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전용/23차총회특집]2009년 민변 총회를 회상하며_대구지부 성상희 변호사

2010-05-19 88




2009년 민변 총회를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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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의 글은 민주변론 83호(2009. 7.8월호)에 실린 민변 총회 후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이 글을 통해 민변 총회의 모습이 어떠한지 그려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난 4월 초순경에 총회준비위원회 위원장 이상호 변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 총회를 경북권에서 진행하기로 하는데 좋은 장소가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보겠다고 하였으나 게으름을 피우다가 한참 뒤에 경북 군위에 있는 간디문화센터에 연락을 하여 물어보니 100명 정도가 회의도 하고 숙식과 뒤풀이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간디문화센터 대표로 있는 문창식 선생은 대구시민센터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으로서 일주일에 한번 꼴로 자주 보고 있었고, 나는 간디센터에 비정기적 후원도 하고 있었으나 정작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상태였다.



본부와 연락이 되어 본부 상근자들이 현장을 답사하고 장소가 적당하다는 의견을 내어 총준위에서 일단 총회 장소를 확정하는 것으로 연락을 받았다. 이후에는 본부와 틈틈이 연락을 주고받았고, 빈틈없는 준비를 위하여 본부에서는 몇 번 간디센터를 방문하였던 것으로 들었다. 이 과정에서 대구지부의 역할에 대한 본부의 요청이 있었고, 처음에는 장소를 소개하는 정도로 알았는데 조금 지나니 공동개최(?)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공동개최는 아니지만 대구지부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일단 대구지부 회원들이 다수 참석해야 한다는 것, 뒤풀이 자리를 만들고 술과 음식을 준비하는 것, 다음날 필요한 관광 일정을 준비하는 것 정도를 지부의 역할로 인식하였다.



총회가 임박하여 들으니 27일은 간디센터 개소 이래 가장 바쁜 날이었다. 간디문화센터는 원래 간디자유학교가 군위군 소보면 서경리에 위치한 서경초등학교 폐교 자리를 인수하여 2004년부터 2006년까지 학교를 운영하다가 금산으로 이사를 가고 폐교 자리는 문창식 대표와 몇 사람이 함께 인수하여 도농을 연결하는 지역문화센터로 새 단장을 하게 된 시설이다. 이 곳은 농촌 재래장 살리기, 농촌 지역 다문화 가정의 상호소통과 공동체 정착, 어린이들의 공동체 생활 경험 등 다양한 교육 행사를 진행하는 문화공간이다. 더불어 지역 사회단체들의 수련회 등에 숙식을 제공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이날 소보 장터 장날 행사가 오전에 있었고, 오후 3시에는 간디센터에 개관하는 음악당 개관기념 음악회가, 오후 4시부터 민변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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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회원들은 지부장, 사무국장과 전 지부장 송해익, 전 사무국장 남호진 회원이 함께 이동하여 3시 정도에 도착하여 음악회 자리에서 느긋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회원들이 타고 온 버스가 도착하여 간디센터가 분주해졌다. 회의공간에 다수 회원들이 들어가 4시부터 예정된 시국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회장님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음악회의 분위기를 잠시나마 즐기려고 음악당을 나오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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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토론회에서는 현 정부의 일방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검찰개혁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고, 차후 권력교체를 대비하여 사회 각 분야의 시스템 구축에 대한 정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토론회를 마치고 간단한 저녁식사, 그리고 부산과 대구지부 회원들이 족구시합을 하였는데 대구가 이긴 것으로 기억된다. 족구 때문에 총회 시작이 약간 늦었는데, 총회 의사는 물 흐르듯이 잘 진행되었다. 예년에 항상 대구지부 회원들이 의사진행이나 의안내용에 대하여 발언을 많이 하여 집행부를 긴장하게, 혹은 피곤하게 하였는데 이날은 손님을 부르는 입장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강성 분위기(?)를 주도해 온 정재형 변호사가 안식년으로 자리에 빠져서 그런지 대구회원들의 발언은 별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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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면서도 열띤 분위기 속에서 총회 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9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이미 간디센터 사람들이 두 개 불판을 깔고 피조개와 가리비를 굽고 있었다. 마산의 명물이고, 내륙인 군위나 대구에서는 싱싱한 조개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터였다. 1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여서 아무리 구워내도 조개는 공급이 달리는 모양이었다. 술이 한 순배 돈 다음 간디센터 사람들이 풍물을 들고 나와 한바탕 두드렸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한두 사람씩 잠자리로 들어가면서 자리가 정리되고 있었다. 원래 캠파이어 목적으로 장작을 쌓아 불을 피웠었는데 조개에 끌린 사람들이 야외 파티장으로 모여들어 캠파이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장작은 외롭게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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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숙취로 다음날 조금 무겁게 일어났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후 정리를 하고 먼저 서울행 버스를 환송하였다. 본부 회원들은 경북 북부의 명물 부석사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남은 사람들이 각 지부 회원들인데, 전주와 대전 지부 회원들은 먼저 올라가고 방향이 같은 부산과 광주 회원들이 남아 대구회원들과 함께 인근 팔공산 삼존석굴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제2석굴암이라 불리는 삼존석굴은 군위가 보유하고 있는 국보의 하나로서 평소에는 보전을 위하여 철문으로 봉쇄하고 있어 두어 차례 방문하였지만 한번도 바로 앞에서 보지 못한 문화재이다. 이날은 정말 운이 좋아 어느 절의 신도달이 단체 참배를 하는 관계로 철문을 열어두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아미타 부처님과 좌우 보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불교에 조예가 깊은 김현익 변호사는 본부는 역시 아미타부처를 모신 부석사 무량수전을 방문하고, 우리는 제2석굴암을 방문하여 아미타불의 인연이 있다고 한마디 하였다.


제2석굴암을 돌아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한티성지를 지나쳐 팔공산을 군위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한티고개 정상 휴게소에서 차 한 잔을 하였다. 그냥 보내기가 아쉽다는 구인호 사무국장의 강력한 주창으로 휴게소에 들렀던 것이다.


광주, 부산 분들을 모두 보내드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구에서 약속이 있다고 하여 동행한 서울의 임성택 변호사를 배웅하고 총회 일정을 마쳤다.

수고하신 본부 임원들과 간사들, 대구 회원들, 그리고 도와 준 간디센터 구성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글 / 성상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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