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정연순 민변 사무총장
민변 사무실이 새 단장을 했습니다. 도배도 새로 하고 바닥도 청소해서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납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습니다.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그림을 바꿨답니다. 예전의 그림은 푸른색이 시원한 ‘도봉산 만장봉’이었는데, 이번에 김선수 회장께서 민변 20주년을 맞아 기증한 차일환 화백의 ‘귀가’라는 작품으로 바꿔 걸었습니다.
차일환 화백은 1959년 출생해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80년대 민중미술운동작가로 적극 활동하셨습니다. 1988년, 화가 홍성담등과 함께 대형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공동제작하여 이를 슬라이드필름에 담아 평양축전에 보내려 하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적도 있는 분이지요. 화백은 1992년 귀농해서 농사를 지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 뒤로는 한국화로 전향해서 우리 산천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 있다고 합니다. 사무실에 걸린 그림은 화백이 1995년에 그린 것입니다.
자 이제 그림을 감상해 보실까요. 그림을 보면 우리의 시선은 화면의 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푸른 하늘과 오른쪽 붉은색의 창고인 듯한 건물로 자연스럽게 가게 됩니다. 창백한 푸른빛과 붉은 빛의 어울림은 이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을 결정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 두 가지 색의 대조는 서양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나 성모, 성인들이 입고 있는 옷 색깔이기도 하지요. 시선은 하늘과 중앙의 나무에서 출발해 창고로, 그림을 단단하게 받쳐 주는 대지와 왼쪽 산, 그리고 다시 나무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한 바퀴를 도는 것이지요. 계절이 어느 때인지 모르겠으나 잎을 하나도 달고 있지 않은 나무는, 이 그림의 배경을 암시해 주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이제 작품 속에 나오는 유일한 인물로 시선이 따라가게 됩니다. 주인공은 흔히 입는 청바지를 걸친 도시 변두리의 청년입니다. 어디를 다녀오는 것일까요. 어깨는 굽었고 앞주머니에 손을 넣은 폼은 아마도 수중에 그리 넉넉한 돈도 없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지요. 하늘을 보니 아직 어두워지기도 전인데, 이리 일찍 집에 들어오는 청년이란,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다 돌아온 길이 아닐까, 혹은 변변치 않은 일을 마치고 이제 허름한 그이의 집으로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청년의 뒷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잎이 없는 나무, 거친 선으로 그려진 집, 대지의 풍경이 바로 청년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그림의 기막힌 점은 바로 중앙에서 그 청년을 맞아주는, 또 다른 주인공인 검둥개입니다.
그림 속의 검둥개는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개들이 그렇듯이요. 그런데 오늘 따라 주인이 조금 일찍 들어오네요. 검둥개는 주인이 왜 일찍 들어오는 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너무도 기쁩니다. 그래서 앞발을 모두 들고, 아니 두 손을 번쩍 들고 일어셨습니다. 만세를 부르는 거죠. 주인을 바라보는 입과 눈이 웃고 있고, 꼬리마저도 그 둥근 모습을 바짝 치켜들었습니다. 개를 길러 본 사람은 집으로 돌아올 때 마중 나오는 유일한 존재가 개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그 개가 자신을 보고 기쁨에 겨워 팔짝팔짝 뛰어 오를 때마다 잠시 사람으로 착각한다고들 하는데요. 그 만남의 기쁨이 바로 사람과도 같이 그려진 개의 모습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검둥개의 모습에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됩니다.
다시 주인의 모습을 바라보세요. 신기하게도 ‘검둥아!’라고 부르는 소리와 함께,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미소가 보이는 듯합니다. 오늘은 지치고 힘든, 뭔가 잘 안 풀리는 날이었지만, 검둥이를 보는 순간 다 잊게 된 것이죠. 개와 주인의 따뜻한 만남. 누군가 나를 온전히 생각해 주는 그 존재와의 만남, 그 속에서 [귀가]가 완성됩니다.
다시 한 번 조금 떨어져서 그림을 감상합니다. 얼핏 보면 황량하고 창백해 보였던 이제는 그림이 따뜻함으로 꽉 차 있는 그림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화백이 이 그림을 그리던 1995년에도, 2005년에도, 현재와 미래에도, 처진 어깨로 집에 돌아오는 사람이 있고, 그를 기다리며 기쁨으로 날뛰던 누군가가 있겠지요. 그게 가족뿐이겠어요. 괜시리 검둥개가 회원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무처 식구들 같기도 하다는 생각의 나래까지 펼쳐 봅니다. 그래서 언제고 돌아갈 [집]과 [만남]이 있는 우리는, 위로를 받습니다.
참 따뜻한 그림, 한번 보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