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소식]
4人4色 – 변호사대체실무수습을 마치며
글_사법연수원 김낭규, 백신옥, 권성환, 류민희 시보
때는 바야흐로 서기 2011년 3월과 4월. 전세대란과 물가폭등에 한숨 쉴 여유도 없이 일본의 대지진과 가공할 방사능위협이 한반도를 휩쓰는 잔인한 계절에 그래도 어김없이 새봄의 꽃은 피었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사무실도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우리 사법연수원 시보 4인(김낭규, 백신옥, 권성환, 류민희)은 3월과 4월 숨 가쁘게 전개된 민변에서의 변호사 대체실무수습을 마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과 희망을 안고 다음 임무를 위해 떠나가며 소감 한 마디씩 전합니다.
김 낭 규
1. 들어가며
이제 2개월간의 수습기간이 끝나간다.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으로 시작한 대체실무수습이었고, 더구나 같은 기간에 인턴 22명이 있어서 참 두렵고 또 두려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지도관님을 비롯한 여러 변호사님들과 민변 간사님들, 그리고 우리 성환이, 신옥이, 민희와 착하고 문제의식 많은 인턴 동생들 덕분에 보람차게 보냈던 지난 2개월이었던 것 같다.
2. 대체실무수습에 대한 간략한 평가
가. 법정방청
우선 법정방청을 많이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행정사건, 형사사건, 항소심사건, 국민참여재판 등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사건들을 법정에서 관찰하면서 변호사들의 치열한 준비와 소송현장에서의 헌신성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파면취소소송에서의 감정인 신문, 국민참여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인의 배심원들에 대한 주장 입증을 보았던 것이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다만 국민참여재판은 한정된 사법자원으로 볼 때 무죄를 치열하게 다투는 피고인에 대하여 그 사실인정에 대한 배심원들의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한 것이 아닌가 한다. 피고인, 변호인, 검사 모두 이미 유죄를 인정하고 그 양형을 다투는 것을 굳이 세금을 써가면서 국민참여재판을 하는 것은 사법자원의 낭비라는 생각이다. 또한 법정에서 변호인의 말은 그 사안의 성격에 맞고 요건사실에 부합한 적확한 진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당해소송의 쟁점도 아닌 발언을 중구난방 하는 것은 판사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 독서토론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우리가 싫어하는 생각을 위한 자유> 이것이 내가 대체실무수습과정에서 읽고 토론한 책들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 좀 풀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다한 것 같아 후련하다. 약 10년간 봉인된 입이었는데 말이다. 특히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인턴들과 함께 무려 8시간을 소요해가며 토론을 벌였던 책이다. 다들 할 이야기가 많았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특히 리비아 군사개입의 정당성문제와 카이스트 학생 자살문제, 시장의 자유에 대한 정부개입의 정당성 문제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나는 이제 현재 20대 대학생들을 그리 쉽사리 미워하거나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그 옛날의 잣대로 쉽게 ‘의식 없는 자들’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사회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발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 표현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세대임을 조금이나마 확인했기 때문이다.
다. 위원회 참가
노동위, 국제연대위, 미군위, 소수자위원회를 끝내 한 번도 못가보고 떠나서 아쉽다. 민생경제위, 공권력감시팀, 환경위는 나름대로 참여했고, 여성위는 같이 성폭력상담소를 방문하기라도 했는데. 민생위 부동산팀에서는 특히 김남근 변호사님의 부동산 강의에 대한 기대를 많이 했었고 질의사항도 많았는데, 당일 분위기가 오래하는 것을 허용치 않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그날 부동산팀 소속 변호사님들과 함께 한 술자리가 좋았던 것 같다. 성폭력 상담소 방문은 2시간 동안의 질의응답이 있었는데, 특히 수사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조치나 정착지 마련, 가해자에 대한 교육 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오는 보호소 같은 것이라도 지었으면 좋겠다. 근육질의 남자가 보초를 서고 튼튼한 시베리안 허스키가 집을 지키는 그런 안전가옥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원회는 실제 변호사 업무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인데 대체실무수습에서 이런 기회는 가능한 한 많이 부여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한다.
