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인터뷰] 민변의 공부모임, “끌리면 오라!” – 좌세준 변호사 인터뷰

2011-02-16 258



민변의 인터뷰, 좌세준 변호사




인터뷰 : 출판홍보팀 염용주 5기 인턴
정리 : 출판홍보팀 박형우 5기 인턴
사진 : 민생경제위원회 정규빈 시보

 


날씨가 조금 풀린 발렌타인 데이, 민변의 공부모임을 이끌고 있는 좌세준 변호사님을 만나러 법무법인 한맥으로 향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책장을 보고, 우리 인턴들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법학서적 반, 비법학서적 반으로 채워진 책장을 보니 변호사님의 ‘내공’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있었지요.
 이번 39호 뉴스레터에서는 좌세준 변호사님과 법과 인권 그리고 책에 관해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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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변호사로서의 삶


1. 인턴들끼리 모여 있을 때, 좌변호사님은 분명히 법대를 나오지 않으셨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학부 전공이 어떻게 되시나요? 나아가 변호사님의 대학시절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문제의식도 희미하고 책도 많이 읽지 않는데요..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책을 읽으시며 지내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만약 그렇게 느끼셨다면 이는 공부 모임 4년의 내공이 아닐까 한다. 100권 넘는 책을 읽으면서 내공이 쌓여 책읽기의 저력이 발휘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문학에 관심이 많아 문학을 전공하려 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읽었다. 지금 공부모임에서도 사회과학 및 인문 서적들을 읽고 있다.


대학생 때는 5공화국 시대에 85학번으로 대학을 다니다 보니 ‘창작과 비평’에서 출간된 시를 많이 읽었다. 결국 법학 공부 반, 문학 공부 반을 했고 이로 인해 고시 합격이 늦어진 것은 아닐까 한다.(웃음) 현 젊은 세대에 대한 ‘레디메이드’라는 우려와 비판은 글쎄, 괜한 것은 아닐까 한다. 예를 들어 트위터를 통해 본인들의 의사를 좀 더 잘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사고방식이 다양하고,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는다. 앞선 세대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많은 고뇌를 하고 있다.


1-1. 게다가 지금은 NGO학과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계신다면서요? 계속 공부하시는 이유와 앞으로는 또 어떤 공부를 하고 싶으신지요?


성공회대에서 2년 공부했고, 현재 논문만 남겨놓은 상태다. 여러 변호사들이 경영대학원, 특허대학원 등을 많이 다니시면서 본인 전공 및 관심 영역 연구 및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공부를 한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우선 몸담고 있는 민변이 NGO이고, 공부 모임을 나가면서 의지를 가지게 되었다. 2년 간 공부하면서 시민 사회 단체를 공부하시는 분들을 만나면서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시간들이 많았다.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고, 후배 변호사님들께도 꼭 “권하고 싶다”. 이 점을 특히 강조 부탁한다.


2. 연결되는 질문인 것 같은데 변호사가 되신 후 민변에 가입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아무런 고민 없이 2003년 연수원을 수료함과 동시에 민변에 가입했다. 민변 설명회를 참석하고 나서 갈등 없이 가입 원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법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모범적인 선배들이 일군 민변을 선망해왔고, 이것이 어떤 모임인지 확인하자는 차원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가입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민변이 나의 준거집단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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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주변론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글을 쓰셨는데.. 관련 자료들도 많이 갖고 계시고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와, 변호사님의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합니다.


연수원 수료하고 나서 천주교인권위원회에도 고민 없이 가입하였는데, 당시 천주교 신자 중에 처음으로 양심적 거부자가 한 분 계셨다. 항소심 변론을 맡으면서 사건을 직접 처음으로 변론하게 되었다. 이제 헌재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우리 사회도 이를 수용할 준비가 된 상태이고, 대체 복무제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군대가 무너질 것은 아니기 때문에 헌재를 신뢰하고 싶다.


