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
쇠파이프, 거짓말 그리고 녹음테이프
글_이광철 변호사 (민변 사무처장)
1989년 제42회 칸느 영화제에서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라는 작품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섹스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고, 거짓말은 위선을 상징합니다. 비디오 테이프는 그 위선을 폭로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쇠파이프’는 2008년 당시 촛불집회를 폭력집회로 매도하려는 중앙일보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거짓말’은 중앙일보의 그런 욕망을 감추는 위선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중앙일보의 위선은 법정변론이 녹음된 테이프에 의하여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만시지탄, 사필귀정입니다.
1. 사안의 경위
사건은 2008. 6. 30.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 오후 3시 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은 2008고단3216 사건의 변론을 위하여 법정에 출석하였습니다. 그 때 제가 맡은 사건은 당시 촛불집회로는 처음 구속된 윤모 씨의 공용물건 손상 등에 관한 형사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윤모 씨는 노숙인이었습니다. 노숙인의 처지에서 당시 촛불집회는 매우 신나는 이벤트였을 것입니다. 우선 밤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윤모 씨는 제게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했습니다. 가끔 돈을 주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촛불집회에 참석했던 윤모 씨가 2008. 6. 7.경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방석판을 손괴하는 등의 행위에 가담하여 그만 구속되었고, 2008. 6. 30. 이 날은 그 형사재판의 첫 기일이 열리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노숙인으로서 윤모 씨는 구속상태를 특별히 힘들어 했습니다. 어서 빨리 빼달라고 접견을 갈 때마다 제게 말했습니다. 당사자도 자백을 하고 있고, 사건도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어 서둘러 재판을 마치고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였습니다. 노숙인 신분으로 촛불집회의 단순참가자에 불과한 윤모 씨에 대한 증거의 양은 놀랍게도 500쪽이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양도 양이려니와 그 내용도 문제였습니다. 검찰측이 제출한 증거가운데 약 400여쪽에 달하는 것들은 윤모 씨에 대한 공소사실과의 관련성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윤모 씨는 단지 전경버스 위에 올라가 방석판을 손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증거로 제출된 것들은 쇠파이프를 든 시위대의 사진들(윤모 씨는 쇠파이프를 든바 없습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래 부상을 입은 전·의경들 전체의 명단, 그리고 그 치료비 지급내역서와 그 전·의경들의 진술서(윤모 씨는 전의경들에게 상해를 가한바 없습니다), 촛불집회 이래로 파손당한 전경버스 현황과 그 파손을 돈을 환산한 감정내역(윤모 씨는 전경버스를 파손한 것이 아니라 그 지붕위의 방석판을 손괴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특히 쇠파이프의 경우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쇠파이프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윤모 씨가 체포되고 난 이후 2시간 22분이 경과한 다음이었음이 검찰이 낸 증거로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도대체 피고인 윤모 씨가 체포된 이후의 폭력시위가 윤모 씨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윤모 씨가 광우병 대책회의 같은 촛불집회관련 단체의 간부도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윤모 씨의 변호인으로서 제가 증거에 관하여 가진 근본적인 의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증거의견으로 윤모 씨의 공소사실과 관련성이 없는 증거들에 대하여는 증거능력을 부인한다고 변론하였습니다. 그러자 검사는 그런 증거가 윤모 씨와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양형으로 참작할 증거여서 제출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참 어이가 없고 답답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변론하였습니다(당시 변론내용 녹취록입니다).
