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인터뷰] 사회를 관통하는 부드러운 시선 – 김보슬PD 인터뷰

2011-05-26 238


[민변의 인터뷰]


사회를 관통하는 부드러운 시선 – 김보슬 PD 인터뷰


인터뷰_출판홍보팀 이재정 변호사
사진_출판홍보팀 6기 인턴 유재선


정리_출판홍보팀 6기 인턴 김민성



  방송국 PD를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특히 시사교양국 PD라고 하면 권위적이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이번 인터뷰는 진정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 되는 <PD수첩>의 대표적 인물, 김보슬 PD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태도로 꽁꽁 얼어 있었던 기존의 편견을 사르르 녹여 준 솔직하고 유쾌한 그녀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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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그 후 3년.



민변 <PD수첩> 소송 이후에 지금은 <불만제로>를 맡고 계시는군요.



김보슬PD(이하 김) 조연출 생활을 4년 거친 이후 정식 PD가 되어 <화제집중>을 거쳐 <PD수첩>을 맡게 되었어요. <PD수첩>에서 오래지 않아 일이 터졌죠. <PD수첩>은 프로그램 자체가 가지는 힘이 있어 부담이 되고 의무감이 커요. 좋은 아이템을 해서 뭔가 이슈가 되어야지 프로그램을 하는 보람이 있는데 <PD수첩>이 그런 면에서 힘들죠. 주말도 없고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늘 나와서 일하는 사람들이 <PD수첩> 팀이에요. 나중에 그렇게 일이 터지고 나서 더 상황이 복잡해 진 후로는 오히려 제가 있으면 팀원한테 민폐를 끼치게 되더라고요. 저를 빼고 제작하다보니 팀원들이 힘들어 지는 것 같아 다른 팀에 가서 일해야 할 것 같다고 빼달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불만제로>로 가게 되었어요.



민변 (광우병 소고기 편 이후로) 김보슬이라는 이름 옆에 <PD수첩>은 평생 타이틀이 될 것 같아요. 아직 해결은 되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힘들었거나 뿌듯했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뿌듯하다기보다는 일종의 꼬리표가 된 느낌이에요. 언젠가 <PD수첩>을 다시 하게 될 날이 올 수 있겠지만, 지금은 부담스럽기도 해요. 어떤 분들은 <PD수첩> 당시 방송 때문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의문을 갖기도 하시죠. 그런 편견으로 저를 보시지 않았으면 해서 먼저 그렇게 얘기를 꺼내지는 않아요. 이게 이겨 내야 할 어떤 대상, 언젠가는 극복해야할 꼬리표 이렇게 남아있죠. 지금은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대처법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향후 몇 년간은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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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대통령께서 반성하는 사람도 없다고 그러셨는데.(웃음) 어떻게 광우병 쇠고기 사건에 대해서 ‘반성’하셨나요?



사실 저희는 지금까지도 방송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작과정에서의 실수가 부풀려져서 검찰 기소가 된 거죠.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지만 그것도 ‘그래. 프로그램 하나하나 더 꼼꼼히 조심히 만들어라’라고 한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 이후로 번역하면 PD들이 눈에 불을 켜고 더 신경 쓰고 하나라도 더 보죠.


민변 법정에서도 검찰은 이미 ‘유죄다’라고 확정지어놓고 몰아가는 식이었다고 하던데요?



그렇죠. 법정에서 재밌는 일이 많았는데요. ‘참 음모론을 가지고 뭔가를 계속 엮으려고 하는구나!’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검찰수사를 받을 때도, ‘이걸 이렇게 짜깁기 하겠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법정에 가서 진위를 따지는데 저희 측에서 이런 저런 증거자료가 나오니까 검찰이 기존에 생각했던 거랑 다른 길로 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번역가가 자기는 똑바로 했는데 <PD수첩> 측 뜻에 맞게 오역해서 했다고 하더라’라는 검찰의 주장에 그렇지 않다는 다른 작가의 증거자료를 제시하니 ‘하. 정말 그렇다고요?’하면서 계속 한숨을 쉬는 거예요. 심문하기 전부터요.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니까 짜 맞춘 증거가 생각대로 되지 않잖아요. 당황한 거죠.



