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민변의 2011년 시산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버스 안에서 김밥으로 간단히 아침을 때운 뒤 잠을 청한 뒤 눈을 뜨니 계룡산 입구 주차장이었고 동학사였다. 도착 후 대전지부 변호사들도 가세하여 우리는 등반대는 30여명으로 덩치를 키우게 되었다. .
동학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양 도량인 탓인지 더욱 아담하고 고즈넉하였다. 제 옷을 벗어버리고 눈꽃으로 갈아입는 계룡산의 힘찬 줄기가 동학사를 찾은 등반대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굽어보고 있었다. 이번 산행의 목적은, 어쩌면 산이 품은 그 뜻을 한발한발 느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매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막걸리나 따뜻한 차로써 몸을 녹인 뒤 “두 남매” 앞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였다.
남매탑에서 관음봉을 향하는 중 비교적 너른 공간에 소박한 제단을 마련하고 회장님의 축문을 시작으로 시산제를 거행하였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고자 하는 “2011년 민변의 꿈” 과 각자의 일상적 소망이 간절함으로 어우러져 제법 매서운 산바람마저 우리를 지나쳐 갔다.
산에서 하는 식사는 보통 아무리 초라하다고 하더라도 꿀맛을 자랑하는데, 발열도시락까지 준비되어 진수성찬에 가까웠다. 바위 뒤의 협소한 장소였지만 서로 양보하며 당겨 앉은 “작은 식탁” 에는 우리의 체온까지 더해져 밥맛을 돋우었다.
겨우내 꽁꽁 얼어버린 산길을 아이젠을 달고 뚜벅뚜벅, 휘청휘청 걷고 걸어 관음봉에 이른 자에게만 계룡산은 자신의 탄탄한 속살을 한눈에 드러내었다. 녹음을 걷어 낸 겨울산은 꼿꼿한 뼈대를 그대로 드러내어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였다.
관음봉을 내려와 우회하여 연천봉을 향하였다. 관음봉을 오는 일부 사람들 중에서도 연천봉까지 보기를 원하는 이들과 바로 하산하는 이들로 다시 나뉘었다. 연천봉에서는 계룡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다른 쪽 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반대쪽의 능선은 앞서 본 산의 그것과 달리 다소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광경이었다. 군사시설이 있어 가볼 수 없는 천왕봉을 멀리 바라보며 산에서의 마지막 산행을 찍었다.
하산하는 길은 눈으로 더욱 예민해진 가파른 내리막길과의 싸움이었다. 눈앞의 휴식을 섣불리 붙잡으려 한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정상” 이라는 일정한 성과를 이루고 “하산” 이라는 마무리를 해야 하는 모든 이들의 숙명이 아닐까? 하산은 어떤 일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하는 “불안정과 기대” 의 돌림노래… 오르는 일이건 내려오는 일이건 언제나 난관과 대면해야하는 나의, 우리의, 민변의 신묘년 한해를 생각해 보았다. 계룡산은 어쩌면 계속된 한파 속에서도 그 자리에 꼿꼿이 자리를 지키며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알려 주는 듯 했다. 계룡산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