라. 일본 변호사들과의 대화
민변이 아니었다면 접하기 어려운 참 특이한 경험이었다. 우리나라 성폭력 처벌 특례법에 대한 토론을 하고자 일본 오사카 변호사 15명이 민변을 방문한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집요했고 당황스런 장면도 있었다. 특히 성폭력 특례법 제26조 4항에 대한 질문과 그 답변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수사과정에서 대질신문한다는 우리 측 답변에 대하여 일본 측 변호사들이 한결같이 ‘에–’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이어 그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이 있었던 것이 씁쓸한 경험이었다. 연수원 반 홈피에 이에 대한 사항을 올려보니 검찰실무수습했던 많은 사람들이 적극 반박한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충분히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폭력 상담소 간사의 말은 달랐다. 아직도 일선 경찰서에서는 대질신문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인가? 하여튼 선진입법을 배우러 왔다는 그들 앞에서 대질신문 하나로 부끄러운 자리가 되었다. 신상정보 고지에 대한 동법 제42조에 대해서도 가해자의 사회복귀를 가로막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도 있었다. 국민감정법에 대한 통렬한 비난이다. 하여튼 내가 놀랐던 것은 보통 다른 나라 가면 대충 예의상 한 두 마디 물어보고 밥 먹으러 갈 법도 한데 시간을 초과해가면서까지 집요하게 묻는 그들의 자세였다. 모름지기 법조인이라면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대충 자리 채우고 있다가 술 먹으러 가는 문화는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3. 마치며
프로그램은 빡빡할수록 좋고 누군가는 책임지고 점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다만 2개월 동안에 너무 많은 것을 주려고 하기보다 기회를 제공해주고 스스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연히 들어갔던 공부모임 <원전을 멈춰라>에서 내가 많은 것을 느꼈던 것처럼. 박재화 간사의 갑작스런 제안으로 덩달아 따라갔던 성폭력상담소 방문이 수사절차에 대한 많은 고민을 던져주었던 것처럼. 그런 기회만 부여된다면 민변에서 2개월을 보내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가지는 얻어서 갈 것 같다.
백 신 옥
3, 4월은 민변의 각 위원회 엠티가 있어서 거기에 참여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여러 위원회의 엠티가 겹쳐서 다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내가 참가할 수 있었던 엠티만 떠올려 본다.
1. 6기 인턴 오리엔테이션
2011. 3. 4.~5. 양평에서 민변 6기 인턴들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서 시보들도 따라갔다. 상근 변호사님들과 사무총장님, 간사님들도 참가하셨다. 민변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보고, 쑥스럽게 자기소개를 하고, 게임도 하며 얼굴을 익혔다. 귀여운 인턴 친구들과 그렇게 알게 되었다.
2. 민변 신입회원 엠티
2011. 4. 1.~2.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민변 신입회원 엠티가 있었다. 시보들도 초대해 주셔서 참가할 수 있었는데, 엠티에 안 오신 신입 변호사님들도 많았겠지만 그 장소에 오신 분은 세 분 밖에 안 계셔서 좀 놀랐다. 민변 각 위원회 위원장님들이 오셔서 위원회를 소개하시고 신입회원들을 해당 위원회에 들어오게 하려고 노력하셨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이야기하며 신입회원들이 자신이 희망하는 위원회를 말하였는데, 그 과정이 참 재미있어서 많이 웃었다.
