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바람이 부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잔인한 4월’이 지나고, 테마가 달라질 5월 월례회를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총 합해 장장 4시간을 회의했다. 머리를 모으고 굴려 대화의 장을 만들고, 찬반투표 후 적은 표를 받은 팀에게 줄 벌칙까지 정해놓고선, 밤 늦게 다시 온라인 회의를 시작해, 일 년에 한 번뿐인 ‘인권영화제의 관람’으로 결정지었다. 두 개의 안을 만들어 인턴들에게 설문 조사를 하였는데, 첫 번째 안은 박종필 감독의 <시설 장애인의 역습>이었다. 이 작품은, 휠체어 탄 장애인들을 보호라는 명목으로 시설에 수용하여 자립생활을 막는 현실에 반대하여 서울시에 항의하는 농성 장애인과 연대 단체의 끈질긴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이하 다큐)였는데, 감독과의 대화가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두 번째 안이었던 <지난 겨울, 갑자기>는 구스타프 호퍼, 루카 라가찌의 이탈리아 다큐로,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안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인터뷰하는 동성커플의 이야기로, 큰 관심이 생긴다. 설문결과는 7:8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과정을 거쳐, 두 번째 안이 결정되었다.
선선한 바람을 얼굴로 느끼며 마로니에 공원 한 구석에 앉아있으니, 인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붉게 물드는 하늘 아래 기타 치는 아저씨가 배경음악을 선사해주셨고, 다 같이 둥그렇게 앉아 배고픈 이는 컵라면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승길오빠가 1부를 시작했다. 그 동안 진행했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토픽 중심으로 각 위원회 별로 한 가지씩 스토리텔링을 하기로 하였다. 내가 속해 있는 여성위원회에서는, 성매매 근절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을 돕는 ‘다시함께센터’ 방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직 ‘여성’만 타의로 혹은 자의로 성매매까지 이르게 하는 일방적이고 불합리한 대우를 주는 현 사회구조가 여성을 ‘피해자화’ 시키는 것이라 성매매 근절을 목표로 한다는 센터의 입장을 전하였고, 이에 왜 공급과 수요가 있을 수 밖에 없는가 등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탁 하고 해결책을 내놓지는 못해도, 여러모로 생각할 기회가 있다는 것은 좋다고 느낀다. 노동절을 맞아 메이데이에 참가했던 노동위원회 인턴 윤주는, 예술 전공자답게 노동운동에 대한 예술적 시각을 통해 메이데이 이미지 등이 친화적이었으면 한다는 신선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1부를 마치고 공원을 걸었다.
지난 겨울, 갑자기 이탈리아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탈리아 총리가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안을 낸다. 동성 파트너가 평범한 부부로서 권리를 누리게 되는 것에, 국민들은 너무나도 다른 반응을 보인다. 종교계에서는 ‘순리에 어긋난다’며 강한 반발을 하였고, 동성애를 인정하나 가족의 형태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 등이었다. ‘평범’하게 살아온 동성커플인 구스타브와 루카는, 이들의 발언으로 하루아침에 괴물이 된 느낌이라 말한다.
한 인간으로서 태어나,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끄는 것, 그 자체를 왜 우리는 ‘순리’라는 잣대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얽히는 것으로 큰 제한을 두는 것일까. 순리 혹은 성경 글귀의 해석으로 반대하는 이들은, 과학을 전제로 두지 않았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만든 지금의 절대적인 ‘이성애 중심’ 가족제도가 과연 최고로 적합한 것인지. 아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혹은 입양하더라도 아이를 키우는 가정은, 반드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어야 한다는 대전제 자체가 이성애 중심의 사고인데, 전혀 벗어나지 못한 채 배척만 하는 그들의 태도가 정말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결말로 이끌어가는 이 영화분위기는 흐뭇한 미소가 번지게 했다. 심각할 수도 있었을 주제가 주인공들로 인해 훈훈하고 유쾌하게 풀어지는 건 분명 이들의 매력이다. 좋은 영화에 감사하며, 인턴들의 회비를 모아 인권영화제를 후원할 것을 생각해보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자리를 옮겨 조용한 주막집으로 갔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까 했는데, 테이블별로 나뉘어진 구조상, 테이블끼리 이야기가 오가게 되었다. 결국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 테이블은 우리 테이블뿐이었는데, 영화 관련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해오셨을 상원오빠에게, 아쉽지만 우리들끼리라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관련 자료도 많이 찾아오셨고, 실제 사례에서 동성애에 대한 시각 등,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비해오셨다. 자연스럽게 오고 간 대화에서 간간히 놀랐던 점은, 숨어만 있을 줄 알았던 동성애 사람들이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커밍아웃을 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 한마디로, 지내기 어려울 수도 있는 직장이나 군대에서까지 말이다. 아직까지 철저하게 이성애 중심 사회인 한국에서 그들의 고백은 큰 용기일 텐데 대단하다 싶었다. 조용히 응원한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모여 술이 한두 잔 오가면, 이런 진지한 이야기든 하하호호 가벼운 수다이든, 그 무엇이라도 즐겁다. 회비와 관련해 공지와 대화가 부족한 탓에 살짝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6월 월례회에서 충분한 회의를 거치기로 했다. 이번 월례회를 계획하고 진행하면서 준비팀에게 한층 더 친밀감을 느꼈고,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여럿 일어났었지만 서로 배려해주고 끝까지 노력해줘서, 너무나도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 글 / 여성위원회 양정화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