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5월 11일 국회에서는 천정배 의원실에서 주관하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중소자영업 침해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발제자로 참석하였던 민생경제위원회 박정만 변호사가 후기를 전합니다.
공정이 녹슨 자유의 칼날
글_민생경제위원회 박정만 변호사
1. 반칙(反則)
미국 야구에서 메이저리그 팀과 마이너리그 팀이 한 판 붙으면?
이변이 없는 한 메이저리그 팀이 이기겠지요. 왜 그럴까요? 팀의 실력이 ‘우수’하니까 그렇겠지요. 메이저리그 선수 하나 하나에 투자되는 비용도 어마어마하고 이미 마이너리그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선수들이 메이저로 올라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팀이 자신의 승률을 높이기 위하여 자꾸 마이너리그 팀과 경기를 하려고 한다면? 그건 반칙이라 할 수 있겠지요. 왜 반칙일까요? 간단합니다. 메이저는 메이저와, 마이너는 마이너와 싸움을 하는 것. 그것이 ‘룰(Rule)’이고, 그것이 ‘공정(Fair)’이니까요.
불행히도 이런 간단한 원칙이 한국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된 이후 재벌들이 유통부분 계열사를 증대시키면서 영세중소상인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일반시장에까지 침입을 하는 ‘반칙’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market)이 바로 그것이죠.
2. 소비자선택권을 무기로 한 폭발적인 시장잠식
대형마트와 SSM이 우리나라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현황을 통계로 살펴보면 가히 놀랄 지경입니다. 먼저 대형마트 매장수의 경우 2005. 당시 이마트 79개, 홈플러스 40개, 롯데마트 43개였던 것이 5년후인 2010. 10.에는 이마트 127개, 홈플러스 116개, 롯데마트가 86개까지 늘어났습니다.
SSM은 더 합니다. 2005. 당시 롯데슈퍼 46개, 홈플러스익스프레스 21개, GS슈퍼 80개였던 것이 2011. 5. 현재 각 287개, 244개, 175개까지 늘어났으니까요. 그야말로 폭발적인 증가추세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 대형마트와 SSM 성장의 원동력에는 ‘소비자선택권’이라는 그럴듯한 함정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다 싸고, 좋은 품질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업가정신이라며 선전을 하는 것이죠. 문제는 ‘통큰치킨’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들도 여기에 열광을 한다는 것입니다.
3. 소비자 선택권에 의하여 경쟁의 낙오자가 사라진 후
결국 시장에서 수 십 년 동안 장사를 해왔던 상인들은 쫓겨나는 것도 서러운데 ‘경쟁의 낙오자’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들 중소 영세 상인들이 마트에 밀려 사라지게 되면 언젠가는 동네에서 외식을 하거나 간단한 생필품을 사려해도 차를 몰고 대형마트 주차장까지 가야 하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요? 논리적비약이 좀 심한가요?
예전에 그 많고 다양했던 제과점들이 다 죽고 대한민국의 제과점 대부분이 하나의 명칭(OO바게트)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이러한 예측이 허무맹랑하다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소비자선택권에 기초하여 자유경쟁을 하였는데 종국적으로는 소비자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이상한 결론에 닿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필자도 한참을 생각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공정성 때문이더군요. 즉, 메이저는 메이저끼리, 마이너는 마이너끼리 공정하게 경쟁해야 하는데 이러한 공정성이 허물어져 마이너는 모두 죽고 메이저만 남게 되는, 결국 소비자들은 메이저의 상품만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껏 재벌들이 단골로 인용했던 ‘소비자선택권’이라는 말은 바로 자신들의 불공정한 시장진입을 감추기 위하여 그럴듯한 낱말로 위장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4. 시장분리정책의 필요성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중소기업팀은 중소상인살리기 전국네트워크 및 참여연대와 연합하여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였고, 대형마트와 SSM이 무분별하게 확장하지 못하도록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필요성, 대형마트의 영업시간규제, 중소상인적합업종지정제도의 도입을 대안으로 내세운 후 대외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2011. 05. 11. 국회에서는 천정배 의원실에서 주관하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중소자영업 침해 이대로 둘 것인가?’라는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옳다는 판단이 서면 바로 실천하는 민변 선배 변호사님들의 전통을 따라 낯가림 심한 필자도 처음으로 공개적인 석상에서 발제를 하였습니다. 발제 내용은 주로 시장분리정책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1,000㎡이상의 점포가 들어설 경우, 주민설명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거나 지역 상인들의 허가를 얻어 개설하도록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유통법은 규제의 시작점을 3,000㎡로 하고 있으며 주민설명회도 없고 그나마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와 SSM이 무분별하게 난입하여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있다.
따라서 유통법의 개정필요성은 물론 정부가 도매, 소매, 음식점업 등 중소상인 적합업종을 지정하면 대기업이 들어올 수 없게 하는 특별법안을 마련하여 시장분리를 통해 중소상인을 육성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나아가 대형마트와 SSM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휴식권과 건강권 및 불필요한 전력사용으로 인한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대규모점포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적으로 휴업을 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여야 한다.
5. 지속적인 연대활동
사실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첫 발제라 발발 떨렸습니다. 김남근 변호사님이 떨고 있는 필자를 보시고 ‘데뷔(Debut)할 때는 다 그래’라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공정의 뒷받침이 없는 자유는 필연적으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는 칼날이 된다.’는 말을 끝으로 데뷔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자유의 이름으로 중소 영세 상인을 죽여가고 있는 대기업의 문제점과 ‘소비자선택권’은 재벌들이 자신의 불공정성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중소 상인 분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논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국회의원과 면담을 하면서 법안발의를 제안하려 하는데 낯가림이 심한 필자는 또 벌써부터 떨리기 시작하네요. 이거 원 술 깨는 음료도 나오는데, 낯가림 깨는 음료는 안 나오나! 술 한 잔 걸치고 가야할까요?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