사무실에서 각 위원회 회의를 들어가 보면서 알았지만 민변의 모든 위원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예컨대 소수자 인권위원회에서 에이즈나 양심적 병역거부를 논의할 때 에이즈 관련 국제기구를 찾고 유럽인권법원 판례를 검토했으며, 노동위원회에서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루었다. 그러니 꼭 특별한 위원회 하나만 고르는 게 크게 중요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위원회 회원을 뽑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과 더 친해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3. 노동위원회 전체모임
2011. 4. 9.~10. 부여와 공주에서 노동위원회 전체모임을 가졌다. 자가용으로 갔는데 차가 많이 밀려 고생을 좀 했다. 그 날 운전하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첫날은 부여의 부소산성,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고 저녁에 공주 한옥마을에서 박은정 교수님을 모시고 비정규직 차별시정례에 관한 세미나를 한 뒤 숙박을 했고 , 그 다음날은 공주에서 무녕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을 보고 마곡사에 갔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굉장히 뿌듯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백제 유적을 보았고, 노동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과 활동가님들의 열정을 배우고 왔다. 잊지 못할 것이다.
4. 국제 연대 위원회 엠티
2011. 4. 22.~23. 충무로 얼티즌에서 국제 연대 위원회 소속 변호사님들과 간사님, 인턴들과 함께 모였다. 포럼아시아 제네바사무소 NGO미팅, Asian Consortium for HRBA2J 국제워크숍 관련 논의, 국제연대위원회 활동 보고 등이 있은 뒤 박찬운 교수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고 가셨다. 그러고 나서 자기소개를 하고 또 밤늦게까지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엔 남산으로 산책을 하러갔다. 상쾌했다. 참가하신 변호사님들 모두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셨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역인 국제법, 국제정치와 변호사업무를 어떻게 조합해야 할지 고민하며 롤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국제연대위원회 변호사님들이 일하시는 모습들을 보며 어렴풋이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오재창 변호사님께서 국제 인권이 공적인 성격이 강하고 재미있다고 말씀하셔서, 내가 평생을 두고 할 일을 국제인권으로 정했다.
5. 느낀 점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께서 시보들과 인턴들을 아껴주셨다.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게 해주려고 애쓰셨음을 안다. 항상 다정하게 대해 주셔서 마음이 따뜻해졌고, 민변 사무실에 나와서나 엠티를 가서나 늘 행복했다. 그리고 나도 민변 회원이 되어서 활동하다가 시보들이나 인턴들을 보면 무럭무럭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권 성 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그 이름만 들어도 뭔가 있어 보이지 않은가? 그것이 내가 변호사 대체실무수습지로 민변을 선택한 이유였다. 그러나 기실 두 달간 이방인으로서 지내온 민변은 화려한 그 무엇은 없지만 흙 속 진주와 같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무언가를 숨겨놓은 곳임이 분명하다.
3월 2일부터 시작된 실무수습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하였다. 즐거운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부여받은 기록들. 그리고 각종 토론회와 현장방문 및 민변 변호사님들이 변호를 맡으신 사건들을 방청하면서 이 시대의 화두에 대하여 새삼 고민하게 되었다.
그 누군가는 적극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겠지만 2011년 대한민국에 ‘표현의 자유’는 적극 보장되고 있는가? 통일에 대한 열망은 지난 시절의 불순한 음모였던가? 경제위기를 빙자하여 정리해고의 길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외침은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과한가?
사무실을 오고가며 많은 고민을 한다. 물론 당장에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들이지만 이전에 있던 그 어느 곳과는 지극히 대조적으로 최소한 민변에서는 이러한 고민과 문제점에 대하여 그 지위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이 가능하였다. 회장님과 사무총장님뿐만 아니라, 일선에서 부당한 공권력행사에 맞서 변호사법 제1조에 부합하게 활동하는 변호사님들. 각 위원회를 실무적으로 담당하시며 민변을 뒷받침하시는 간사님들. 특히 민변의 활력소이자 새싹인 개성 넘치는 제 6기 인턴친구들과의 소통은 나에게 현실에 대한 냉소를 넘어 그래도 내일을 향한 동력을 제공하였다.