3-1. 평화를 옹호하는 종교가 한 두개가 아니잖아요. 모두 평화를 옹호하는데, 만인을 다 포용하다 보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질문이다.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은 대만 사례에서 답이 나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고 해서 자신의 병역복무를 기피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악용하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기존 복무 기간보다 2배 이상 길고, 업무도 힘든데 굳이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선례가 거의 없다는 것을 다른 국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대체복무제 도입에 대한 국방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헌재와 대법원의 결정이 단순히 법리 판단이라는 부분도 있지만, 해당 제도(혹은 법)로 인해 사회적으로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는 노무현 정부 때 도입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되었는데, 이번 헌재는 이러한 점도 고려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체 복무제의 도입을 시도하다가 중단된 사유도 헌재 구두변론 과정에서 헌재 재판관들이 국방부 대리인들에게 질문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다. 충분히 6명 재판관의 위헌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사건이 아닌가 긍정적으로 기대해보고 싶다. 사실 양심적 병역 거부 때문에 많은 수감자가 존재한다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제적으로 OECD 국가인 점을 내세우고자 한다면, 이번 기회에 양심적 병역 거부의 문제도 OECD 국가 수준에 맞추어나가야 한다.


3-2. 국민들의 감정이 그리 많이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특히 병역 이행자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은데요.


주위에 그런 경우가 생기면 생각이 많이 달라지실 것이다. 그 법 때문에 1년 6개월 감옥 생활을 하는 것은 기본 인권에 반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 사회도 안보 중심 사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획일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주장은 이제 성숙하게 변경되어야 할 시점에 왔다. 우리 헌재도 이제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논리와 법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미국에서도 낙태가 주요 사안으로 부상했을 때 연방대법원이 국민의 진보와 보수 의견을 고려했던 전례가 있다. 다행히 양심적 병역 거부 사안에 있어서 우리 헌재도 국민의 감정과 현 사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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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인터뷰를 위해 이런저런 조사를 해보니, 촛불집회 당시 활약이 대단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활동을 하시면서 촛불집회를 통해 얻은 것과 아쉬운 것을 말씀해주세요.


민변 가입은 2003년에 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싶은 것으로 2007년 시작한 공부모임, 그 다음으로 2008년 5월 촛불 집회 문제가 불거졌을 때 헌법 소원을 했던 경험을 꼽을 수 있겠다. 당시 다른 변호사님들과 헌법소원청구서 적법성 부분을 작성하고, 토론회 참가도 해보고.. 오마이뉴스 토론회였는데 어느 순간 ‘바로 이거다. 내가 민변을 준거 집단이라고 했던 것처럼, 내가 현장에서 직접 활동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았다. 그 이후 민변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최근 이집트 민중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의 힘이라는 것은 터지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이고, 벌어지면 놀라운 것이다. 선도적인 투쟁이라는 측면이 우선시되지만 사실 모든 것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나. 촛불 시위에서도 10대의 소녀들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그 가능성 자체가 개인에게는 매우 놀라운 것이었다. 당시 현장에서 민변 변호사들이 인권침해감시단의 일부로 많이 참여했었는데, 우리 민변이라는 조직의 존재 이유까지 생각하게 되면서 현장에 같이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사건 자체에 대해서도 87년 민주화 이후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민주화 발전에 촛불 시위가 틀림없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4-2. 또 촛불집회 이후에 정부가 집회 참여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취소하거나 집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요청한 것에 대한 소송을 변호사님께서 담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소송의 쟁점이 무엇이었는지, 과정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2009년부터 행정안전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촛불집회 관련 단체에는 지급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거부를 통보했다.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 단체의 활동과 참여를 빌미로 해당 단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소송을 담당하게 되었고, 대법원까지 가져가 승소를 하였다. 아마도 내년까지 정부의 주요 방침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부분에 있어서 정부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한다. 시민사회, NGO 영역은 젊은 세대들의 블루 오션이다.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한만큼 정부가 이를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 같은 위협을 가하는 것이고. 시민 단체는 분명 정부 논리에 대항해서 하나의 흐름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제 3의 sector이므로 박원순 변호사님의 표현과 같이 여기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현 정부의 두려움이 보조금 지급 거부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담당했던 사건에서 서울행정법원은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는 분명 정치적 판단이 고려된 잘못된 판결이었고, 그래서 판결 결과를 보고 어이가 없었고 격분했던 기억이 난다. 변호사로서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판결에 직면할 경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굴하거나 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한국여성노동자회 판결을 보고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 유독 그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그런 판결을 하는 것을 보고 ‘이건 좀 심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이길 사건을 진다거나, 패소해도 이유가 합당치 않은 사건이 있다면 끝까지 싸워야하지 않을까 한다. 소극적 변론을 하거나 사법부의 판결을 수용하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장 감명 깊은 책 중 하나인 ‘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보여주시는 모습




