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행복!!
–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웃으며! 함께! 끝까지!
인터뷰 이재정 변호사
글 출판홍보팀 7기 류나라 인턴, 이재정 변호사
사진 어중선 간사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사람이 있다. 트위터 열풍을 타고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하는 그녀를 소셜테이너라고 부르고 있다. 고통 받는 이들의 가슴에 자신의 가슴을 포개는 그녀. 함께 행복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그런 면에서 보자 치면 소셜테이너다. 동부 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시종일관 웃으면서도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이하 글은, 김여진의 호흡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유쾌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를 통해 진짜 김여진을 느낄 수 있기를.
민변: (너무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김여진 하면 트위터가 떠오른다.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셨는지.김여진(이하, ‘김’): 사실 JTS라는 구호단체에서 활동을 한 지 꽤 오래 됐어요. 거기서 사회공헌팀 팀장을 맡아서 적극적으로 홍보활동도 하고 기획도 하고 그렇게 행사준비도 하던 터였는데 그 때 페이스북, 트위터가 막 생기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다들 단체 홍보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저도 못 하겠더라구요. 특히나 트위터같은 경우는 ‘트친소’라고 하죠, 누가 저를 소개를 안 시켜주니까 처음에 딱 가입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몇 달 동안 아무도 팔로우를 안 하는 거예요. 저 인줄 모르니까…
민변: 천하의 김여진씨를 아무도 몰라주다니. (웃음). 이렇게 영향력 있는 트위터로 자리 잡게 되실꺼라고 예측하였나.김: 아니요. 전혀. 4대강 반대 이슈로 꽤 오랜 기간 행사를 하던 무렵, 제 트위터 글을 접하신 몇몇 분들이 팔로잉을 시작하셨지요 그 분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본격적인 네트워킹의 즐거움을 알아나가게 되었는데, 그래봐야 몇 백명이었어요. 이후 아주 조금씩 조금씩 알려 진 거예요. 결정적인 건 사실 홍대 사건이었지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 때 당시 팔로어가 6천명됐나? 보통 사람들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연예인치고는 어디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편이죠. 사실 그 때 그래서 회한이 드는 거예요. 홍대 갔다 와서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은데, ‘내가 조금만 더 인기가 있고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그랬는데 그게 생각보다 많이 퍼졌죠. RT가 많이 되고. 그때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홍대를 직접 갔던 게 제가 그전에 했던 활동에 비하면 그렇게 특별한 모습은 아니었는데. 궁금한 일이 있으면 못참아요. 그냥 직접 가서 봐야 되요. 근데 홍대이슈는 트위터 상에 알려지면서 시너지효과를 낸거죠.
민변: 홍대 청소노동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한다. 당시에 신문, 인터넷을 통해 간간히 전해져오고 있었지만 그다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여진이라는 사람이 그 가운데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 냈고 수많은 이들의 지지를 모아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홍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김: 제 스스로 많이 놀랐어요. 하루하루 깜짝깜짝 놀랄 일이 많이 생겼어요. 사람들이 호응에서 많이 놀랐고. ‘아, 나랑 비슷한 사람이 많구나’ 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대학 때 운동했거나 안 했거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는 있어요. 하지만 깊이 파고들어서 잘 알지는 못해요. 그런데 마주하면 일단 가슴은 아프잖아요. 새삼스럽게 집회를 나가기는 머쓱하고. 그런 이들의 고민을 알아요. 사실 저도 집회라는 형식을 썩 좋아하진 않아요. 이유는 단순해요. 새로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너무 시끄럽고 어떤 때는 너무 춥고 어떤 때는 너무 덥고. 바닥에 앉아 있기 너무 힘들고(웃음) 게다가 노래도 모르고 구호도 못 따라 하겠고 그러니까 가면 소외감을 느끼는 거죠.
그런 저처럼 지지를 하고 어떻게 하고 싶지만 그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을 잘 모르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청소노동자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 홍대에 갔다 와서 ‘가보니까 너무 춥더라, 전기장판 필요하다. 밥이나 반찬이 부족하다. 밥, 반찬을 보내달라’고 트위터를 두드렸더니, 사람들이 쉽게 호응해 주시더라구요. 그거는 하실 수 있는 거예요. 제 가 한 행동이 사람들이 웬만큼 할 수 있는 수준이었던 거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떻게 되나 보게 되는 거죠.
