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인터뷰]
사회적 소수자의 평등과 자유를 위해 – 김수정변호사 인터뷰
인터뷰_출판홍보팀 이재정 변호사
사진_출판홍보팀 6기 인턴 권미홍
정리_출판홍보팀 6기 인턴 김민성
연일 이어지던 굵은 빗줄기는 인터뷰 당일에도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흐리고 습하던 날씨와는 달리, 쾌청한 목소리로 여전히 ‘맑음’인 김수정 변호사와 즐거운 수다같은 인터뷰. 이번 인터뷰에는 민변 수시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금산간디학교의 이예지 학생도 함께했다.
민변 김수정 변호사에 대해 알고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보면 민변 전 사무처장이자 촛불과 여성 문제에 관련한 변호사라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여성 인권과 관련된 상도 받으시고 활동도 많이 하셨는데요. 인권과 관련된 많은 문제들 중에 왜 여성이라는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수정 변호사(이하 김) 그저 제가 여성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여성이라는 저의 존재에 근거해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보아 온 엄마의 삶이나 내 주변에 있는 여성들의 삶을 보면서도 영향을 받았죠. 특히나 성장하면서 독서를 통해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사법고시 공부를 할 때도 변호사가 되면 여성인권을 위해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하곤 했어요.
민변 그럼 연수원이나 대학에서 학회활동과 같은 여성문제에 관심을 두는 활동을 꾸준히 하셨는지요.
김 법대 다니던 당시 학생운동을 하기도 했었는데 변혁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문제를 놓치지도 쉬운 상황이었지만 다행스레 저는 여성문제에 주목할 기회를 가졌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지요.
민변 변호사가 된 이후에는 전문가로서 여성 문제를 고민하시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하셨을 텐데, 그중에서 기억나는 일은.
김 정말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호주제 폐지와 관련한 건입니다. 사실 사법 연수원 시절부터 그 문제에 관여할 기회를 갖게 되어 참여하시던 변호사님들께 많이 배워오던 차에 자연스레 변호사가 되면서도 함께 참여하게 되었지요. 이석태, 진선미, 이정희 변호사님 등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변호사님들이 참여했었고 저는 그저 보조적 역할을 담당했지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지만 ‘내 인생의 변론’으로 내세울 만 하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배운 사건입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동안 각계각층의 관심과 노력이 있었고 국민들의 동의도 충분했지요. 그 점에서는 ‘동성동본 혼인금지 위헌 결정’ 사건과 많이 달랐는데요. 동성동본 사건 역시 이석태 변호사님께서 견인하신 사건인데요, 당시 이전의 호주제 사건 같은 경우엔 이미 사문화된 제도라서 굳이 소송해서 바꿔야 되나 이런 얘기도 나올 정도로 국민적 합의도 충분하고 이후 민법이 개정되면서 호주제 자체가 무력화되었고, 호주의 권한은 없어졌지만 민법에 호주라는 사람을 내세워 서열화 시키는 이념이 남아있어 그것을 없앴다는 정도의 의미가 있었던 반면에, 동성동본 혼인금지 규정은 그로인해 구체적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힘든 사람들이 이끌고 해결하려고 했던 사건이라 훨씬 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민변 호주제 폐지를 이끈 공으로 여성단체로부터 성평등 디딤돌 상을 받으셨지요.
김 사건에 참여했던 변호인단 전체가 수상을 하게 됐어요. 여기에도 비화가 있습니다. 수정으로 만들어 진 상에 변호인단 이름이 쓰여진 것이었는데 다들 맘속으로는 각자가 소장하고 싶은 생각들이 이었지요. 사실 그 상은 주심으로 활동하신 이석태 혹은 이정희 변호사님이 받는 게 맞았지만, 함께 참여한 다른 변호사들도 충분히 탐나는 상이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씩 돈 내서 (짝퉁)상패를 만들었어요.(웃음) 집에 고이 모셔두었는데요 제 딸에게도 보여주고 이야기 해주고 싶은 자랑스러운 상패입니다.
민변 민변의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시면서도 소수자 영역,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독보적으로 담당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병역거부 문제에 까지 관심을 가지시게 되었나요?
김 2000년 한겨레21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존재가 보도되면서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고, 당시 변호사 1년차로서 법무법인 해마루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문제에 관심이 많으시던 오재창 변호사님을 도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성과 양심적 병역거부자 모두 소수자에 포함되잖아요. 자유와 평등이라는 부분이 공통적이고, 특히 군대의 존재는 여성 차별의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요. 제가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맥락과 지향이 있는 고민들입니다. 여성인 제가 군대문제를 말하면서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민변 양심적 병역거부라 하면 보통 종교적 신념이 떠오르는데 실제로는 생각보다 다양한 사례가 있을 것 같아요.
