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과 5공의 “사법 암흑기”에 활동했던 인권변호사, 홍성우
거듭되는 절망에 맞서 인권변론을 끝없이 이끌었던 그의 변론자료를 통해 읽는 진실
이 책은 홍성우 변호사와 한인섭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어두운 시대였던 유신과 5공 시절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리고자 한 자리에 모여 쓴 책이다. 100시간 이상의 홍성우의 증언을 한인섭은 대담하며 기록했고,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권변론의 전모를 복원해냈다. 이 증언은 인권변론을 위해 고투해온 변호사들의 활동 궤적을 담은 것이다. 아울러 형사재판을 거쳐야 했던 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 전모를 상세하게 증언한다. 이제까지 가려져있던 수많은 일화와 야사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 : 홍성우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1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해군법무관을 마치고, 65년부터 6년간 판사를 역임했다. 1971년 사법파동을 겪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1974년 민청학련사건을 계기로 인권변론에 투신하여 20년에 걸친 기간동안 학생.노동자.민주인사.조작간첩사건 등의 변론에 혼신의 열정을 쏟았다. 민주회복국민회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엠네스티, 가톨릭 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인권신장을 위한 활동을 했다. 정의실천법조회(정법회) 결성에 앞장섰으며, 87년 전후하여 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대한변협 인권위원으로 활약했다. 1988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을 결성하고, 그 대표를 역임하였다. 그는 엄혹한 독재체제 하에 희생당한 이들과 저항한 이들을 위한 변론에 앞장선 인권변호사의 표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저자 :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법개혁위원회, 법학교육위원회에 관여하면서 사법개혁의 제도화에 열정을 쏟았으며, 현재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의 장을 맡고 있다. 저술로 『형벌과 사회통제』, 『5.18재판과 사회정의』, 『권위주의 형사법을 넘어서』,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공저), 『정의의법 양심의법 인권의법』(편), 『재심.시효.인권』(편), 『법조윤리』(공저), 『국민의 사법참여』(편) 등이 있다.
어두운 시대, 탄압받고 수난받는 이들의 인권옹호에 헌신했던 홍성우 변호사!
몇십년의 세월을 뚫고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낸다.
“우리 양심범들의 정의로운 싸움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는 떳떳하게 무죄로 밝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전국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고자 했다”
_홍성우 변호사의 서문 중에서
4만6천쪽의 변론자료, 100시간의 증언과 함께 되살아나는 한국현대사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었던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유신과 5공의 “사법 암흑기”에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그 중에서 조영래(1990), 황인철(1993) 변호사가 아깝게 돌아가시고, 올해 이돈명 변호사가 타계하였다. 인권변론의 역사가 하나의 전설처럼 사라지려는 이 때, 홍성우 변호사가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내는 증언을 책으로 낸다.
홍성우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요, 사실상 중심축이었다.
당시, 인권변호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의 사법부는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들은 최근에 들어서 겨우 재심으로 무죄판결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절망에 맞서 인권변론을 끝없이 끌어갔던 인권변호사 홍성우는 몇 십년동안 변론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그 인권변론자료는 현대법제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가 인수하여 전산화를 완료했다. 자료는 1207종, 4만6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홍성우 변호사와 한인섭 교수, 정확한 증언과 고증을 위해 한 자리에 앉다.
이 자료를 토대로, 홍성우 변호사(73세)와 한인섭 교수(52세)는 한 자리에 앉았다. 100시간 이상의 홍성우의 증언을 한인섭은 대담하며 기록했고,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보완을 받았다.
그리하여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권변론의 전모를 복원해냈다.
어두운 시대, 탄압받고 수난받는 이들의 인권옹호에 헌신했던 홍성우 변호사!
몇십년의 세월을 뚫고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낸다.
“우리 양심범들의 정의로운 싸움이 훗날 역사의 법정에서는 떳떳하게 무죄로 밝혀지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광주 전국으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고자 했다”
_홍성우 변호사의 서문 중에서
4만6천쪽의 변론자료, 100시간의 증언과 함께 되살아나는 한국현대사
어두운 시대의 등불이었던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유신과 5공의 “사법 암흑기”에 우리는 인권변호사의 존재를 기억한다.
