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국정원의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청구
류제성 변호사
민변은 2011. 3. 29(화) 오전, 국정원의 패킷감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주심 이광철 변호사). 국정원은 과거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는 김형근 교사에 대하여 재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패킷감청’을 실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정원은 휴대전화 통화내역 제공, 휴대전화와 인터넷에 대한 실시간 위치추적, 우편물 검열 및 전화와 대화에 대한 감청은 물론 이메일 압수수색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김 교사를 감시하였지만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패킷감청’이다. ‘패킷감청’이란 인터넷 전용회선 전체에 대한 실시간 감청을 의미하며, 감청 대상이나 내용을 특정하여 감청할 수 없다는 점에서 특히 인권침해적인 감청 기술이다.
패킷감청을 이용하면 대상자가 인터넷을 통해 접속한 사이트 주소와 접속시간, 대상자가 입력하는 검색어, 전송하거나 수신한 게시물이나 파일의 내용을 모두 볼 수 있다. 이메일과 메신저의 발송 및 수신내역과 그 내용 등과 같은 통신내용도 모두 볼 수 있다. 패킷감청은 피의자의 컴퓨터를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것이므로 피의자가 접속하는 모든 웹페이지 주속의 목록과 이동경로 및 로그인 정보, 해당 웹페이지에의 접속한 시간과 기간, 컴퓨터를 켜고 끈 시간 등 가장 정확한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손쉽게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즉 통신사실 확인자료의 요청을 위한 별도의 허가서도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피의자가 만약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면 허가서에 없는 전화통화까지 들을 수 있고, 나아가 피의자가 패킷화된 데이터를 사용한 IPTV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면,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보고 있는 TV프로그램을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패킷감청에 대한 법원의 허가는 사실상 ‘포괄적 백지 허가서’를 발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패킷감청은 피의자뿐만 아니라 그와 통신을 한 사람들의 통신의 자유 및 사생활의 비밀 자유까지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특히 패킷감청은 피의자와 대상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의 회선을 여러 사람이나 여러 대의 컴퓨터가 공유하는 현재의 인터넷 환경에서, 밖에서 감청하는 입장에서는 현재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회선을 사용하는 사람이 피의자인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패킷감청을 통한 자료가 재판에서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제출된 바도 없다. 결국 정보수사기관이 패킷감청을 하는 것은 범죄수사를 위한 증거수집이 아니라 사찰과 감시를 위한 광범위한 정보수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의 감청 그 자체도 문제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공식 집계에서도 국정원은 대한민국 전체 감청의 97%에 달하는 압도적 감청을 집행하고 있다. 국정원법상 국정원의 국내 범죄 수사가 제한받고 있음을 상기해보면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정보수사기관의 특성상 국정원의 무영장 감청이나 감청설비 등 많은 실태가 비밀에 쌓여 있다. 최소 2000년대 초반부터 실시되었다고 전해지는 국정원의 패킷감청 사실이 처음으로 드러난 것도 2009년이 되어서였다. 감청 기관의 감청이 적절하게 통제되고 있는지 이 나라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것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민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패킷감청을 금지함이 마땅하다. 민변은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에서 법원의 패킷감청에 대한 허가(통신제한조치허가), 법원의 허가에 근거한 패킷감청행위(통신제한조치의 집행) 및 패킷감청에 대한 허가의 근거규정인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 등을 대상으로 패킷감청이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에 위반되고, 통신의 비밀과 사생활의 비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번 헌법소원심판청구를 계기로 패킷감청의 위헌성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고 궁극적으로는 헌재의 위헌선언과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