민변 사람들은 오역에 집중하는데 사실 문제의 본질은 정책 집행자에 대한 명예훼손이었잖아요. 프로그램의 특정 부분이 사실과 다르기 때문에 법원에 간 게 아니죠. 이건 말 그대로 언론 탄압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나중에야 우리가 옳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문제는 이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났다는 거죠. 사람들은 무죄임이 밝혀졌다 이런 건 보도가 잘 안되니까 모르잖아요. 어떻게 이런 일로 기소를 하는지. 그나마 내가 언론인이니까 그래도 이만큼 사람대접 해주지 정말 힘없는 사람들이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검찰이 노린 효과는 충분했고 목적을 달성했다고 봐요.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을 기소하면서 ‘뭔가 잘못 했네’ 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언론에 대한 위협을 가하면 결국 언론 전반에 걸쳐 위축현상이 나타나게 되죠. 저만 해도 소송 이런 것 이제 지긋지긋해요. 다시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일단 피하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어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 할거에요. 그 이후 편파적이라는 말이 있어서 자기 검열을 정말 열심히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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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처음 소환에 응하시지 않으셔서 체포가 되셨는데 그 때 또 이슈가 되었던 이유가 결혼식을 며칠 앞둔 시점이었잖아요.



결혼식 날짜 잡을 땐 그렇게 될 줄 몰랐죠.(웃음) 그때 결혼식 날짜가 4월 19일였어요. 한 달 정도 결혼식을 남겨놨지만 결혼 준비는 하나도 못했죠. 정말 괴로웠어요. ‘앞으로 나는 며느리가 되는데 이를 어째’ 하면서요. 결혼식 직후에 잡혀갈 것인가 그 전에 갔다 올 것인가 고민하다가, 4월 15일 밤에 나가기로 결정을 했어요. 긴급체포가 48시간이니까 17일은 안되고 18일은 결혼식이잖아요. 핸드폰 위치추적 때문에 밖으로 나온 건 알았겠죠. 웨딩드레스도 못 고르고 함이나 예물 이런 것도 못해서 하나씩 하러 갔어요. 그러다가 검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김PD님 대충 다하셨으면 오시죠.’라고.

민변 경험으로 비추어 본 검찰은 어떠셨어요?



솔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법을 공부한 사람은 법에 맞게 행동 해야죠. 특히 검찰은 자신들의 정치 철학으로 일 처리하면 안 되죠. 우리는 국민이잖아요. 검찰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것이 우선이구요. 물론 좋은 일하시는 검사도 많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편향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신경민 아나운서가 <PD수첩> 수사한다고 했을 때 클로징 멘트로 ‘같은 형법을 공부했는데 누가 잘못을 배운 걸까요.‘ 라고 하셨는데 정말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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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MBC는 ‘투쟁 중’



민변 올라오면서 보니까 로비에 자보도 붙어있고 피켓도 많더라고요. 지금 사내 분위기가 흉흉한 거 같아요. 김재철 사장 올 때부터 문제이긴 했지만 근래 이렇게 이슈가 되는 이유는 뭔가요? 우선 사정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저희가 김재철 사장을 반대한 것은 정치색이 보였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파업이 길어지면서 계속 MBC가 망가져 있으니 정상화한 거죠. 총선과 대선이 남은 시점에서 앞으로는 더욱 강하게 나올 것이라 예상돼요. 주로 인사이동으로 일을 해결 하는데 그걸 보면서 인사가 무서운 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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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노조의 대응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예정 인가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죠.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겠죠. 마음 같아서는 뭐든 못하겠냐만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아주 열심히 싸우고 있어요. 사실 급하진 않거든요. 그래서 천천히 하자. 이렇게 다독이고 있죠.



민변 자본주의적인 경영 마인드만 있어도 하지 않았을 일들을 저지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같은데요.



솔직히 <PD수첩>은 MBC간판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시청률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아니잖아요? 저번에는 소외계층에 관련한 아이템 하려고 했는데 시청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김미화씨 방송이 시청률 1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시청률보다도 ‘색’이 먼저라는 느낌을 받지요. 김미화씨 나간 이후에 광고가 엄청 많이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김영희 PD 경질될 때 임원진의 결정은 전무한 일이었어요. 김영희PD 본인이 직접 떠나셔서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바로 바꿀게 아니라 기회를 줘야죠. 라디오 MC, 교체 될 수 있죠. 하지만 늘 지금까지 MC를 정하고 나서 교체했어요. 요번에는 담당 PD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쫒은 거구요. PD들이 받고 있는 상처는 정말 커요. 지금 MBC는 부글부글 폭발 일보직전이에요.



