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인터뷰]
유중원 변호사의 뜨거운 사막속으로
인터뷰_출판홍보팀 이지연 변호사
사진_출판홍보팀 6기 인턴 권미홍
정리_출판홍보팀 6기 인턴 유재선
변호사가 소설을 쓴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겁니다. 명확한 사실관계와 법적 근거를 파헤치는 변호사의 업무와, 끝없는 상상력으로 세상을 비추어내는 소설가의 역할은 정반대에 있다고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정반대의 영역에 도전하고픈 열망이 샘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 소설 <사하라>를 발간한 유중원 변호사가 그러합니다. 도전에 한계란 없으며 도리어 도전할수록 아름답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초여름의 어느 날, 민변 출판홍보팀이 유중원 변호사의 뜨거운 사막을 방문했습니다.
1. 변호사님은 오랫동안 민변의 회원으로 활동해 오셨습니다. 민변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신다면요?
제가 민변에 가입한 게 90년대 초예요. 사법연수원 다닐 때 노동법 학회를 창설했어요. 연수원 내 모든 학회를 제가 처음 창설했지요. 사법연수원 18기 노동법 학회 회원들이 민변 회원으로 가입하니까 제가 학회를 창설한 입장에서, 등을 떠밀어서 민변에 가입하게 됐는데, 제가 그때 가입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웃음)
민변에서 회원위원장과 사법위원장을 2번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대로 활동을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더욱 민변 활동에 소극적이 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잊어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엔 잘 안 나갔지만 민변에 대한 관심을 줄여본 적이 없어요.
민변 같은 단체가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앞당기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정착된 오늘날에는 ‘민변의 역할이 뭔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민주주의가 발달해도 사회에는 약자와 소수자가 존재합니다. 여성문제도 그렇고, 다문화 가정 문제, 노동문제 등 어느 사회든 소외된 계층, 소수자와 약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들을 옹호하고 대변하기 위해 민변 같은 법률가 단체가 필요하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다고 봅니다.
2. 최근 소설 <사하라>를 발간하셨습니다. 막연히 생각하기에 변호사라는 직업과 소설은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데요.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변호사로서 지난 25여 년 동안 방대한 양의 글을 써왔습니다. 소장이나 답변서, 고소장, 법률의견서 등 변호사로서 작성하는 문서들 뿐 아니라, 신용장거래, 국제거래, 금융거래, 어업권 소송 등의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어요.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10권 넘게 썼지요. 학술논문과 판례평석도 90여편 발표했습니다. 또 신문에 200여 편의 사설과 칼럼도 썼습니다.
그 글들은 항상 ‘옳다’와 ‘그르다’를 명확하게 가르는 매우 논리적인 글들이지요.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흑도 백도 아닌 회색 영역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떻게 “당신은 그르고 나는 옳다”라는 이야기만 평생을 할 수 있나요.
3. 소설 속에는 배경이 되는 사하라 사막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막, 여러 다양한 아랍과 이슬람 민족들에 대한 방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척 놀라웠어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료는 어떻게 참고하셨나요?
소설에는 아프리카와 사하라, 아라비아 반도, 지중해, 아마존 강 유역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콩고 강 유역의 열대다우림,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사막, 아랍 민족, 이슬람교, 투아레그족, 낙타, 사자 등 다양한 지리적, 문화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관련 참고서적들을 통해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하고자 했습니다. 역사서, 전기, 여행기, 종교 서적, 지리학 책, 인문학 책을 200여 권 정도 충실히 읽고 조사했지요. 사실 이들 책보다 더 정확하고 자세한 묘사가 된 책은 없지 않는가 합니다. 책이 책을 낳습니다.
저는 소설 속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줄거리는 창작이지만 그 바탕에는 정확한 사실관계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4. 주인공 김규현 상무에게 여행, 특히 사막 여행은 어떤 의미인가요?
주인공 김규현은 불안증, 밀실공포증을 가진 인물입니다. 탁 트인 사막은 주인공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요. 그는 불안증과 밀실공포증을 떨쳐내기 위해서 사막을 끊임없이 걷습니다.
