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강제퇴거 금지법 토론회 후기

2011-01-31 59




강제퇴거 금지법 토론회 후기



상담변론팀 및 민생경제위원회 박준철 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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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한겨레)

 유난히도 추운 올 겨울, 이젠 영하10도 밑으로 내려가지만 않으면 그럭저럭 날이 좀 풀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요, 그 날도 웬만큼 날씨가 풀려 포근했었던(?) 날로 기억합니다. 전날 민변 사무실에서 고된 야근에 시달리다가 오랜만에 달콤한 늦잠을 자고 있던 아침, 조심스럽지만 가열차게 전날의 그 야근으로 저를 인도해주셨던 서선영 변호사님께서 다시 전화를 걸어, 행여나 제가 나태한 생활로 금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친절하게 저를 깨워주셨습니다. “제가 너무 이른 아침에 전화한건가요? 준철씨 오늘 토론회 갈 수 있죠?”, “아 네, 물론이죠. 가야죠!” 비몽사몽한 정신이었지만 방금 일어난 티를 낸다는 것은 그동안 좀 괜찮게 쌓은 나의 이미지에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참 비굴한 본능에 의해 최대한 쿨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집을 나서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토론회장으로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2년 전의 그날, 망루안의 님들이 또 주위에서 가슴조리며 지켜보던 그들의 가족들이 외쳤을 법한 말이었습니다. ‘여기 사람이 있다’라는 그 절박한 외침을 그 동안 나는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외면하고 있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차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하여 제 귓가를 때리고 가슴을 아프게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토론회장 뒤편에는 그 날 현장에서 수거된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차마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는 없었습니다. 더 부끄러워지기가 싫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하지만, 그냥 좀 천천히,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맞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강제퇴거금지법’ 제정 토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강제퇴거 감시단’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제가 민변으로 출근하기 위해 홍대입구역으로 향할 때 지나쳤던 두리반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옆을 스쳐가면서도 그저 발걸음만 재촉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또 한 번 부끄러워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철거민들은 ‘반인권적이지만 합법적으로 내쫓기고 있다’라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보거나 들은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또 저를 고민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인권변호사를 꿈꾸면서 법학과에 입학하고 작년까지 사법시험 공부를 하면서 ‘법’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간혹 있었습니다. 늘 한결같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정리되었던 생각이 ‘법’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의사를 결정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설득력 있고 공정한 기준일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법률가가 되면 그런 ‘설득력 있고 공정한 법’으로 정의를 세우고 약한 자에게 힘이 되어주는 데에 일조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뿌듯해 하기도 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고생스러운 수험생활을 이기는 데에 있어서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고 합리적이 대응방법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의 철없는 환상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날부터였습니다. ‘반인권적이지만 합법적’으로 철거민들이 내몰리고 있고 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버린  용산참사도 그렇게 일어났다는 말, 그리고 요즘 홍익대 청소노동자 해고 사태를 바라보는 홍대교직원의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라는 말들은 마치 바위틈에 들어간 씨앗이 된 것처럼 나의 무지함에서 비롯된 자신감 혹은 자만심을 보기 좋게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저에게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 그저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할 수도 있고, 심지어 때로는 그들을 뜨거운 망루로 내모는 가혹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강제퇴거금지법’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았습니다. 법이 진정으로 공정해지기 위해서 말입니다. 한 때 대통령이 말씀하시어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던 소위 ‘공정한 사회’가 사람들의 자조 섞인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의 현실이자 삶이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토론회가 끝이 나고 집에 오는 길에 어느 한 강연회에서 조국 교수님께서 ‘훌륭한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자세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항상 분쟁의 근본적 원인부터 생각해보아라’라고 답해주신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그때는 무슨 의미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씩 이해가 되어가는 것도 그날부터인 것 같습니다.

 저도 곧 법률가가 됩니다. 운이 좋게도 이제 단편적으로는 어렸을 적의 꿈을 이룬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단지 거기에서만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어렸을 때의 ‘진짜’ 꿈처럼 훌륭한, 그리고 정의로운 법률가가 되고 싶습니다. ‘법대로’ 하는 것이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인권’적인 것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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