“이번과 같은 촛불집회의 경우에는, 촛불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시는 분들도 인정하는 것이, 특별한 배후도 없고 그리고 자발적인 시민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모든 집회 참가자들, 특히 6월 10일 같은 경우에는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고, 서울에만 5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모였다고 하였는데, 50만에 가까운 인파가 다 똑같은 단일한 의사로, 단일한 행위의 의사를 가지고 했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아니잖습니까? 대다수는 평화적인 집회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했지만, 일부는 정부정책에 대해서 더 이상 평화적인 집회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이고, 다만, 그 당시에 우발적인 상황에서 피고인이 쇠파이프를 직접 든 것도 아니고, 다만 그 당시에 우발적인 상황 하에서 피고인이 전경버스에 올라갔던 상황인데, 그것까지 쇠파이프를 든 현장 사진 같은 것 까지 이 법정에서, 피고인의 법적인 책임을 묻는 이 법정에서 그것까지 논의할 필요가 있느냐 말입니다. 저는 없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중앙일보에 이 재판 관련 기사가 났는데, <시위 구속자 무료변론 민변 변호사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는 제목하에 제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고 변론했다는 것입니다.
링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208867
참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마치 제가 법정에서 폭력시위를 옹호한 것처럼 독자들에게 전달될 여지가 농후합니다. 실제로 세계일보는 2008년 7월 2일자 사설에서 저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다”고 한 이 변호사의 변론은 법률가로서 부적절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민변 변호사의 양심과 자질이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이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순수한 의도의 촛불집회를 정부가 폭력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윤씨의 폭력행위에는 위법성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고 적었습니다. 같은 언론사도 이렇게 받아들였는데, 일반 독자야 어떨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앙일보와 세계일보의 허위보도, 왜곡보도에 대하여 민변은 7월 2일 민변 사무실에서 반박기자회견을 열어 두 언론사의 왜곡, 허위보도의 점을 반박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중앙일보는 그 다음날인 7월 3일과 7월 4일 연이어 후속보도를 내 보내어 이러한 민변의 기자회견내용이 이광철의 거짓말에 속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폭력변호사에서 거짓말쟁이 변호사라는 딱지를 하나 더 얻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는 “법원의 재판기록을 통해서도 (이광철의 문제의 쇠파이프 발언이) 사실로 확인됐다. 법원을 통해 재판 당일 녹음 내용을 확인한 결과 이 변호사는 ‘쇠파이프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까지 썼는데,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법원의 재판기록을 기자에게 보여줄리 만무하고, 녹음테이프를 들려준 사실도 없음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7월3일자기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
total_id=3211631
7월4일자기사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 total_id=3213057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간 직후 중앙일보 인터넷판이 실리는 조인스닷컴의 기사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리플들이 게재되었습니다.
“저 놈부터 변호사 자격 박탈하고 반정부 폭동교사죄로 구속하라!”
“니가 니말에 확신이 있다면 김정일 앞에 가서 한번 말해보라. 꼴갑떠네”,
“무섭다. 어찌 이런 물건이 변호사가 되었나?”,
“이런 한심한 변호사, 이런 변호사에 그런 의뢰인이군요. 하나는 자격정지하고 다른 하나는 차가운 콩밥을 먹여야 하겠군요.”,
“정말 개념없는 변호사도 있네.”
“이광철 이 인간 변호사 맞어… 어떻게 이런 인간이 법조인이 되었나? 이런 인간들은 경찰곤봉으로 뒈지게 맞고…”
“저 섹기 자식넘과 마눌에게 야밤에 폭행해도 되겠구나”
2. 민사재판의 진행과 결과
이에 저와 민변이 원고가 되어 중앙일보와 세계일보 등을 피고로 하여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를 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08가합81270). 사건의 쟁점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법정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고 변론하였느냐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법정 변론상황이 녹음된 녹음테이프를 들어보면 되는 그 변론 여부는 쉽게 확인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재판은 쉽지 않았습니다. 윤모 씨 사건의 재판부가 녹취록의 공개에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윤모 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물론이고 상고심에 갔을 때는 대법원도 녹취록의 공개가 윤모 씨 사건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였습니다. 2008년에 시작된 재판이 3년이 넘어서야 선고를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 사이 재판부도 두 차례나 바뀌었습니다. 재판부가 변경되어 재판절차를 갱신하기 위하여 열린 기일에서 재판장은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지난 8. 24. 녹취록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의 당시 실제 변론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가 아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즉 중앙일보 기자는 저의 다음 변론 내용, 즉 “일부는 정부정책에 대해서 더 이상 평화적인 집회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이고,” 부분을 일방적으로 곡해해서 제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고 변론했다고 기사를 작성한 것입니다. 제가 한 말을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문장의 주어는 명백히 (집회에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일부”임이 나타나고 있고,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문장의 주어를 저로 해석할 여지는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제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다 보면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라고 변론했다고 기사를 작성하고 그 제목을 <시위 구속자 무료변론 민변 변호사 “시위할 때 쇠파이프 들 수도 있어”>라고 달았는데, 검증을 통해 이것이 허위사실의 적시임이 판명난 것입니다.