무엇보다도 광대한 사막에는 태고적 침묵이 있고 자유가 존재합니다. 주인공은 이 자유를 찾아서 사막에 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보다 더 좋은 호텔에서 안락함을 누리며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를 관광하는 여행은 진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자연 속에서 끊임없이 고행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여행이며, 그런 여행을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의 고독한 내면과 대면 할 수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귀중한 말은 침묵이다. 그곳에서 목소리는 언어가 되기 전에 먼저 침묵과 조우한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황량한 사막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그 사막이 그에게 마법을 걸어서 유혹하였다. 그에게 사막은 성지였고 그는 성지 순례자였다. (소설 중에서)
5. 소설가는 소설 속 주인공에 자신의 상을 투영하고, 주인공은 충실히 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비극적이지만 순결한 삶을 살았던 김규현 상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신념이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소설의 주제는 여러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주제는 독자들이 판단할 것입니다. 우선 깨끗하게 살다가 깨끗하게 죽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깨끗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주인공 김규현은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자기 능력껏 노력하고 성취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소설은 여행을 왜 하느냐, 왜 걷느냐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소설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상당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저는 세계의 메이저 종교는 모두 사막에서 출생했다고, 제멋대로 믿고 있습니다. 이집트쪽 사하라 사막에서 태어난 이집트의 태양신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교는 시나이 반도의 험한 사막에서, 이슬람교는 아라비아 반도의 룹알할리 사막에서 출생했습니다. 일신교의 원조는 조로아스터교인데 이 또한 약 3,000년 전에 이란에 있는 루트 사막에서 유래했고요. 인도의 흰두교는 인도의 사막에서, 불교 역시 아열대 지대의 사막지대에서 생겨났지요. 그래서 사막과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봅니다.
김규현 상무는 이러한 사막을 여행하며 불멸의 존재인 신에 대해 경외하고 그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는 유일신은 거부하지만 이 세계에 여러 신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유연한 범신론자입니다. 그러나 김규현 상무와 함께 여행한 이브라함은 아프리카에서 평생 너무나 고단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모든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어요. ‘과연 전지전능한 신이 존재하느냐’하는 의문 역시 이 책의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젊은 시절 은행에서 근무하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외환은행에 근무하면서 국제무역거래와 신용장에 관련된 업무를 주로 취급했었는데, 후에 변호사가 되고 나니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법조인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가 이들 분야에 대하여 법이론을 개척한 셈입니다. 우리나라 법조계는 국제무역거래, 신용장 분야에서 제가 정리한 법이론과 판례에 의해 자리가 잡혔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저는 한때 국민대 법대 교수로 있었어요. 그 기간 동안 국제거래, 해상법, 금융법, 어음수표법 등을 학생들에게 강의하면서 관련 논문과 책을 많이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7. 일반 독자들을 위해 국제무역거래의 중요성과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국제무역거래는 서로 다른 국가 간의 물품매매거래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무려 85~90퍼센트에 달합니다. 문명국가중 제일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지요. 국내에 부존자원이 없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원재료를 수입해서 반제품, 완제품을 수출하는 방식이지요. 2~3년이 지나면 우리나라는 국제무역거래 규모가 1조 달러를 넘을 것으로 봅니다. 올해 안에 넘을 수도 있고요.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변호사로서 사건의 수임 여부를 떠나서 당연히 국제무역거래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넘어서 잘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8. 민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변호사님께 민변은 어떤 의미인가요?
과거보다는 훨씬 사회의 민주주의가 확산되었고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러나 여전히 권위주의 시절의 뿌리 깊은 잔재는 지금도 남 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에도 약자와 소수자가 존재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수자, 약자에 대한 차별, 정경유착, 재벌들의 만행에 가까운 비정상적인 기업경영 행태 등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개혁되어야 할 불합리한 요소들이 남아 있지요.
가령,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를 보세요. 은행은 기업과 다르게 예금자가 몇 십만 명이 달려있는 공공성이 강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그를 담당하는 은행의 오너나 대주주들의 행태를 보면 우리 사회는 참 갈 길이 멀단 생각이 들지요. 민변이 눈을 부릅뜨고 사회 속에 민변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제게 민변을 정의하라면, 향기로운 단체라 하겠습니다.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진 못하지만 민변은 항상 제게 영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제게는 약간 멀리 떨어져있는 단체이기도 하고요.(웃음)
삶과 죽음, 인간과 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건강한 사회에 대한 고민까지 모두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유중원 변호사의 따님인 유신혜 변호사도 최근 민변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민변과의 향기로운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나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