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조건을 통찰한 유중원 변호사의 순수 장편소설 『사하라』

2011-05-17 165


 



■ 사하라


유중원 지음 | 글누림 펴냄 | 336쪽 |


 


인간 삶과 죽음의 조건, 인간의 운명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해 끊임없이 통찰해온 작가 유중원의 첫 장편소설. 작가는 사하라 여행 중 뜨거운 모래 속으로 사라져간, 한 고독한 사막 여행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생과 운명의 의미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그는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실적인 전개와 정확한 세부 묘사를 보여주며, 이를 통해 진지하고 성실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작품을 선보인다.


 


■ 저자소개 


소설 쓰는 변호사 유중원(柳重遠)


그는 늘 해맑게 웃는다. 이른 봄날 오후의 부드러운 햇살처럼 말이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젊은 시절 한때 은행원 생활을 하였고 그 후에는 평생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동시에 여러 법조 단체, 민변, 참여연대 등에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였다.


전남대 법대 졸업, 동국대 대학원 수료(법학박사), 제18기 사법연수원 수료, 한국외환은행 근무, 서울지방변호사회 이사․사무총장, 법제위원장․권익복지위원장, 대한변협 대의원․이사, 기은복지재단 감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감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서울지방법원 조정위원, 기업은행 고문변호사, 법무법인 한결 파트너 변호사, 국민대 법대 교수, 국민대 금융법연구소 소장, 인권과 정의 편집위원, 법률신문 논설위원, 한국무역학회 이사․부회장, 한국국제상학회 이사․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국제거래와 신용장거래, 금융거래, 어업권 소송의 전문 변호사이다. 대학이나 변호사연수원, 증권금융연수원 등에서 오랫동안 이 분야를 강의하였고, 이들 분야에서 12권의 법학 전문서와 90여 편의 학술논문과 판례평석을 발표하였다.


『신용장의 법리』(육법사, 1993.), 『축조…해설 제5차 개정 신용장통일규칙』(육법사, 1993.), 『신용장론』(육법사, 1997.), 『실무서식 계약총람』(상?하, 육법사, 1999.), 『국제무역의 법리연구』(법률문화원, 2005.), 『국제무역과 판례』(청림출판, 2005.), 『신용장-법과 관습』(상?하, 청림출판, 2007.), 『어음수표법』(법률문화원, 2008.), 『운송증권』(법률문화원, 2009.) 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60이 넘어서야 철들고 비로소 세상이 잘 보이기 시작하였다. 論語의 六十而耳順이라는 말이 딱 맞다. 이제야 소설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조건을 통찰한 첫 장편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성실한 자세로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붙들고 씨름할 것이다. 하지만 위축되지 말고, 회의적이어서도 안 되고, 강한 자신감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 작가의 말


나이가 드니 이제서야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고 세상일에 조금 눈을 뜨게 된다. 論語의 六十而耳順이라는 경구가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꼭 쓰고 싶다면 이제는 소설을 잘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나이에 무슨 소설을 쓴다고 하면, 소설작가가 되겠다고 우기면, 누군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겠는가? 남들은 20대에 등단해서 젊은 시절 한창 문명을 날리고 60대쯤이면 벌써 반 은퇴하여 원로 대접을 받는 데 말이다.


내가 4년 전쯤, 이 작품의 초고 30매 정도를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진지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결 같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본업인 대학교수나 변호사 일에 전념하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쏟아냈다. 그들 모두가 문학에는 거의 무지막지한 수준의 동료 변호사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 막역한 후배인 Y변호사를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형님, 제발 그만 두세요. 유치한 짓 그만 두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노망들었다고 욕할 거예요.” 하면서, 노골적으로 핀잔을 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취중진담이라고나 할까. 나는 아연실색 하였다. 내 하찮은 소설이 아니라 무릇 인간의 한심함 때문에 오랫동안 절망하였다.


그러나, 그런 노골적인 야유도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말랑말랑한 감성적인 글을 쓰는 일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학술논문이나 법학 전문서를 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우선 글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교류하면서 서로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손으로 고통스럽게 쓰면서 내 몸과 글이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그 운율 때문에 감탄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말이 그렇게도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모르고 살아 온 것이다.


 


강남역 1번 출구. 낡은 회색 건물. 10층 구석 방.