실무수습 두 달의 의미에 대해 이번 가을이면 취업시장에 나가야 할 입장에 있는 나로서도 일련의 사회적 이슈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자료들을 보면서, 지도변호사님과의 대화를 거치며 또한 차디찬 바닥에 앉아 농성중인 정리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장차 변호사로서 준비해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들이었다.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재판의 결과를 보고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국가보안법위반사건이나 공직선거법위반사건 및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패킷감청’에 관한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은 민변사무실을 떠나서도 늘 관심이 기울여질 것 같다.
민변 구성원 여러분! 적응할만하면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 시보들이라지만 아쉬움은 남으나 소중한 인연과 많은 가르침을 얻고 떠난다 생각하니 저에게 행복한 3월과 4월이었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드리며 그럼 더 막강해진 모습으로 또 만나요^^
류 민 희
1. 들어가며
사법연수원 1년차 때 인권법학회의 일원으로 ‘2010 사법연수생과 민변의 만남’의 실무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민변에 많이 친숙해졌고 단체와 사무처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엿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실무수습 기간 중에 지원하였다. 알고 보니 나는 2달간의 민변 자유이용권을 얻은 셈이었다.
2. 민변에서의 시간
첫 출근 날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회의에 참석하였다. 고시 공부는 ‘입법’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있어야 할 법’에 대하여 생각하는 훈련을 오랜만에 하였다. 이런 면에서 민변에서의 시간이 아마도 연수원 2년 과정에서 가장 이질적인 시간이었을 것이다. 실체법이나 판례를 잘 아는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리걸 마인드도 없다는 자괴감도 느꼈다. 그래서 귀동냥이라도 하려고 위원회 회의, 위원회 엠티, 토론회 등 여기저기 따라다녔던 것 같다.
많은 얘기를 들었고, 두꺼운 서면을 읽고, 독서토론을 했다. 어떤 단일한 감상이 나오지는 않는데, 일단 변호사의 법적 견해를 필요로 하는 분야는 생각 보다 많았다. 그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고, 민변의 각 위원회에 모여서 자료 공유하고 함께 공부하는 방법이 효율적으로 보였다. 지적 흥미를 가지게 하는 일도 많았다. 선배 변호사님들의 활동을 보며 의욕과 용기를 얻었다. 많은 사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의 벽도 느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좋고, 일은 재미있었다.
다양한 견해를 경청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담당 위원회에 초대해주신 간사님, 변호사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사람 하나 키운다는 생각으로, 그다지 쓸모없었던 수습생에게 무한한 A4용지를 공급해준 민변 사무처에 역시 감사드린다(사람이 구식이라 서면이 물리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으면 글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무실을 밝게 해주는 민변의 활력소, 인턴 친구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의 의욕 덕분에 나도 덩달아 활기 있게 보냈다.
3. 마치며
법조인이 되리라 마음을 먹고 시험을 준비한 이후, 가장 기뻤던 날은 합격 소식을 들었던 날이었다. 어째 그 날부터 계속 내리막길이다. 자신이 없다. 어느 한 곳도, ‘잘 왔다, 여기 정말 좋은 곳이다. 우리 같이 해보자.’라고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않는다. 한 해에 후배들이 2500명이나 나오다니 모두들 대단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는 느낌만 받는다. 이래저래 일도 잘 못 하고, 업계의 분위기도 잘 모르는 신인인데, 그나마 단 하나의 장점일 ‘패기’마저 상실해 간다.
등산실력으로 회장으로 선출되신 김선수 회장님과 그에 못지않은 실력의 고윤덕 변호사님과 함께 시보 세 명이 산행에 다녀온 적이 있다. 등산은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으면, 잘 타던 못 타던 어떻게든 완주해서 성취의 기쁨을 얻는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가장 빠른 속도로 정상을 찍을 것이냐, 긴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풍경도 보고 산바람도 쐴 것인가.
한 해 2500명의 변호사가 배출되는 이 시기에, 내가 아닌 누가 해도 상관없을 일이 아닌 오직 나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있기는 할까? 어쨌든 민변은 다양한 모습을 충분히 제시해줬고 이제 내가 그 제안에 대답할 차례인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더 이상 ‘수습생’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