민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하였지만 누구나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하게끔 동력을 이끌어 내는 것도 김여진만의 유혹(?)하는 재주가 있지 않았을까. 홍대 청소노동자 문제를 계기로 트위터를 통해서 만들어진 날라리 외부세력얘기를 듣고 싶다. 대체 뭐하는 단체인가.(웃음)
김: 네? 단체라고 할 것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홍대를 갔다 왔을 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모금을 해보자 뭘 해보자 얘기가 많았어요. 그래서 속칭 ‘번개’를 했어요. 그게 첫 만남이에요. 그 날만 해도 홍대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거길 안 갔어요. 집회 가실 분은 가시라고 저는 집회를 안 가고 그냥 놀고 싶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동조하는 분만 남은 거예요. 집회는 쑥스럽고 한나라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당도 별로 이런 분들, 다 저랑 비슷비슷한 분들이죠. 그게 날라리 외부세력이에요. 이름도 순간적으로 떠오른 거예요. 그때 당시 홍대에서 민노총이나 다른 연대세력에 대해 외부세력이라고 나가달라고 말을 많이 했었거든요. 저는 ‘외부세력이지만 안 나갈 꺼야. 메롱~ :P’ 이런 기조였어요. 그래서 이름을 아예 대놓고 날라리 외부세력이라고 지었어요.
그 이후에 팬카페 형태가 돼서 김여진과 날리리 외부세력으로 정해져서 운영이 되었구요. 그렇다고 해도 운영규칙이라거나, 회의를 거친다거나 이런 딱딱한 원칙 전혀 없어요. 모든 건 트위터를 통해서 하구요. 예를 들어 내가 ‘오늘 홍대를 갈껀데 같이 갈사람?’ 해서 그날 시간되는 사람이 모여서 가면 되는 거예요. 전체 가입 회원 중에 몇 명이 가야하고 그런 게 전혀 없고, ‘그거하지 말자, 그건 필요없다’ 이럴 일도 없어요. 반대하면 안 하면 되는 거고, 찬성하면 하면 되니까요. 제가 늘 경계하고 조심했던 것은 되려 모임이 경성화되는 것이었죠. 지금 우리 날라리들 많이 과격(?)해지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들 하세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못 쫓아가요. (웃음)
민변: ‘소셜테이너’-이 단어가 만들어 지고 사용되는 과정에서, 사회와 이웃에 관심을 갖는 김여진씨 같은 분들을 낙인찍는 과정에서 자주 쓰여 지고 있어서 사실 인터뷰어 본인은 ‘소셜테이너’라는 단어를 별로 내켜하지 않지만-로 칭해지시면서 최근에 텔레비젼, 라디오 출연 등 에서 불이익을 받기도 하는데 때론 불편함으로 때론 두려움으로 느껴질 만도 한데. 이젠 조금은 타협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지.
김: 모든 것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온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할 때 이익만 보겠다고 생각하면 손해가 왔을 때 놀라고 당황하고 두려울 수 있는데, 좋기만 한 건 절대로 없고 나쁘기만 한 것도 없다는 게 여태까지 살면서 제가 느낀 순리에요. 유명한 사람일수록 욕도 많이 먹는 것처럼요. 인기의 절정일 때 떨어지는 폭도 크고 당연히 빛이 강하면 그림자는 짙어요. 사실 MBC에서 출연금지 결정이 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내가 많이 컸구나. 영광입니다’ 이랬어요.(웃음) 그리고 이게 겁먹을 일이 아니지요. 저런 대응들은 일시적이고 어떻게 보면 저들 스스로 굉장히 약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발악이죠. 그걸 알고 있는 이상 두려울 이유도 당황할 이유도 없지요.
민변: ‘행복’이란 말을 참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좌우명도 ‘무조건 행복’이라고 들었다. 여럿이 행복한 게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홍대 청소노동자에 관심을 가지는 것, 한진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게 다 ‘행복’이라는 연결고리 안에 있는 것 같은데
김: 특별한 것은 없어요. 제가 행복한 게 1번이예요. 다른 사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조금이라도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하기 싫은데 억지로 대의를 위해 하는 건 반대예요. 저는 그게 대의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거창한 의무감으로 대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면 피곤해져요. 매일 투덜거릴 것이고 얼굴은 찌푸리고 있을 거고요. 차라리 깨끗하게 ‘죄송합니다’하고 안 하는게 나아요. 왜 하는가의 이유가 정확하게 나를 위해서여야 해요.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생색 안 내고 다른 사람 탓 안하고, 하는 것도 행복한 거죠. 그러면 이걸 어떻게 더 행복하게 할까를 계속 연구를 하게 돼요. 내가 골치가 아프고 재미없고 억지로 하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도 안 봐요. 매력이 없거든요. 근데 여기에 신이 나 있고 재밌어 하고 반짝 반짝~ 까불 까불~ 장난끼가 있으면 사람들이 같이 놀아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행복하려고 하는 거다’라는 게 중심에 있어야 해요. 그걸 놓치는 순간 나에게도 나쁘지만 그 전체에도 절대 도움을 줄 수 없어요.
민변: 트위터 글 중에 ‘계속 끝까지 본다’는 말이 소름끼칠 만큼 번뜩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라고 핑계를 대지만 끝까지 본다는 것을 우리가 견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뜨끔했다.