MBC에서 간판 PD라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나갔어요. MBC의 힘은 MBC를 사랑하는 마음과 창작의 자유권, 창의성을 보장해주는 사내 분위기 였는데 말이죠. 갑자기 경영진이 PD를 교체해 버리지 않나 잘 나가는 프로그램 MC를 바꾸지 않나. 그동안의 가치에 위배되는 부분들이 참 많았어요. 그래서 되게 상실감이 컸을 거에요. 이곳에는 내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겠구나 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누구보다 MBC를 아꼈던 사람으로서 배신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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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줄기세포 사건, 광우병 관련 취재 등 우리가 예상할 수 없었던 큼직큼직한 보도로 언론인은 무엇인가를 보여준 김보슬 PD. 그녀는 어떻게 해서 PD라는 꿈을 갖게 되었을까?



민변 예전에는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기자라고만 생각했는데 <PD수첩> 같은 또는 화제집중과 같은 프로그램은 기자 이상의 저널리즘을 담당하는 거잖아요. 저널리스트를 꿈꾸시다가 PD가 되신 건가요? 왜 PD가 되셨어요?



프로그램 만들고 방송 일 하는 게 재밌었어요. MBC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었어요. 프리랜서 조연출 개념이랄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 당시 보도 제작국 다큐멘터리를 맡아서 했죠. 예능국 PD보다는 이쪽이 맞는 것 같았어요. ‘정규직이 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도 PD가 될 수 있지만 시험을 보고 정식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에 떨어졌으면 봉사활동을 하면서 살았을지, 수녀가 됐을지 모르죠.(웃음)



민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저널리스트로서 지녀야할 용기가 각별히 필요한 것 같아요.



용기도 용기지만 그건 경험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PD라는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자체가 안정적인 역할이 아니라 별일을 다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자기 나름의 노하우가 쌓여요. 하지만 이 일을 하기에 성격이 정적인 사람은 힘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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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지금 진행하고 계신 다큐는 어떤 내용이에요?



지금요? 지금 정치인의 부인들. (재밌을 것 같은데요?) 찍고 있어요.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하고 있어야하나.



민변 정치인의 부인에 대한 컨셉은 PD님이 직접 기획하신 건가요? ‘야사’잖아요. 아무래도 남자 정치인 얘기는 딱딱하지만 부인 얘기는 이야기 거리도 많고 좋은데요? 어떻게 그런 아이템을 생각하시게 됬어요?



정치인만 방송 나오는 거 재미없잖아요. 그들의 삶을 다시 재조명 해보고 싶었어요. 되게 올드한 자세로 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남편이 정치하는데 도와줘야지’라는 생각. “한 표 꼭 주세요”라고 말하며 뛰어다니고 정치인이 된 다음에는 각종 행사에 불려 다니면서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했죠. 그 사람들도 분명히 자신이 가지는 포부나 역할을 찾아야 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민변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 됐어요?



초반이에요. 사모님을 섭외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웃음) 방송은 6월 24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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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김보슬에서 ‘아줌마 김보슬’로.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결혼. 요즘 김보슬 PD는 자신과 남편을 꼭 빼어 닮은 아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일과 가정 모두를 꼼꼼하게 챙기는 그녀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민변 남편 분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동거남이요?(웃음) 동거남은 박중석 PD님이에요. 선배에요. 프로그램에 대한 조언도 하시고 하는데. 프로그램 같이 한건 황하라는 다큐로 제가 조연출을 맡았었죠. 그때는 무서운 선배였는데. 처음에 입사했을 때 저사람은 성격이 왜 저러는거야. 우악스럽네. 이랬는데 말이죠. 되게 차갑고 엄격하고 그런데 잘 챙겨주기도 하고 어쩔 땐 유하고 그래요. 같이 있는 시간이 길었고 조연출하다보니. 이런 면이 또 있네 이런걸 알게 되고 그 이후엔 뭐 한 두 번 만나면서 누구나 그렇듯.(웃음)



민변 결혼 즈음에 힘든 일이 겹쳤지만 그래도 좋으셨을 거 같아요.