그 방은 남향이여서 고층 빌딩 사이를 뚫고 침입한 햇빛이 늘 찬란하였다. 그 빛의 수다스러운 달변이 나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때 사악한 죄악을 마음속에 획책하고 있었던가. 패배는 인간의 영혼에게 승리보다 깊게 침투한다. 그 경이로운 빛이 나의 가슴 속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 방에서 지난 4년여 동안 김규현 상무의 비극적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 100여 권이 넘는 참고서적을 자세히 읽었다. 그리고, 쓰고 또 고쳤다. 읽고, 쓰는 일처럼 유쾌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한 문장을 완성하고 마침표를 찍을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마침표는 배가 항구에 도착하여 바다 밑바닥으로 던지는 무거운 닻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늘 불만족스럽다.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을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려 살아온 셈이다. 종이 냄새를 사랑하였다. 그러니, 변호사들의 필수품인 골프, 바둑이나 포커, 고스톱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문명의 이기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글을 잘 쓰는 일은 항상 버겁다.


 


난, 지난 25여 년 동안 한 주에도 수십 장의 글을 썼다. 변호사의 주업무인 소장이나 답변서, 준비서면, 가끔 형사 고소장, 법률의견서 등을 쓰는 일 말이다. 그 이외에도 나의 주전공인 국제거래와 신용장거래, 금융거래와 관련해서 제법 두툼한 법학전문서 12권, 이들 분야에 대한 90여 편의 학술논문과 판례평석을 발표하였고,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200여 편의 사설과 기타 칼럼을 갈겨썼다.


그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너무나 직설적이고 명쾌하며,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되는 논리 정연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세상만사, 인생사 중에서 어느 것 한가지인들 그렇게 명쾌하고 논리적일 것인가. 모두가 불분명하고 확실치 않은 것 투성이일 뿐이다. 인간 삶의 조건 역시 의문투성이인 것이다. 그러니 주식투자도, 사람 사는 일도 고달픈 것이다.


나도 지금쯤은 그 지겨운 흑백논리의 멍에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세상의 허공에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없겠는가.


왜, 하필 사막 이야기인가.


사막에는 완벽한 침묵이 존재한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귀중한 말은 침묵이다. 그곳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언어가 되기 전에 먼저 침묵과 조우한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황량한 사막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대지에서 울리는 느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그 사막은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는 주술적 마력을 갖고 있었다. 초인간적인 대지의 기운이 엄청난 힘으로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요즈음의 경박한 세상에는 하찮은 일상을 지저분하게 늘어놓은 수필이나 에세이류, 여행기 또는 신변잡담을 무슨 의식의 흐름 수법이라는 그럴듯한 미명 하에 주절주절 써놓은 일기장 같은 소설,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강박관념이 든 나머지 얼토당토 않는 해괴망칙한 소설들이 넘쳐 난다.


지금 우리 소설들은 이야기는 너무 빈약하면서 변곡점에서 느닷없이 또는 지나치게 비틀어서 탈이다. 이제는 소설의 본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소설은 이야기일 뿐이다. 장편소설은 좀 더 긴 이야기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세부 묘사를 통하여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앞뒤가 잘 들어맞는 꽉 짜인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소설은 현실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성실해야 한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의 오랜 경험은 인간 내면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삶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으면 삶에 대한 희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잃은 후에야 겨우 뭔가를 깨닫는다.


나는 인간 삶과 죽음의 조건, 인간의 운명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존재들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탐구할 생각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 안에 죽음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고 죽음의 시작이 삶이다. 죽음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이 소설의 전체적이건 또는 사소한 것이건 간에 모든 줄거리는 픽션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상황 또는 배경은 대부분 실제 사실관계를 토대로 하였다.


아프리카와 사하라, 아라비아 반도, 지중해, 아마존 강 유역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콩고 강 유역의 열대다우림,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사막, 아랍 민족, 이슬람교, 투아레그족, 낙타, 사자 등에 대하여 국내외에서 나온 수많은 훌륭한 저서들(역사서, 전기, 여행기, 종교 서적, 지리학 책, 인문학 책, 전문 잡지 등)을 참고로 하였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 아니고 논문이나 학술서이었다면 그 각주를 몇백 개쯤은 달아야 했을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작가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법무법인 한결의 송보라 님과 법무법인 사람과 사람의 김미정 님께 감사드린다. 또, 이 소설을 흔쾌히 출판해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최종숙 대표와 이태곤 편집장, 편집부 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김규현 상무님과 작별인사를 할 차례이다.


이 고독한 사막 여행자는 가벼운 알코올 중독자였고 평생 동안 폐쇄 공포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였고 깨끗한 삶을 살았다.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막은 성지였고 그는 성지 순례자였다. 그는 2000년 7월 사하라를 여행하던 중 사막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2000년 뜨거운 여름은 그때 모래 속에 묻혔다.


그의 고결한 영혼은 지금도 빛나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면류관처럼 머리에 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하라의 모래언덕 위를 사뿐사뿐 걸어갈 것이다. 아니 깃털보다 더 가벼운 그의 영혼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날려서 여기저기 가볍게 떠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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