그 중에서 조영래(1990), 황인철(1993) 변호사가 아깝게 돌아가시고, 올해 이돈명 변호사가 타계하였다. 인권변론의 역사가 하나의 전설처럼 사라지려는 이 때, 홍성우 변호사가 그 때의 진실을 온전히 되살려내는 증언을 책으로 낸다.
홍성우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의 상징이요, 사실상 중심축이었다.
당시, 인권변호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당시의 사법부는 피고인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들은 최근에 들어서 겨우 재심으로 무죄판결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절망에 맞서 인권변론을 끝없이 끌어갔던 인권변호사 홍성우는 몇 십년동안 변론자료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두었다.
그 인권변론자료는 현대법제사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왔던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가 인수하여 전산화를 완료했다. 자료는 1207종, 4만6천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홍성우 변호사와 한인섭 교수, 정확한 증언과 고증을 위해 한 자리에 앉다.
이 자료를 토대로, 홍성우 변호사(73세)와 한인섭 교수(52세)는 한 자리에 앉았다. 100시간 이상의 홍성우의 증언을 한인섭은 대담하며 기록했고, 당시 활동했던 이들의 보완을 받았다.
그리하여 7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인권변론의 전모를 복원해냈다.
사법사와 민주화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
이 증언은 인권변론을 위해 고투해온 변호사들의 활동 궤적을 담은 것이다.
아울러 형사재판을 거쳐야 했던 독재시대의 민주화운동 전모를 상세하게 증언한다. 이제까지 가려져있던 수많은 일화와 야사들이 도도하게 펼쳐진다.
사법부의 암흑기에 인권변호사의 존재는 우리의 법치주의를 빛나게 해주는 빛과 희망이었다. 또한 홍성우의 증언을 통해 한국현대사의 기록되지 않는 측면이 온전히 되살아난다.
민주화의 스타와 이름없는 희생자들로 쓰여진 현대사의 기록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은 1974년부터 1995년의 학생, 지식인, 노동자, 조작간첩, 기자, 군인 등 다채롭다.
현재에도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대표적 인사들의 한 세대 전의 열정어린 활동기록이기도 하다. 현직 정치인들의 청년시절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당시의 산업화의 그늘에서 희생되었던 노동자들의 신음소리, 당시의 억압적 정권하에서 유린당한 사법부의 짙은 그늘, 그리고 재심사건의 원심에서 공안권력에 의해 간첩의 누명을 썼던 억울한 이들의 한숨이 들어 있다. 그러한 열정, 신음, 그늘, 한숨에 대한 세세한 증언을 읽을 수 있다.
숨은 이야기들의 흥미진진한 나열
이 책에서 처음 밝혀지는 이야기거리들은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김수환 추기경과 인권변호사들의 관계가 여러 모로 밝혀진다.(아래 사진은 본문 344쪽 참조) 김지하의 양심선언과 법정투쟁에 얽힌 복잡한 이야기도 처음으로 전모를 드러낸다. 오원춘 사건에서 변호사들이 대성통곡한 사연도 처음으로 밝혀진다.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였던 시절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판사들이 나름대로 노력한 사연들도 처음으로 공개된다. 인권변호사와 정치변호사와의 차이점도 흥미있는 대목이다. 무려 7심을 오간 핑퐁재판으로 유명했던 송씨일가 간첩단사건(최근 재심무죄로 판명됨)의 진실을 밝히려 온갖 노력을 다한 사연도 공개된다. 이와 같이 다른 기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풍성하다.
그것만으로 독서하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대학원생들과 함께 먼지 가득한 서류를 정리하면서 우리 현대사를 수놓은 사건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전율도 하고 감동도 받고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한 시대의 문서이자, 당시의 재판과 법 적용에 대하여 살아있는 기록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화운동은 모두 형사재판의 대상이 되었던 만큼 민주화운동사의 내용을 풍부히 하는데도 이 자료의 가치는 비할 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인섭 교수의 대담 중에서)
변론요지서, 항소이유서를 그렇게 공들여 써봤자, 당시 판결에 전혀 반영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그렇게 열심히 쓴 이유는 뭘까요?
읽어라도 보라는 거지요.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어요. 나 혼자라도 진실을 밝혀놓지 않으면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죠. 또 그렇게 해서라도 피고인들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고 싶었어요.
변호사의 가장 큰 역할이 그거에요. 양심범들의 소신을 보호해주자, 소신을 꺾지 않는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 이것이 나의 주된 역할이라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