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소식]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다녀와서

2011-04-26 73

[민변의 활동]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다녀와서






글_출판홍보팀 6기 인턴 김민성 


  2010년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끔찍한 성폭력 사건이 많이 일어나 어두웠던 한 해였다. 조두순, 김길태, 김수철 등 피의자의 이름으로 명명되어지는 성폭력 범죄들은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그 충격은 아직도 우리 가슴에 잊지 못할 상처로 남아 있다. 이러한 사건들로 생겨난 피해자들은 어떤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지난 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인턴 동기들과 상근 간사님, 시보님들과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를 함께 방문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입구이다. 여느 조용한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처럼 길 한편에 눈에 띄지 않게 위치해 있었다. 입구에 있는 동그란 간판도 나름대로 신경을 쓴 부분인 듯 했다. 예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이렇게 현판을 강조하지 않음으로서 이곳을 찾는 피해자들이나 방문자들에게 성폭력 상담센터라는 곳의 방문 자체에서 들 수 있는 거부감을 낮추려고 한 배려심이 엿보였다. 실제로 이곳의 상근 활동가분들에게 여쭈어보니 몇 달 전 사무실의 인테리어를 대대적으로 바꾸었지만 앞의 이유로 간판을 바꾸려는 생각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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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은 아담하고 깔끔했다. 특히 사무실 내부에 ‘~상담소’라는 방이 여러 개가 있었다. 상근 활동가들은 모두 여성이었고 사무실에서 함께 있지는 않지만 법률적 자문을 받거나 함께 협력해 일하는 변호사가 9명이 있다고 한다.


  여성이나 사회 취약계층에게만 가까워 보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민주시민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을까?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사무실 지하에 있는 회의실로 내려가 담당 활동가님께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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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20주년을 맞게 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긴 기간 동안에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 사회의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이 NGO단체가 시작되게 된 이유도 성폭력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성폭력에 피해를 입은 한 여성과 그 주변인들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이 단체를 만든 것이다. 활동은 크게 성폭력 상담/교육/법제도개혁 운동으로 나눠진다. 더불어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문화·교육 운동에 주력하며 피해를 막기 위한 사전 활동도 하고 있었다.  


  센터에서는 성폭력이 우리에게 일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성차별적 사회규범과 가부장적 성문화에 밀접하게 관련되어있음을 지각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을 조장하고 여성을 위축시키는 잘못된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한 성폭력피해생존자 말하기 대회, 달빛시위(밤길 되찾기 캠페인), 여성주의 자기방어·욕망찾기 프로그램 등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여성주의 자기방어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힘을 기를 수 있게 하면서 삶 안에서의 자신과 자신의 성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게 하고 자기 이해를 돕기 위한 ‘꿈’이라는 프로그램도 꾸려가고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로 인해 생활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과 생활 터전을 제공 해주는 부설기관인 ‘열림터’를 개설하여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열림터에서는 친족 성폭력으로 인해 갈 곳이 없거나 어린나이에 피해를 입었음에도 부모가 충분히 아동을 도울 수 없을 경우에 와서 머물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한다. 이곳은 청소년과 20대 초반의 여성이 주가 되어 생활하고 있고 미혼모도 있다.


  다른 강력범죄와는 달리 성범죄는 강자와 약자의 구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에는 아동과 여성은 물론이거니와 군 내부 성폭력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러한 성 차별적, 계급적 사회 안에서 약자는 더욱 약해 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큰 문제를 가진 사회 속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별과 생김새에 상관없이 이러한 현실을 변화시키기를 요구하고 있다.


  활동가님의 설명을 들으며 놀라웠던 부분은 상담소에서 성폭력 피해자뿐만이 아닌 가해자를 위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상담소에 ‘나는 죄가 없어요.’하면서 찾아오거나 ‘내가 죄를 지었는데 이제는 나도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죄를 뉘우치고 싶다.’며 찾아오는 가해자도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흔히 가해자를 떠올릴 때 얼굴을 다 가린 복면을 쓰고 있거나 흉악한 생김새의 사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피해자의 모습이 다양한 것처럼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도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 상담소에서는 인간으로서 가해자에게 다가가 아픔을 완화해 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 상담 시에는 최대한 피해 당사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해결하려 지원하고 있다. 단순 심리 상담을 제공하거나 심리 상담과 더불어 법적조치 까지도 도움을 준다. 최근 소위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리는 성폭력 사건에서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몸이 불편한 피해자를 몇 시간 동안 방치해 놓고 실수로 녹화된 파일을 날려 몇 번씩이나 심문했다. 어떤 경우엔 남자 경찰관에게 말하기 수치스러워 여자 경찰관에게 이야기 했더니 도리어 ‘조심하지 그랬냐.’ 라는 핀잔을 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성별과 지위에 관계하지 않고 피해자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상담소에서는 경찰 수사 개선운동을 하거나 사법 연수원과 경찰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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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성폭력 ‘피 행동자’ 라는 이름으로 아픔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나는 진정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Victim이 아닌 Survivor.’ 성폭력상담소 2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책자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이었다.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닌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능동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보듬어주는 이 단체에서 나는 시민을 위한 교육의 수단인 NGO만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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