김: 저와 날리리들의 구호가 ‘웃으며! 함께! 끝까지!’예요. 세 가지가 다 중요해요. 웃으면서 할 수 있어야 하고 함께 할 수 있어야 하고 끝까지 해야 하고. 그 끝을 1년 이렇게 잡으면 안 돼요. 짧게는 10년 길게는 300년 잡아야 해요. 그러면 조급할 게 없어요. 아예 호흡을 저 멀리로 두고 가는 과정을 즐기면서 가면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끝나 있는 거구요. 저는 홍대 1년 생각했어요. 근데 50일 만에 끝났잖아요. 굉장히 빨리 끝난 거죠. 한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김진숙씨는 10,000일 보고 있대요 (민변: 아니!! 그럼 우리 희망버스 몇 차까지 가야 하나요? -웃음-)
저는 희망버스를 계속 같은 방법으로 운용하는 것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방법을 계속 쓰는 건 사람을 굉장히 지치게 만들어요. 방법을 바꿔가면서 해야 지루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끝장을 보자’와 ‘끝을 보자’는 달라요. ‘끝을 보자’는 끝까지 가는 과정에서 계속 변화가 되고 과정이 재밌고 새롭고 창의적이어야 하는 거예요. 반면 ‘끝장을 보자’는 한 가지 방법을 가지고 벽이 뚫릴 때 까지 계속한다는 건데 그건 힘들어요. 어렵죠.
민변: 김여진의 가족이야기. 옆지기 남편, 그리고 뱃속에 있는 아가 이야기.(민변: 먼저, 임신 축하드립니다. 김: 네, 감사합니다)
김: 남편은 저와 참 다른 사람입니다. 생각도 성격도 참 달라요. 그럼에도 늘 같은 자리에서 묵묵하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줍니다. 때론 무심하다 싶을 정도인데, 1차 희망버스에서 연행되었던 당시, 여기저기서 염려의 전화가 올 때도 전화 주지 않은 딱 두 사람이 있었는데, 저희 아버지와 남편이었어요. 서울역에 도착해서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함께 간 시민들과 뒷풀이를 하고 집에 들어갔지요. 밤늦게 들어가던 제게 남편이 던진 말은 그저 잘 다녀왔냐는 말 뿐이었죠. 혹시 이 사람이 내가 연행되었던 사실을 모르나 싶어 물었지요. 그랬더니, 뉴스 봐서 알고 있다더군요. (웃음)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방식으로 저를 지지해 줍니다. 그렇다고 말수 없고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에요. 두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즐거운지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참 고맙고 든든한 옆지기입니다.
아이 문제는 저도 궁금합니다. 아이가 생기면 다들 먹고사는 문제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고 이전과는 달라진다잖아요. 엄마 김여진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저 역시 처음 겪을 제 모습이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행복해야한다. 함께 행복해야한다는 제 생각이 달라질 것 같진 않아요.
민변: 마지막으로 독자들, 민변 회원들에게 한마디.
김: 행복하신게 제일 먼저구요.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재미가 있고 의미가 있는 거예요. 재미만 있으면 너무 가볍고, 의미만 있으면 너무 무거워요. 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행복한 일이고 그럴 때 조금 힘들어도 행복할 수 있어요. ‘행복할 것이냐’ 아니면 ‘행복해 보일 것이냐’에서 거의 행복해 보이는 쪽을 택해요. 남들한테 행복해 보이는 방법으로 사는 거예요. 공부가 재밌어서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공부해서 1등하는 재미로 공부를 하는 거죠. 대학을 가는 것도 직업을 찾는 것도 대기업 가는 것도 그 일이 정말 재밌고 정말 행복해서가 아니라 대기업 갔다는 거 때문에 가는 거잖아요. 그렇게 살면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몰라요. 어떻게 해야 행복하는 지를 잘 모르는 거죠. 그러면서 행복을 대부분 바깥에서 구하는 거죠. ‘내가 저걸 사면 혹은 가지면 행복할텐데’ 그래서는 참 괴로워요. 행복할 것인가, 행복해 보일 것인가에서 단호하게 ‘나는 무조건 행복을 택하겠다’라는 결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무엇을 하면 나는 기분이 좋을까, 기분이 나쁠 때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빨리 벗어날까?’ 이런 식으로 자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으면 해요.
그녀에게 반해버렸다.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은 ‘무조건 행복’이라는 그녀의 신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정 행복해야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나의 행복은 나만의 행복과는 다르다는 그녀의 이야기. 만다라의 구슬처럼 우리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어느 싯귀가 떠오른다. 그녀의 행복한 구슬소리가 오늘도 우리 삶을 청아하게 울려주고 있는 이 시간, 그녀는 또 다른 누군가의 아픈 구슬소리에 같이 아파하고 있다.
“여러분은 언제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