이러한 검증내용에 따라 재판부는 9. 9. 판결을 선고하여 원고들(저와 민변)의 청구 중 정정보도청구를 인용하고 위자료 청구도 일부를 받아들이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3. 이번 판결의 의미
몇 가지로 나누어 이번 판결의 의미를 정리해보면, 첫째로 진실의 힘, 사실의 힘입니다. 중앙일보는 처음부터 저의 변론을 왜곡하였고, 이후에는 저를 거짓말쟁이로 매도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변론이 녹음된 테이프에서 흘러 나오는 저의 변론 내용은 이러한 중앙일보의 비열한 공세를 한 순간에 일축시켰습니다. 그 녹음테이프를 법정에서 듣는 동안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 진실의 힘, 사실의 힘을 확인하는 어떤 희열 을 느꼈습니다.
둘째, 2008년 당시 중앙일보 등 이른바 보수언론이 촛불집회에 폭력 등의 딱지를 붙이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이 이번 판결을 통하여 일부 확인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법정 변론 내용은 폭력시위를 옹호하는 취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폭력시위 장면이 들어 있는 사진 등의 증거가 윤모씨에게 적용될 증거냐 하는 것이 쟁점이었고, 변론도 이에 따라 이루어졌을 뿐입니다. 그런데 중앙일보의 기자는 쇠파이프라는 단어 하나에 “꽂혀” 이를 데스크에 보고했고, 데스크는 당시 촛불시위를 매도하기 위하여 자극적인 제목과 부실한 기사를 출고한 것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심한 언론의 한심한 작태입니다.
셋째, 이런 언론의 작태를 보면 자연스럽게 언론의 문제점,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언론은 자사의 정치적인 이념에 따라, 그리고 속보경쟁에 파묻혀 사실에 대한 정확한 검증없이 막 써댑니다. 물론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언론이 사회적 관심사에 대하여 보도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나 알 권리의 대척점에는 개인의 명예,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재하고, 이 또한 헌법적 가치를 지니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알 권리나 언론의 자유도 이들 개인의 명예, 무죄추정의 원칙과 조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언론, 특히 조중동이라 불리는 일부 언론의 경우 대개의 형사사건의 경우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밝혀져”, “드러났다” 등등의 표현을 동원하여 마치 그 혐의가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단정적인 표현을 남용합니다. 이 기사를 접하는 국민들은 그 혐의가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법원의 재판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고작 국민들의 선입견을 추인하는 절차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 사건의 경우 그런 형사사건은 아니었지만, 중앙일보가 저를 쇠파이프 변호사, 거짓말쟁이 변호사로 매도하였고, 인터넷에 앞서 본 것처럼 댓글이 떠돌았습니다. 언론으로 인한 피해는 당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허위·왜곡 보도와 그에 이어지는 악성 댓글에 대하여 무시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실제로 당해 보면 무인도로 이사가지 않는 한 무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한번 기사화되면 인터넷의 특성상 그 기사는 시간적·장소적으로 무한대로 유통됩니다. 지금도 “쇠파이프, 이광철” 검색어를 넣으면 위 중앙일보 기사들이 검색됩니다. 언론은 개혁되어야 합니다. 자율적인 개혁이 가장 좋을 것이고, 자율적인 개혁을 뒷받침하고 그 유인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정책들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