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파업 지지방문 후기 / “KBS를 살리겠습니다”
지난 7월7일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위원장과 민주노총 법률원 강지현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회 인턴들이 KBS 파업 현장을
찾았습니다. ‘개념탑재의 밤’이라는 문화제에 참여하며 민변 참가자들은 KBS 파업에 대한 연대를 표시했습니다.
권영국 노동위원장은 파업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파업 지지방문을 하고 돌아온 노동위 이윤주 인턴의 글을 싣습니다.
“KBS를 살리겠습니다”
7일 저녁,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는 ‘개념탑재의 밤’이라는 독특한 제목의 문화제가 열렸다. 이 문화제는 7월 1일 0시를 기점으로 시작된 KBS 새노조 파업의 일환으로 시민문화제의 성격을 띤 행사였다. 파업이라고 해서 무겁고 엄숙하며 투쟁적인 분위기만을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개념탑재’라는 제목만큼이나 ‘웃음의 미학’이 가득한 그곳이었다. 유머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에 긍정한다면 건강한 풍자와 웃음의 미학을 보여준 이번 문화제는 KBS 새노조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태양이 세상에 내어놓았던 자신의 빛을 거둬들일 무렵,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KBS 본관 앞에 설치된 무대를 향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KBS로 모여들던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먼저 무대 우측에는 진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무대의 우측에 자리한 본관 앞 계단에는 2m 크기의 화분들이 계단의 층마다 늘어서 있었고, 건물의 주변부에는 기다란 차량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화분과 차량을 바리케이드 삼아 나뉜 안과 밖의 ‘경계’는 실소를 자아냈다. 전제주의적인 방식으로 경계 지어진 그곳은 나를 2008년 여름의 기억으로 데려갔다. 2010년 7월 내 눈앞 KBS의 풍경이 2008년 촛불 시위에 등장했던 ‘명박산성’의 기억을 불러낸 것이다. 2008년 여름, 광화문 사거리의 풍경에 파괴적으로 침투하여 평범한 도시 풍경을 산산조각 냈던, 보기에도 흉측한 컨테이너 박스보다는 덜 폭력적이라는 것에서 위안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너와 나, 당신과 나의 공간을 나누는 인위적 ‘경계’가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건 언제나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디밴드 허클베리핀의 공연으로 시작된 문화제는 웃음과 진정성이 가득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현직 KBS 라디오 PD들은 ‘파업 장기화와 몰골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웃음과 해학이 돋보이는 무대를 가졌고, 개그맨 노정렬 씨는 정치 풍자 개그로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러한 웃음뿐만 아니라, 사이사이 이어지던 영상 제작물들에서 현재 새노조가 처한 현실과 그들의 비전을 읽어낼 수 있었다. “MBC를 지키겠습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떠올리게 한 “KBS를 살리겠습니다.”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엄경철 새노조 위원장의 발언에서는 진정성이 묻어나왔다. “차마 ‘지키겠습니다’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대신 KBS를 살리겠습니다.”라고 고백해오는 그의 호소가 허울 좋은 껍데기뿐인 말이 아니라 그 속에 진심과 의지가 담겼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무더운 여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손끝에 쥐어진 촛불의 열기에서마저 그들의 진심어린 ‘의지’를 느꼈다면 과언일까.
지금 우리 사회의 한 곳에는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을 벌이는 그들이 있다. 당신과 내가 “KBS를 살리겠”다고 외치는 그들의 투쟁에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며 지지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지금, 여기’에 그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시민이며,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한 책임을 더없이 무겁게 느껴야할 이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 글 / 노동위원회 이윤주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