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제주해군기지 갈등 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글_출판홍보팀 7기 인턴 윤다정
사진_민중의소리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
지난 9월 20일(화) 오전 10시 30분,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에서 주최한 ‘제주해군기지 갈등 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가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이날 비상시국회의는 노동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주요 정당 등 각계 인사들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 날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은 구속자를 석방하고, 주민과 성실한 태도로 대화에 임하며, 문화재 조사발굴을 위해 공사를 중단하고, 야4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할 것 등을 정부와 여당, 해군 측에 촉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참가자들은 오는 10월 1일(토) 제주강정마을 일대에서 제2차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아래는 비상시국회의에서 채택한 선언문 전문이다.
[선언문]
제주해군기지 갈등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평화선언생명평화의 섬 제주도는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
지난 2005년 정부와 제주도민들은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하였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은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三無)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묻는다.
바다와 육지에 족히 수 킬로미터의 거대한 빗장과 철조망을 둘러친 초대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대문도 거지도 도둑도 없는 제주도의 정신과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길인가? 수천 년을 평화롭게 살아온 주민들을 변칙과 편법으로 갈라 세우고 회유되지 않는 주민들을 국가공권력을 동원하여 핍박하는 것이 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는 길인가? 중국을 겨냥해 미군도 이용할 해군전초기지를 건설하는 일이 평화정착을 위한 탈냉전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고자하는 제주도의 미래인가? 과연 이지스함과 최신예 전함들, 미국의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이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와 양립할 수 있는가?
문정현 신부는 회의 도중 구럼비바위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울먹이기도 했다.
사철 맑은 물이 솟아나는 천혜의 강정마을은 제주 역사의 시원지 중 하나이다.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도 대를 이어 평화롭게 살아온 제주의 전통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강정마을의 대지와 강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주변에서 제주도 칠천년의 역사가 축적된 유구가 발견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와 풍요로운 강정의 바다를 콘크리트로 뒤덮는 것, 유구한 제주문화의 산실에 철심을 박은 펜스를 둘러치는 것, 그리고 여기에 최첨단의 군함 20여척을 결집시키고, 심지어 외국의 군함까지 끌어들여 소모적인 군사패권갈등에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제주도는 냉전과 대결의 섬이 아닌 세계를 향한 평화의 섬으로 남아야 한다.
지금 동아시아에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시작되고 있다. 해군기지 건설이 야기할 군사적 긴장과 갈등 속에서는 이전 시대와는 다른 화해와 상생의 미래가 동트기 어렵다.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온전히 가꾸어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수십억 주민의 공동 번영의 터전인 동아시아의 새로운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을 침해하는 공권력의 편법과 변칙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구럼비와 강정천에 깃들어 살아온 주민들을 비롯한 뭇생명들의 평화적 생존의 권리는 누구도 박탈하거나 핍박할 수 없다. 주민들의 합리적 문제제기를 묵살하는 공권력의 편법과 변칙을 안보라는 이름으로 혹은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눈감아서는 안된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추진과정에서 정부와 해군, 자치정부는 주민여론을 편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의도적으로 분열시키는 방식으로, 혹은 필수적인 환경영향평가절차를 간소화 또는 생략하는 방식으로 정책결정 과정을 왜곡해왔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신봉하는 나라의 국가공권력이 해서는 안될 일이다.
고권일 강정마을 반대대책위원장은 깨져가는 구럼비바위를 지킬 수 있게 국민들이 힘을 모아 달라며 호소했다.
정부는 구속자를 석방하고 주민과의 대화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
야5당은 조사보고서를 통해 이미 기지건설의 절차와 내용이 타당했는지 재검토하고 주민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공사를 잠정 중단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7대 종단 수장들 역시 정부와 주민이 평화적 대화에 나설 것을 호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변칙으로 획득한 형식적 적법성만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주민을 무더기로 투옥하거나 주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민형사상 처벌로 압박해 오고 있다. 주민대표들을 가두고 협박하면서 무슨 대화가 가능한가? 공사를 잠정중단하고 주민대표와 평화활동가들을 석방하는 것은 주민과의 성실한 대화의 기본전제이다. 우리는 주민과 활동가들의 석방을 위해, 그리고 민형사상 그들이 지게 될 경제적 부담을 나누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그들의 고통에 연대할 것이다.
구럼비 주변 문화재 조사발굴을 위해서도 공사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구럼비 주변에서 제주도 수천 년간의 주거문화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문화재가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구럼비로 향하는 모든 통로를 높은 장막으로 차단한 채 해군은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문화재발굴은 해군이 둘러친 펜스의 기둥 바로 아래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의 문화재 전문기관조차 이 공사를 강행하도록 방조하고 있다. 문화재를 훼손하는 공사강행은 그 자체로 위법일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문화재 발굴과정을 시민과 지역주민,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은 야4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응해야 한다.
제주해군기지는 그 추진과정에 수많은 절차적 내용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특히 강정마을에 건설될 해군시설이 기항지인지 민군복합항인지 아니면 해군전략기지인지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정부와 여당은 이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정조사에 응하여 제주도민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이 국정조사에서 해군기지건설이 과연 세계평화의 섬과 양립가능한지, 새롭게 시작되는 동북아시아 시대에 걸맞은 일인지도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비상시국회의 참가자들이 제주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구럼비 바위와 강정마을을 살리러 나서는 길이 곧 평화로 가는 길, 세상을 보다 안전하게 하는 길이다. 지금 강정마을 주민들은 빈손으로 “강정을 살려줍서!”라고 애타게 외치고 있다. 그들의 외침은 오로지 평화적 방법에 호소하기에 더 간곡하고 절박하다. 우리 모두가 그 증인이다. 정부와 국회는 강정주민들의 간절한 외침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강정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를 향유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와 주변국 주민들 모두가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도록 공존의 해법을 마련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 길이 비록 좁아 보일지라도 유일한 생명의 길이며 평화의 길이기 때문이다. 구럼비를 살리고 평화의 섬 제주를 지키는 길, 우리 모두를 살리는 그 길에 모두 함께할 것이다.
2011년 9월 20일
제주해군기지 갈등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