 때문이다. 맹자는 바야흐로 어느 한 제후국의 왕이 되지 않고서도 왕에 버금가는, 아니 모든 제후국의 위에 군림하는 왕 아닌 왕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바로 맹자식 대의명분이다. 천하의 왕 노릇하는 것도 진정한 군자의 즐거움이 아니라는 이 말로 맹자는 자신이 왕보다 우위에 서 있음을 선언하고 이를 왕들로부터 확인받으려 했으며 실제 그런 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맹자의 이러한 대의명분 사상의 백미는 맹자의 양혜왕편 중 “何必曰利(하필왈리)” 장에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맹자가 양나라의 혜왕을 찾아가자 혜왕은 王曰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왕왈수불원천리이래 역장유이리오국호)라 한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우리나라에 이로움이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맹자대왈 왕하필왈리 역유인의이이의), 곧 맹자가 대답하기를 “왕은 하필 이로움(利)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곧 나라에 이로움을 따질 것이 아니라 어짊과 그렇지 않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정치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왕을 비꼬았던 셈이다.


맹자의 이러한 대의명분 사상에는 일종의 허위의식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를 보살필 왕으로서야 당연히 나라에 이로움이 무엇인지 고심하여야 함은 당연한데, 그 이로움이 아니라 오로지 인의를 내세우라고만 하는 것은 虛(허)함을 면키 어렵다. 무릇 인심이 곳간에서 나온다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맹자의 이 일침이 비록 자신의 설법으로 왕 아닌 왕 노릇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하더라도 한 나라에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없고 그저 이익만을 쫓는 무리만 횡행한다면 아무리 곳간이 넘치더라도 나라는 또다른 점에서 虛(허)함을 면할 수 없다는 점은 새길 만하지 않은가.


요 며칠 사이 맹자의 何必曰利(하필왈리) 장이 떠오른 것은 우리 사회가 오로지 각자 이익만을 도모하는 어지러운 세상이 되었고, 지금 정부는 공공연히, 아니 아주 뻔뻔하게 각자 이익되는 일에 매진할 것만을 떠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에 이익만을 내세울 뿐 어디에도 옳고 그름,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온 데 간 데 없기 때문이다. 그 뿐이랴, 이들 위정자들이 내세우는 이로움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나라와 백성의 살림살이에 이로움이 아니라 제 배를 채우는 이로움, 제 일족의 곳간을 채우는 이로움, 이미 많은 부와 힘을 움켜쥔 자들의 더 큰 탐욕을 채우는 이로움이기 때문이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화제가 된 것은 그만큼 옳고 그름은 없어지고 오직 이불리(利不利)만이 횡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갈증을 반영하지 않은가?


何必曰利(하필왈리)!


이로움만 추구하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우리 정치와 사회가 옳고 그름을 논하는 쪽으로 균형을 잡아야 함을 생각하매 언뜻 떠올라 몇 자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