저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제가 더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PD라는게 뭔지 알고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고통이 참 얼마나 크다’라는 걸 아는 사람이었죠. 말도 안 된다는 일이라는 것도 알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마웠고 제가 버틸 수 있었어요. ‘이럴 땐 이렇게 해야 돼’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고요. 직업이 같고 선후배 사이다 보니까 서로 아이디어도 많이 주고받는 편이에요.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도 하구요.(웃음)

민변 아이는요? 아이가 생기니까 어떤 게 바뀌나요?

하아. 애가생기니까 인생이 바뀌어요. (한숨을 먼저 쉬시네요?)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해요. 빨리 퇴근하고 가서 얘기를 봐야 되고 어느 정도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걸 해줘야 되요. 주말에 필요할 때 아무 때나 나와서 일을 못해요. 그래서 요즘 집중력이 엄청나요. 빨리하고 가야되니까 서둘러서 막 하고 집에 가고 그래요.



민변 예전과 변함없는 미모이시긴 한데 지금 김보슬 PD님 보면 편안함, 안정감 이런 느낌을 받아요. 예전의 프로페셔널한 새초름한 아가씨 PD에서 지금은 가정의 냄새가 난달까요?



애 엄마가 됐어요. 솔직히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나도 내 맘대로 일도하고 싶고 원래 하던 대로 자유롭게 나가서 놀고 싶고. 그런데 자꾸 애가 건드리는 거예요. 그래 내 자식이니까 나에게도 책임이 있고 내가 어떻게든 맞추면서 살아야지라는 형식으로 바꿔나가고 있죠. 아이가 있는 건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건 받아들이려고 하고 남편에게 요구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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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민변 20주년 특집 사람이 희망이다‘ 기획하면서 민변과 인연이 시작되셨는데요. 민변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가요?



사실 민변이라는 프로그램 제작 때문에 민변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요. 민변은 한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죠. 특히 촛불 집회 때 민변 변호사들이 나와서 활동하는 거 보고 ‘세대가 참 많이 바뀌었구나’ 느꼈어요. 또 민주화 투쟁 이후에 새로운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고요. 독재에 저항한다거나 이런 정확한 목표가 없는 민주화가 된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어요. 또 소위 말하는 대형 로펌이나 거액을 받고 변호사가 되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서 좋았구요. 법조계가 그런 사람들로 채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판결문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판사가 필요하죠. 법조계의 사람으로서 돈이나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명감이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민변 뉴스레터는 내부용으로 발행되고 받아 보시는 분들은 광우병 헌법소원청구인단들이에요. PD님 덕분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던 분들이죠. 3년이 지난 이 시점이 광우병이라는 단어는 우리와 다소 멀어졌지만 누구나 가슴 속에는 촛불을 기억하고 있잖아요. 독자 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시겠어요?



저는 사실 광우병 PD라는 꼬리표를 좋아하진 않아요. 그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잘 못되었다는 문제를 제기한 건데요 뭐.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건 당장의 죽음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자존심, 내 아이의 건강권, 미래에 대한 염려로 이루어진 거죠. 또 인터넷으로 인한 파급력도 대단했구요. 재판하고 무죄를 받았던 것은 <PD수첩>에 대한 무죄이기도 하지만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무죄이기도 해요. 이 정부는 당신들이 속였지만 당신들이 옳았다고 판결을 내린거죠. 그래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짐을 좀 벗었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판결은 저에게 그런 의미가 있어요. 저는 PD에요. 여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저를 광우병 PD가 아닌 그냥 PD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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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슬 PD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을 진실 그대로 보도하고 다른 이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일들을 먼저 찾아내 사회에 고하는 것이 진정한 저널리스트, 언론인의 의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할 수 있게 되었다. 김보슬 PD와 대화를 하면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정직함과 솔직함이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다 보니 이런 직업에 흥미를 느끼고, 지금까지도 스스로와 사회를 위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렇게 애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솔직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발로 뛰는 사람.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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