김 97%이상이 종교적 이유에요. 여호와의 증인 이외에도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하죠. 자신의 평화와 전쟁반대라는 신념 때문에 반대하는 분도 계세요. 적은 숫자지만 그런 분들의 등장으로 양심적 병역거부는 교단의 영역만이 아닌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영역임을 확인하게 되었죠. 병역거부라는 단어 앞에 ‘양심적’이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까지 많은 노력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엄격하게 말해 ‘양심적’이라는 수식어보다는 ‘양심에 따른’이라는 수식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누구는 양심이고 군대 가는 사람은 비양심이냐.”라는 얘기가 있을수 있으니까요. 양심에 따라서 군대를 가고 양심에 따라서 거부한다는 뜻을 가진 용어를 쓰려고 하죠. ‘양심적 병역거부’가 학술적 용어처럼 고정되어 버리긴 했지만요.
민변 양심적 병역거부는 법정으로 가면 보통 1년 6개월이라는 획일화된 선고를 받는데요. 그런 탓에 다른 사건들처럼 이 문제에 대한 법적 관여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김 지금은 그렇긴 하죠. 하지만 사실 지금의 그 상태도 수 년 간의 싸움으로 어렵게 이룬 성과에요. 2000년 초기에는 구속과 무조건적인 실형, 2년 형을 받았어요. 게다가 민간 법정이 아닌 군사법정에서 재판이 행해졌지요. 지금은 병역법 위반으로 민간 법정에서 재판을 하는데, 군사법정 때는 집총 거부라는 명목으로 3년형을 받았어요. 불과 10년 전의 일인데, 그간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더 이상 발전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다만,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을 했을 지라도 법률가들 사이에서는 계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어오고 있고 시간이 지났으니 바꿀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는 흐름도 있어요. 참여정부이후 대체복무제라는 제도의 준비가 시작되었고, 사회적 동의를 얻어가고 있는 단계라 봅니다. 이젠 입법적으로 결단해야지요.
민변 결국 이 문제는 대체복무제라는 제도의 마련으로 해결 될 것 같네요. 대체복무제 제도마련에도 많은 관여를 하고 계실 것 같은데.
김 대체복무라는 것에 가장 큰 문제로 다뤄지는 것은 군대 간 사람과 가지 않은 사람과의 형평성문제인데, 엄밀히 말해서 우리나라에는 관련한 제도적 결단이 있습니다. 신체적 문제로 군대 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사람들에게 다른 기회를 주는 공익근무요원제도인데, 현재 도입을 고려하는 대체복부제는 기존의 공익근무요원제도를 정신적, 즉 정신과적 문제가 아닌 양심상의 문제로 군을 대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요건을 신설할 뿐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훨씬 가혹할 필요도 없고 기간이 길 필요도 없는 거죠. 그렇게-더 가혹하고 기간도 길어야한다는- 접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차별이며 징벌에 가까운 대체복무 설정이라 는 UN의 권고 사항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군대 간 사람보다 길게 복무하는 건 반대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의 전망은 그다지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피해자도 많고 국민들의 정서도 바뀌고 있고, 활동 자체가 좀 정체 되어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빨리 도입을 해야겠지요.
민변 처음에는 이질적인 각각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했는데 말씀 듣고 보니까 교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음은 좀 더 개인적인질문인데요. 성 평등과 개인의 자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계신데 두 아이의 어머니로써 가정 내에서도 이상적인 성 평등이라는 부분이 충분히 발현 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제가 꿈꿨던 이상적인 성 평등 가족은 아닌 것 같구요.(웃음) 아이를 낳은 이후로 어려움에 봉착한 것 같아요. 지금 남편도 나름 엄선(?)해서 결혼 한 거고 노력 하는 사람인데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똑같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격려했어야 하는 건데 제 스스로 포기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3개월의 출산휴가가 여성에게 꼭 필요하지만 남성이 그 기간에 충실하지 않으면 여성에게 양육의 부담이 고착화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아이가 이상하게 엄마에게 더 매달리기도 해서 힘들었었는데 둘째를 낳은 후에는 남편도 아이를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서 훨씬 나아지긴 했어요(웃음)
민변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로써 따님이 어떻게 크길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김 저도 나름 자유로운 딸로 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라는, 스스로 만든 제약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정말 여성이라는 제약 없이 자유롭게 컸으면 좋겠네요. 이웃에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구요.
민변 젠더적 관점에서 활동하는 변호사로서 우리사회 남성들에게(또는 민변 남성변호사님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
김 제가 처음에 민변에 가입했을 때만 해도 여성 변호사가 많이 없었어요. 그 탓에 ‘꽃’으로서의 여성이랄까. 여성을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이 벗겨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요. 지적을 해주지 않으면 몸에 베어있는 거라 모르셨던 것이지요. 항상 자신의 인권 감수성이 어떤지 생각해보고 깨어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이야기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남성분들께 이렇게 부탁해 보고 싶네요. 여성이 ‘이거 남녀 차별이야’라고 하면 자기의 그간의 상식(관성)으로 쉬이 납득이 안 되더라도 소수자인 여성의 말을 존중하고 ‘그래 차별이구나’ 라고 바로 태도를 바꿔보면 어떨까 해요. 일단 먼저 태도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면 그러면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남녀차별이 없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소수자로서 당사자가 느끼는 차별을 머리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보다 그들의 목소리를 신뢰하고 그들이 느낀 고통 그 자체가 진실이라는 생각. 그녀가 자연스레 소수자를 보듬는 비결은.. 바로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