– 공부모임

1. 오랫동안 공부모임을 담당해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공부모임이 2007년 3월에 조용히 결성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성은 김선수, 유남영, 백승헌, 송호창, 변호사님 등이 주도하시고, 여기에 젊은 변호사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이 때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공부모임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송호창 변호사님이 미국으로 가시면서 공부 모임 사회자를 맡게 되었다.


2. 공부모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데에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민변에서 공부모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민변 공부모임은 공부 달인들의 집합소같다. 리영희 선생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신의 전공 분야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이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라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면 관심을 법 분야에만 8, 9할 쏟지만 공부모임을 하면서 인문사회과학 영역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음 공부모임(2/22)이 93회가 되고, 3월이면 만 4번째 생일을 맞는다. 모임이 이리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민변 회원들의 관심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나오시지 않더라도 같이 책을 사서 읽는다는 분들도 계시고, 광주 지부까지 공부모임이 있다.

“연수원이나 신입 변호사 시절에 이런 책을 보고, 토론할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공부모임에 참가하시는 민변 창립멤버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사실 민변이 위원회 중심으로 굴러가다 보니 젊은 변호사들, 특히 연수원을 수료한 분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접점이 적었다. 이런 분들이 공부 모임에 많이 오셨으면 한다. 여기서 익숙해지면 다른 위원회로 나아갈 수 있다. 결국 민변에 대한 ‘출입문’ 정도의 의미랄까? 민변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민변 회원들과 친해지는 기회를 가지고 싶으시다면, 좌세준 변호사에게 연락을 주시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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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부 모임 발제 방식도 좀 설명해주세요.


4년 동안 100권 넘는 책을 읽었는데 음악-페미니즘-미술 등 다뤄보지 않은 주제가 없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주제를 아우를 수 있었던 것이 우리 모임의 생명력이 아니었던가 한다. 어떻게 보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많이 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를 2주에 걸쳐 읽고 나서 생각을 나누다 보면 그게 곧 하나의 토론이 된다. 이에 대한 모든 분들의 평가는 “책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것이다. 책은 뭐.. 고전을 포함한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 많이 읽고 싶다.


4.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이 무엇이었는지요? 이유도 말씀해주세요.


새 권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김선수 회장님이 추천해주셨던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진경씨가 공부모임에 직접 참여하셨던 『철학과 굴뚝 청소부』, 신영복 교수님이 쓰신 『강의』 이렇게 세 권이다. 그 중 서경식씨가 쓰신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소개하고 싶다. 서경식씨가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라는 조각을 보면서 감옥에 있는 형들을 생각하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짧은 책이지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베스트 셀러이기도 하고.





– 마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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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제 인터뷰를 마치려 합니다. 변호사님께 민변이란?


예나 지금이나 민변에 대해 변하지 않는 생각이 있다. 훌륭한 선배님들, 그리고 지금 활동하는 회원들의 활동들이 길이 역사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민변은 내게 있어 “준거집단”이다. 민변이라는 단체의 역사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한 발언, 성명서, 법원 소송, 월례회, 공부모임, 인턴 활동까지.. 이 모든 것이 민변의 모습이자 곧 역사다. 민변이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적으로 제 준거 집단이 되어줄 것이다. 가능하다면 민변의 귀퉁이라도 만들어나가는 역사에 동참하고 싶다.


2. 뉴스레터 구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읽어보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뉴스레터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되 접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을 한 두 가지 만날 수 있다. 최근 판결이나 판례 꼭지라든가, 공부모임에 관한 공지라든가, 월례회에 대한 사항이라든가. 이런 부분들을 읽어보시고 민변과 친밀해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셨으면 좋겠다. 사실 방문자로 참석하면서 ‘민변이 이렇구나’하고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뉴스레터가 아닐까 싶다. 또, 민변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분명 있으실 텐데, 이를 한 번 읽어보시고 민변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뉴스레터는 곧 민변의 소통의 ‘창고’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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